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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똥 치우고 우리 옆에서 자고…노동자 시신 유기 농장주 구속

이재은 기자I 2023.03.07 20:50:49

돼지우리 옆 한 평가량 방서 생활
불법체류자라 관련기관 보호대상서 제외
“노동강도·주거환경 간 사망원인 조사해야”

[이데일리 이재은 기자] 경기 포천의 한 돼지 농장에서 근무하던 태국인 노동자가 숨지자 시신을 유기한 농장주가 구속됐다. 이 노동자는 10년간 농장에서 일하며 한 평가량의 열악한 주거 공간에서 생활한 것으로 드러났다.

숨진 태국인 근로자 B씨가 지내던 숙소 옆 주방 (사진=포천이주노동자센터)
의정부지법은 7일 사체유기 혐의를 받는 60대 농장주 A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하며 “증거인멸과 도망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A씨는 지난 2일 자신이 운영하는 돼지 농장에서 일하던 60대 태국인 노동자 B씨가 숨지자 그의 시신을 트랙터로 운반해 유기한 혐의를 받는다.

부검 결과 B씨의 시신에는 타살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고 건강상의 문제가 있던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불법체류자(미등록 이주노동자)였던 B씨를 고용한 사실이 발각될까 두려워 시신을 유기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A씨 아들도 입건해 범행을 함께 저질렀는지 등을 조사하고 있다.

숨진 태국인 근로자 B씨가 지내던 숙소 (사진=포천이주노동자센터)
10여년간 이 농장에서 일한 B씨는 돼지 1000여마리를 A씨와 돌본 것으로 전해졌다. B씨는 돼지 분뇨를 치우거나 심야에 돼지를 돌보는 등 극도로 힘든 일을 해왔다고 한다.

B씨가 살던 숙소는 돼지우리 건물 한 귀퉁이에 샌드위치 패널로 만든 작은 구조물로 가로세로 3m 정도 크기였다. 악취가 나는 방 안에는 잡동사니와 쓰레기가 가득했고 옆에는 방 절반 크기의 열악한 주방이 있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였던 B씨는 관련 기관의 보호 대상에서도 제외된 상태였다.

농장에서 장시간 일하며 인간관계에서 고립된 B씨는 방에서 홀로 시간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태국에 있는 가족과는 종종 연락했지만 이웃이나 태국인들과의 교류는 드물었다고 한다.

태국인 근로자 B씨의 시신이 유기된 장소 (사진=포천이주노동자센터)
포천이주노동자센터 관계자들은 “열악한 이주 노동자 숙소를 많이 가봤지만, 이 정도는 본 적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김달성 포천이주노동자센터 대표는 “이주노동자 중에서도 3D라는 불법체류자들의 삶을 여실히 보여주는 곳”이라며 “불법체류자는 가뜩이나 열악한 이주노동자 보호 제도에서도 소외돼 있어 열악함을 말로 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이어 “고용주 입장에서는 미등록 노동자의 노동력을 착취하기 쉬워서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며 “퇴직금 미지급은 거의 관행이며 임금도 제대로 안 주고 심지어 갑자기 사망하면 몰래 화장한다는 소문도 공공연히 들린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살인적인 노동 강도와 열악한 주거 환경이 사망 원인과 관련이 있는지 면밀히 조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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