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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응원 클릭 논란, 소잡는 칼이 걱정된다[김현아의 IT세상읽기]

김현아 기자I 2023.10.04 18:24:51
[이데일리 김현아 기자]
그래픽=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한중전인데 어떻게 93%가 중국을 응원할 수 있죠? 정말 조선족이 국내 여론에 조직적으로 개입하는 건가요?”

지난 1일 항저우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8강전 ‘한국과 중국의 경기’에서 포털 다음에서 응원한 클릭이 중국 응원 93.2%, 한국 응원 6.8%가 나오자 논란이 커지고 있습니다.

여당에 이어 정부가 나서 포털 여론 조작 대책을 마련하겠다며 ‘범정부TF’를 꾸렸고,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발의한 ‘댓글국적표기법’의 국회 통과를 촉구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저도 깜짝 놀란 게 사실입니다. 유사한 서비스를 한 네이버에선 중국 응원이 6%, 한국 응원 클릭이 94%였으니까요.

둘의 차이는 자신의 ID와 패스워드를 쳐야 들어갈 수 있는 로그인 기반이냐, 아니냐에서 갈린 것 같습니다.

한-키르기스스탄전에서도 응원 바뀐 이유

다음스포츠의 클릭응원 서비스는 마치 ‘놀이’처럼 누구나 쉽게 응원하도록 하는 콘셉트로 설계돼 있었습니다. 로그인 기반의 네이버와 다르지요.

그래서 지금 논란이 커진 한중전 뿐 아니라, 9월 13일 남자축구 대한민국과 사우디아라비아 A매치 친선경기때 사우디 응원이 52%(한국응원 48%), 9월 28일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16강전 대한민국과 키르기스스탄 경기 때엔 키르기스스탄 85%(한국응원 15%)였죠. 클릭 횟수 제한이 없고, 회원이 아니어도 누구나 할 수 있으니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번 사태로 다음의 클릭응원 서비스가 종료되고, 카카오가 어뷰징을 막겠다며 모니터링 체계를 개선하겠다고 밝혀, 앞으로는 다음에서 경기를 보면서 응원의 메시지를 보낼 때에도 로그인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응원수 조작하는 매크로, 원천봉쇄 불가능

이번 사건을 기술적으로 보면, 매크로프로그램을 이용한 응원수 조작행위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매크로프로그램이란 반복 작업을 자동화시키는 컴퓨터 프로그램이죠. 드루킹의 네이버 댓글 조작 사건 당시에도, 코로나19 팬데믹 때 마스크나 백신예약을 싹쓸이 하려는 사람들이 써서 논란이 됐던 프로그램입니다.

이번 사건에서 포털 점유율이 네이버보다 떨어지는 다음의 총 응원클릭(3130만건)이 네이버(약 600만건)의 5배에 달한 것도 매크로프로그램을 돌린 것으로 의심되는 단 2개의 IP에서 2000만 건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매크로를 돌리는 행위를 기술적으로 막을 수 있을까요? 잠시 시간을 2018년으로 돌려보면, 국내 최고의 IT엔지니어로 꼽히는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가 국회에서 한 말이 생각납니다.

이해진 창업자는 “드루킹에 사용된 매크로는 대단한 기술이 아니기 때문에 서버에서 그것을 막을 수 없는 방법은 없으며 기술적으로 원천봉쇄할 수 없다”고 증언했습니다. 그래서 네이버는 당시 뉴스를 홈페이지에서 빼고, 언론사가 네이버 뉴스의 댓글 제공 여부와 정렬방식까지 결정할 수 있게 하는 등 여론조작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한 대책을 내놨습니다.

카카오 차원서 어뷰징 막는 대책 마련될 듯

개인적으론 이번 역시 유사한 수순으로 진행될 것 같습니다. 다음을 서비스하는 카카오가 로그인 기반 서비스로 응원을 바꾸고, 특정 IP에서 과도하게 트래픽이 나오면 이를 집계에서 제외하는 방식 등이 검토될 것으로 보입니다.

아무리 ‘놀이’ 문화라고 하더라도 서비스 기반을 알 지 못하는 가운데 매크로로 인해 이용자들이 당황하거나 화나거나 혼란에 빠질 수 있으니, 불필요한 갈등의 소지를 없애자는 차원이지요.

그러나, 당장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라고 생각합니다. 충분한 사회적 합의 없이 ‘포털 여론 조작 왜곡 방지법’ 같은 걸 만들면,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대한민국에서 중국·북한의 인터넷 검열 같은 걸 제도화한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고 봅니다.

섣부른 댓글 국적표시제는 국격저하 우려

매크로프로그램을 이용한 응원 클릭 조작은 누가 했는지 범인을 잡는 경찰 수사와 다음의 서비스 개선이라는 ‘닭 잡는 칼’로 해결하면 됩니다.

그렇지 않고,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댓글 국적표시제’를 도입하는 것은 ‘소잡는 칼’을 잘못 휘두르는 셈이 될 수 있습니다.

같은 이유로 국회 입법조사처도 검토보고서에서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발의한 해당 법안에 대해 표현·영업의 자유 침해, 국적표시 댓글 제도를 적용할 대상의 불명확성 등을 지적했습니다.

포털을 통해 국민 75% 이상이 뉴스를 접하기에 포털의 사회적 책임이 강화될 필요는 있지만, 소잡는 칼을 잘못 쓰면 대한민국의 품격을 전체주의 국가인 중국이나 북한 정도로 떨어뜨릴까 걱정됩니다.

참고로, 선거게시판 실명제와 인터넷 본인확인제(실명제) 모두 대한민국 법원에서 위헌 판결을 받은 바 있습니다. 선거게시판 실명제는 2010년과 2015년에는 헌법재판소가 합헌결정을 내렸지만, 2021년 위헌결정이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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