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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주가 고비…비 안오면 공장 세워야할 판"

박진환 기자I 2017.06.29 15:43:42

물 부족에 염도까지 치솟아 서산AB지구 모내기만 2번째
대산산단 인근 대호호 저수율 '0%'…공장 가동중단 위기
해수담수화시설 등도 행정절차 이유로 2019년에야 준공
긴급 처방으로 추진 중인 지하수 관정 개발도 '주먹구구'
올해에만 3000개 넘게 뚫렸지만 ...

지난 20일부터 저수율 0%를 기록 중인 충남 당진의 대호호. 대호호의 저수율이 0%인 것은 1985년 준공 이후 32년 만에 처음이다. 사진=박진환 기자
26일 충남 서부지역에 17.7mm의 비가 내렸지만 충남 서북부권의 유일한 식수원인 보령댐의 저수율은 8.5%에 머물고 있다. 사진=충남도 제공
[서산=이데일리 박진환 기자] “대책이 없어요. 모내기만 벌써 두번이나 했는데 염도가 높아서 다 죽었어요.”

“1991년부터 준공된 이래 처음으로 물이 부족해 공장이 중단될 상황입니다. 7월 초까지 비가 안오면 정말 답이 없어요.”

최악의 가뭄이 이어지면서 충남을 비롯해 경기와 전남 등 전국적으로 피해가 확산하고 있다. 충남 서북부지역의 경우 농업용수와 함께 공업·생활용수마저 고갈될 위기에 처하면서 공장 가동 중단, 제한급수 등의 극단적인 상황에 내몰렸다.

부와 각 지방자치단체들은 광역상수도·도수로 연결, 하수처리수 재이용, 해수담수화 시설 등 다각적인 방안을 내놓고 있지만 가뭄 해갈에는 역부족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지자체들은 응급처방으로 지하수 관정 개발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환경영향평가나 사전·사후 관리 없이 지하수 개발을 진행하면서 지하수 자원 고갈은 물론 환경파괴, 지반 침식 등 부작용도 우려된다.

◇ 마실물도 없다…최악 가뭄에 초토화

올 초부터 계속된 가뭄으로 충남은 초토화된 지 오래다. 특히 충남 보령과 서산, 홍성, 예산 등 4개 시·군의 평균 저수율은 11.23%로 충남지역 전체 저수율인 23.9%보다 12.76%포인트나 낮다.

최근 1년간(2016년 6월 25~2017년 6월 24일) 충남의 누적강수량도 819.7㎜로 평년치의 63.8%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올 1월부터 지난 24일까지의 누적강수량 역시 171㎜로 평년치인 379.6㎜의 44.7% 수준에 그쳤다.

충남 서북부지역의 유일한 수원인 보령댐의 경우 25일 기준으로 저수율이 8.6%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저수율인 27.2%와 비교해 3분의 1도 못 미친다.

정부는 현재 경계단계인 보령댐의 수위가 더 낮아지거나 늦어도 내달까지 비가 내리지 않을 경우 심각단계로 올린 후 제한급수 체제로 전환한다는 계획이다.

충남 서해안 천수만 일원에서 간척사업을 통해 조성된 서산AB지구는 가뭄과 함께 찾아온 염해 피해로 벼가 모두 말라 죽은 상태다. 이 일대 농지는 염도가 치솟으면서 영농 한계치인 2800ppm을 넘어 대부분 논에서 3000ppm을 기록하고 있다.

1980년 착공, 1995년 완공된 서산AB지구의 총면적은 154.08㎢로 이 중 개발된 농지는 A지구 63.83㎢, B지구 37.49㎢ 등 모두 101.32㎢다.

이우열 서산AB지구 경작자협의회 회장은 “처음 심은 벼는 3~4일 만에 모두 죽었고, 최근 재이앙을 하고 있다. 다음달 초까지 비가 100㎜ 이상 오면 그나마 이른벼라도 심을 수 있지만 그때가서도 비가 오지 않으면 올해 농사는 포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근에서 벼농사를 짓고 있는 조모 씨는 “보통 못자리 치상은 4월말이면 끝나지만 올해의 경우 이달 중순에 두번째 모내기를 했다”며 “내주까지 비가 오지 않으면 진짜 다 죽는다”고 하소연했다.

