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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치않은 소비심리 급랭…韓경제 반등 걸림돌(종합)

김정남 기자I 2017.01.24 16:29:32

한은 조사에 나타난 '꽁꽁 언' 가계 소비심리
기업경기 반등 조짐…민간소비는 유독 부진
韓 경제에 악재 부상…성장률 직격탄 가능성

경기가 침체하는 와중에 체감물가가 덩달아 오르는 가운데 지난 11일 오전 서울 송파구 가락시장에서 상인들이 손님을 기다리며 물건을 나르고 있다. 사진=방인권 기자


[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한국은행이 24일 내놓은 이번달 소비자동향조사 결과는 최근 소비심리가 얼마나 나빠지고 있는지 보여주는 ‘냉정한’ 지표다.

각 경제연구기관들은 민간소비 악화를 올해 우리 경제의 최대 걸림돌로 보고 있는데, 연초부터 통계로 증명된 것이다. 이번달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93.3으로, 금융위기 당시인 지난 2009년 3월(75.0) 이후 7년10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설 대목은 옛말”이라는 하소연이 나올 법하다.

일각에서는 설문조사로 진행되는 소비자동향조사의 특성상 한계가 있다는 평가도 있지만, 막상 경기 흐름과 비교해보면 비슷하게 움직이는 측면도 있다. 실제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국내총생산(GDP) 증가율과 소비자심리지수(CCSI) 상승률 추이를 함께 보면, 2008년 고꾸라졌다가 2009년 급반등한 이후 지리한 ‘L자형 불황’ 기류를 보이는 게 거의 똑같다. 소비심리의 급랭이 우리 경제에 시사하는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금융권 한 고위인사는 최근 ‘자기실현적 위기(self-fulfilling crisis)’라는 말을 부쩍 많이 한다. 그는 “경제 활동이라는 게 따지고 보면 인간 심리와 행동의 총합”이라면서 “괜찮게 굴러가고 있는 경제도 자꾸 ‘어렵다, 어렵다’고 하면 정말 어려워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한은의 이번 조사를 통해 추후 우리 경제가 쉽게 반등하지 못할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한 셈이다.

이번 결과는 한은을 비롯한 주요 기관들의 경제 전망이 틀리지 않았다는 점도 보여주고 있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5%로 하향 조정하면서 “민간소비가 생각보다 더 둔화할 것으로 보는 게 포인트”라고 했다. 한은이 보는 올해 민간소비 증가율 전망치는 전년 대비 1.9%에 그치고 있다. 지난해(2.4%)보다 0.5%포인트 급락한 수치다. 25일 공개되는 지난해 4분기 GDP 증가율에서 민간소비 쪽이 특히 부진할 것으로 보이는데, 올해 1분기부터는 그 폭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의미다.

또다른 경제계 인사는 “기업의 수출과 설비투자는 추후 반등 가능성이 엿보이지만 가계의 소비는 쉽게 살아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자꾸 ‘어렵다’ 하면 정말 어려워져”

민간소비는 경기적인 요인과 구조적인 요인 모두 어둡다. 당장 체감물가 급등이 주된 요소다. 이번달 물가인식 소비자동향지수(CSI)는 2.7%로 전월 대비 0.3%포인트 상승했다. 2014년 11월(2.7%) 수준을 회복했다. 1% 초중반대인 정부의 소비자물가 상승률과 비교하면, 1%포인트 이상 더 높은 것이다.

물가수준전망 CSI는 7포인트 오른 148을 기록했다. 2012년 3월 149를 기록한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물가가 오르면 소비심리가 약화되고, 실제 구매력도 떨어질 수 있다. 민간소비는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셈이다.

금리가 더 오를 것이라는, 그러니까 자금을 더 비싸게 조달해야 한다는 전망이 많은 점도 소비를 누르는 변수다. 이번달 금리수준전망 CSI는 126으로 전월 대비 2포인트 올랐다. 지난해 중반만 해도 90포인트 초반대였다가 확 뛰었다.

경제정책 여력이 갈수록 줄어든다는 점도 악재다. 지난해에는 코리아세일페스타 행사를 열고 자동차 개별소비세를 인하하는 등 소비를 살리기 위한 다양한 정책적인 노력들이 있었다. 다만 올해는 그 여력이 더 축소될 것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다.

구조적인 걸림돌도 있다. 김창배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저출산 고령화가 심화하고 가계부채가 계속 급증하는 상황에서는 민간소비가 살아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지난 2008년 이후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과 한국은행의 소비자심리지수(CCSI) 상승률 추이. 두 지표는 거의 비슷하게 등락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출처=한국은행


◇체감경기는 스태그플레이션 가나?

일각에서는 체감경기는 스태그플레이션 상태로 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물론 적지 않은 전문가들은 “아직 시기상조”라고 말한다. 과거 오일쇼크 때처럼 갑자기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0%포인트 이상 급등하면서 경제성장률이 수직 낙하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오히려 최근 물가 상승은 디플레이션 조짐을 벗어나는 호재로 인식되고 있다.

다만 피부로 느끼는 경기는 또 다르다. 한은의 이번달 현재경기판단 CSI는 51로 4포인트 하락했다. 2009년 3월 34를 기록한 이후 최저치다. 금융위기 당시 수준까지 곤두박질 친 것이다.

그런 와중에 체감물가는 치솟고 있다. 채소 과일 등에 더해 추후 공산품 물가도 오를 것이란 관측이다. 체감물가는 주관적인 개념이라는 한계는 있다. 하지만 소비심리에 엄연히 악영향을 미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적지 않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지표물가와 체감물가간 괴리를 더 신경 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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