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현장에서]흔들리는 방송통신위원회 독립성

김현아 기자I 2023.03.28 20:06:36

이명박 정부 시절엔 대통령 업무보고조차 논란
문재인 정부 성공 언급한 이효성 위원장 비판받아
법에 독립적 운영 명시된 방통위
사법절차에서도 고려해야
한상혁 위원장 구속 영장 청구 기각돼야

[이데일리 김현아 기자]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8년 2월 26일 오후 방송통신위원장 취임식이 열린 광화문 방송통신위원회 현관에서 최시중 초대 방통위원장(왼쪽 두번째)과 위원들이 현판식 후 박수를 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방송통신위원회의 독립성이 흔들리고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8년 출범한 뒤 최대 위기다. 방통위는 ‘대통령 직속의 여야 합의제 행정기구’라는 특이한 형태로 만들어졌다. 대통령과 여권이 지명·추천하는 3명의 상임위원과 야권이 추천하는 2명의 상임위원. 이런 구조로 만들어진 조직이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을까 의문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처음 출범할 땐 삶의 질에만 매달렸던 방송(방송위원회)과 삶의 양만 강조했던 통신(정보통신부)을 조화시킬 수 있는 국가 전략적인 정책 기구의 가능성을 기대했다. 방통위의 탄생은 IPTV라는 새로운 형태의 방송이 시작된 게 계기가 된 측면도 있다.

초대위원장은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멘토로 불린 최시중 위원장이었다. 이후 공무원 출신 이계철, 정치인 출신 이경재, 판사 출신 최성준, 학자 출신 이효성, 변호사 출신 한상혁으로 이어지면서 우여곡절도 많았다. 하지만, 그래도 방통위 업무를 이유로 현직 위원장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되는 사태까지 내몰리진 않았다.

대통령 업무보고를 두고도 고심했었다

최시중 위원장 시절에는 방통위원장이 국무회의에 가는 게 옳은가, 대통령에게 업무보고를 해야 하는가를 두고 논란이었지만, 최 위원장의 정치력은 오히려 청와대의 압력(?)을 막아냈고, 박근혜 정부 때 판사 출신이었던 최성준 위원장 시절에는 방통위 전체 회의가 고성이 오가지 않는 법원 심판정 같은 분위기로 바뀌었다. 그는 규제기관으로서의 권력자 모습보다는, 피심의인으로 출석한 기업들의 반론권을 살폈다. 율사 출신답게 합리적인 절차를 중시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첫 위원장이었던 이효성 위원장은 미디어학자답게 인터넷동영상서비스(OTT)같은 뉴미디어에 대비한 방송법 개정(시청각미디어서비스법)에 관심을 뒀다. 다만, 그는 ‘가짜뉴스’를 두고 정치권 공방이 한창이던 때 학자적 소신으로 맞서다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 가짜뉴스에 대해 “현행 법안에서 표현의 자유를 해치지 않는 범위안에서 처리하겠다”고 한 게, 당시 문재인 정부 극렬 청와대 인사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얘기가 있다.

방통위원장이 정부 성공 언급하자 비판 받아

이후 온 사람이 한상혁 위원장이다. 사실 취임 전 논란이 있었다. 친정 격인 민언련을 뺀, 언론개혁시민연대,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진보네트워크센터 등 9개 시민단체들이 이효성 위원장의 사퇴는 ‘문재인 정부의 미디어 개혁 실패’라는 공동 성명을 낸 것이다.

이효성 위원장이 기자간담회에서 퇴임의 변으로 “문재인 정부가 2기로 새롭게 출발해 국정 쇄신을 위해 대폭적인 개편을 준비하고 있다. 청와대가 보다 폭넓고 내각 구성과 원활한 팀워크를 추진할 수 있도록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위해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했다”고 밝힌 게 발단이었다. 당시 시민단체들은 ‘정부의 성공을 위해’라니, <방통위 설치법> 제1조는 방통위의 독립적 운영 보장을 명시하고 있지 않느냐고 비판했다.

한상혁, 법에 근거해 업무 했던 기억

당시 이 성명에 공감했고, 한상혁 위원장을 의심했다. 이효성 위원장 후임인 그가 ‘가짜뉴스’ 철퇴를 명목으로 특정 이념의 편에 서서 언론사들을 옥죄진 않을까 하는 걱정이 컸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아직 내 눈으론 한 위원장이 법에 어긋나게 언론사들을 가짜뉴스 프레임에 엮어 규제하는 걸 보진 못했다. 오히려 채널A가 검언유착 논란에 휘말렸을 때, 진보 매체 A사 기자의 앞선 규제 필요성 질의에 “아직 수사결과가 나오지 않아 규제할 수 없다”고 답하는 걸 봤을 뿐이다.

시간이 지나 윤석열 정부가 출범했고, 한 위원장은 현직 방통위원장으로서 구속 기로에 섰다. 초유의 사태다. 검찰의 구속영장대로, 방통위가 2020년 TV조선 재승인 심사에서 고의적으로 감점했고, 한 위원장도 관여했는지 여부는 믿기 어렵지만 법원에서 판단될 일이라고 본다.

독립적 운영이 보장된 방통위

다만, 놀라운 것은 방통위에 가해진 수차례의 압수수색과 이 사안을 바라보는 일부의 극렬한 시선이다. ‘방송분야에서도 정권교체가 시작됐다’는. 이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방송, 즉 언론은 진보든 보수든 특정 이념으로 장악하고 단죄하는 게 아니다. 그래서 방송 정책을 만드는 방통위 설치법 1조에도 ‘방송통신위원회의 독립적 운영을 보장한다’고 적혀 있다.

2008년 첫 출범 이후 방통위 여야 추천 상임위원들은 공영방송 이사 추천 등을 두고 물밑 혈투를 벌였던 건 사실이나, 적어도 공개된 전체회의에선 법에 근거한 합리적인 단어로 자기주장을 설명해 왔다.

한상혁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사법 절차도 방통위 독립성 보장하는 방식으로

오늘 언론개혁시민연대(언론연대)라는 곳에서 낸 성명서 역시 방통위의 독립성을 걱정하고 있다.

언론연대는 성명에서 정부 여당 관계자들이 앞다퉈 ‘대통령 바뀌면 도의상 물러나야 한다’고 한 말이나, 언론들조차 신분이 법적으로 보장된 위원장에 대해 ‘조기 해임’이란 용어를 쓰는 걸 비판했다.

또 “TV조선 재승인 심사에서 고의로 감점한 의혹은 사실관계를 밝혀야 하지만, 그것은 불구속 상태에서 법원의 재판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며 “이번 수사가 방통위의 공정한 업무집행을 위한 수사라면, 그 사법절차는 더욱 더 방통위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 한상혁 위원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는 기각돼야 한다”고 밝혔다.

동의한다. 진보 정부든, 보수 정부든 법에 명시된 방통위의 독립적 운영을 흔들어선 안 된다고 본다.

만약 그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과 맞지 않다면, 정치 다툼의 장으로 변질한 방송통신위원회는 차라리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게 낫다는 생각이다. 방통위 자신이 다원화된 민주주의 사회의 적이 될 테니까.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