◇ 공업용수마저 말라…공장가동 중단위기

국내 3대 석유화학단지인 충남 서산의 대산석유화학단지도 공업용수 부족으로 비상이 걸렸다.

이 일대에 공업용수를 공급했던 대호호 저수율이 ‘0%’대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한화토탈과 현대오일뱅크, LG화학, KCC, 롯데케미칼 등 5대 대기업을 중심으로 석유화학 제조업체들이 밀집한 대산단지는 하루 평균 20만t의 공업용수를 사용한다. 이 회사들은 대호호에서 하루 10만t, 아산호에서 공급되는 아산공업용수도를 통해 하루 11만 9000t을 공급받았다. .

한 입주업체 관계자는 “물을 끓여서 나오는 스팀으로 각종 화학물질을 만들어내는 업종 특성상 물 사용량이 많을 수 밖에 없다”며 “내달까지 비가 오지 않는다면 공장 일부가 멈추는 최악의 상황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충남도는 지난해부터 대산석유화학단지에 대한 안정적인 물 공급을 위해 해수담수화 시설 건립을 추진 중이지만 행정절차 등을 이유로 지지부진해 빨라도 2019년에야 담수화시설 가동이 가능하다.

또 다른 입주업체 관계자는 “2012년에도 극심한 가뭄으로 공장 가동이 중단될 수 위기에 처했었다. 당 지자체와 정부에 해수담수화 시설을 건의했지만 지난해에야 이 사업이 시작됐다”면서 “소를 잃고도 외양간을 고치지 않는 행정관행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고 불만을 터트렸다.

한화토탈과 현대오일뱅크, LG화학, KCC, 롯데케미칼 등 5대 대기업을 중심으로 석유화학 제조업체들이 밀집한 대산석유화학단지는 하루 평균 20만t의 공업용수를 사용하고 있다. 사진=충남도 제공
◇“일단 파자” 묻지마 지하수 개발 후유증 우려

당국은 농업용수 부족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단기처방으로 지하수 개발에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다.

올해 전국 10개 시·도에 국비와 지방비를 포함해 모두 1827억원이 투입돼 지하수 관정 개발, 하상굴착, 간이양수장 건설, 준설 등 가뭄대책 사업이 진행됐다.이 가운데 모두 3095개(27일 기준)의 지하수 관정이 새롭게 개발돼 농업용수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2012년 가뭄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하수 관정 개발은 2012년 777개, 2013년 140개, 2014년 175개, 2015년 1164개, 지난해 879개 등으로 매년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문제는 지하수 관정 개발이 급증하고 있는 반면 체계적인 사전·사후 관리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충남의 한 기초자치단체 관계자는 “지하수 관정은 한번 개발하면 기계가 멈출 때까지 계속 사용할 수 있다”며 “중앙·지방정부가 직접 조사나 굴착하는 것 아니고, 모두 업체에 맡겨 처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환경단체들은 지하수 관정 개발이 무분별하게 진행되면서 환경 오염, 지하수원 고갈, 지반 약화 등의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고 우려한다.긴급한 상황이 종료되면 지하수 관정에 대해 적절한 폐공절차가 이뤄져야 하지만 상당수의 관정이 그냥 방치되고 있다는 것이다.

하규철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하수생태연구센터 센터장은 “지하수는 개발하기 전에 사전 영향조사가 선행돼야 하지만 최근 긴박한 상황이라는 이유로 모든 절차를 생략한 채 지하수 관정 개발이 이뤄지면서 여러 부작용들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환경부 관계자는 “현재 2~3년에 한번씩 지하수에 대한 수질 정기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다만 지하수도 관정 개발 및 이용에 대한 전반적인 사안은 국토부와 각 지자체에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충남 예산에서 가뭄 대책의 일환으로 지하수 관정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예산군 제공
계속된 가뭄에 황선봉 충남 예산군수가 국사봉에서 제주(祭主)를 맡아 기우제를 올리고 있다. 사진=예산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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