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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미국과 전쟁보다 중국 침투 더 두려워해"

방성훈 기자I 2021.12.13 18:02:33

中-北 이데올로기적 연대감 전혀 근거 없어
北, 한국전쟁 후 中침투 우려…의도적 부채의식 배제
中, 北포기 않는 이유…미군 주둔 韓과 완충 역할 때문

(사진=AFP)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북한이 미국과의 전쟁보다는 오히려 중국의 내부 침투를 더 걱정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자칫 쿠데타 또는 정권 전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1일(현지시간) 전문가들을 인용해 “이번 달 집권 10주년을 맞이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미국이 아닌 중국을 장기간 정권 유지에 중대한 위협으로 보고 있다”면서 “북한 관료들은 중국에 대한 의존을 불편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 북한 전문가인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학교 교수는 “북한과 중국이 이데올로기적으로 유대 관계라는 일반적인 생각은 전혀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한의 방첩 관계자라면 누구든 중국을 국내 안보의 가장 큰 위협으로 보고 있다고 말할 것”이라며 “중국이 북한 내부에 혼란을 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부연했다.

1950~1953년 한국전쟁이 두 나라 사이에 미묘한 거리감을 형성한 계기가 됐다는 분석이다. 북한은 한국전쟁 당시 중국군이 지원한 이후 중국의 침투를 두려워하기 시작했고, 반감이 생겨났다고 FT는 설명했다.

또 중국은 북한이 중국군 지원 등에 대해 부채 의식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에 반발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이는 북한이 김일성 전 북한 주석이 중국 공산당 당원이었다는 과거를 은폐하고, 한국전쟁에 대한 70페이지 분량의 공식 설명에서 중국 개입 사실을 단 세 번만 언급한 것도 중국에 대한 부채 의식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중국이 냉전 시절 북한을 탈출한 고위 관리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하면서 언젠가 북한에 친중 정권이 설립될 것을 대비하기도 했지만, 현실은 반감이 더 큰 상황이다. 중국이 1992년 일방적으로 한국과 국교를 정상화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이는 북한에게 있어 ‘큰 배신’으로 여겨지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 중국 역사학자이자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부교수인 존 델러리는 “당시 중국인들은 순식간에 평양을 버렸다”고 평가했다.

북한이 핵무기 개발과 중국과의 접경 지역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제한하려는 것도 지속적인 경계감의 표출이라고 신문은 전했다. 아울러 중국 단둥과 북한 신의주를 잇는 압록강 현수교가 북한의 도로망과 단절된 상태로 남아 있는 것도 양국 간 괴리를 시사한다. 이 현수교는 중국이 비용을 들여 2013년에 완공했지만, 이후 사용된 적은 없다.

델러리 교수는 “북한이 중국에 경제를 개방한다는 것은 왕국에 열쇠를 넘겨주는 것을 의미한다”며 “북한이 과거 2008년 이동통신망 구축 당시 협력사를 (중국 기업이 아닌) 이집트의 오라스콤을 택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북한이 전쟁을 우려하면 미국을 걱정하겠지만, (정권의) 전복이나 쿠데타를 우려한다면 중국을 훨씬 더 걱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북한과 중국 사이의 반감은 다양한 사례에서도 확인된다. FT는 지난 2013년 김정은 위원장이 처형한 고모부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이 중국 관리들과 친분이 있었다는 점, 또 독살된 이복형 김정남 역시 중국으로부터 보호를 받고 있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반면 중국은 북한이 지난 2017년 미국 본토까지 날아갈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시험발사하자 유엔의 대북 제재에 동참했다. 당시 중국이 유엔의 대북 제재를 묵인하는 전례 없는 조치였다는 평가가 나왔다.

미 워싱턴 소재 싱크탱크 스팀슨센터의 중국 프로그램 책임자 윈쑨도 “북한엔 일본은 100년의 적이지만 중국은 1000년의 적이라는 말이 있다”고 말했다.

김정은(왼쪽) 북한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사진=AFP)
중국의 입장은 다소 다르다. 전문가들은 중국은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한국과의 중간 완충지대로 북한을 유지시키길 원할 뿐 달리 바라는 점은 없다고 보고 있다. 다만 이러한 중국의 열망이 김정은 위원장에게는 정권을 유지할 수 있는 생명줄이라는 평이다.

스팀슨센터의 윈쑨은 “미국과 중국간 경쟁은 김정은 정권의 생존 측면에서 도움이 되고 있다. 중국 정부가 북한을 쉽게 포기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라면서도 “하지만 중국은 최소한의 조치만 취하고 있다. 북한은 굶어죽지는 않겠지만 배부르게 먹지도 못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편 북한이 최근 경제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한 때 구멍이 뚫렸던 중국 국경을 봉쇄하기 위해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과 미·중 간 경쟁 심화를 이용하고 있지만, 중국의 침투를 우려해 펼쳐 온 봉쇄 정책이 오히려 북한 경제의 붕괴를 촉발해 대중(對中) 의존도를 심화시켰다고 FT는 지적했다. 실제로 최근 위성 사진에선 육로를 통한 양국 간 무역 재개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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