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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 에콰도르式 달러 도입 추진…인플레 잡을까(종합)

김정남 기자I 2023.11.20 18:59:05

페소 폐기·달러 도입 추진하는 아르헨
초고물가 잡기 에콰도르式 모델 갈듯
"물가 안정 위한 역대 모든 시도 실패"
"美에 통화 주권 빼앗겨" 반론도 비등

[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비주류’ ‘극우파’ 하비에르 밀레이(53) 아르헨티나 대통령 당선인은 최악의 인플레이션을 잡을 수 있을까. 아르헨티나가 자국 통화를 폐기하고 미국 달러화를 도입(Dollarization)하겠다는 파격 정책을 꺼내 들면서 그 여파에 전 세계의 이목이 모아진다. 아르헨티나는 23년 전 달러화를 도입한 에콰도르 방식을 추진할 게 유력한데, 아르헨티나의 경제 규모가 에콰도르보다 수배는 더 크다는 점은 변수로 꼽힌다.

19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 대선에서 승리한 자유전진당 소속 극우파 하비에르 밀레이(53) 당선인이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사진=AFP 제공)


에콰도르 달러화 모델 따라갈듯

CNN은 19일(현지시간) 밀레이 당선인의 대선 승리가 확정된 직후 “만약 밀레이 당선인이 페소화를 포기하고 달러화를 법정 통화로 사용한다면 이는 아르헨티나를 미지의 영역으로 몰아넣을 것”이라며 “아르헨티나 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보도했다.

미국 달러화는 미국 외에 총 7개의 주권 국가에서 법정 통화로 쓰이고 있다. 이 중 경제 규모가 가장 큰 나라가 에콰도르다. 그런데 아르헨티나 경제는 에콰도르의 수배에 달한다. CNN은 “아르헨티나 경제 정도 되는 그 어떤 나라도 워싱턴에 통화정책 결정권을 넘긴 곳이 없다”며 “밀레이 당선인의 비전은 세계적으로 관심을 끌고 있다”고 전했다.

CNN은 극도의 불확실성을 거론하면서도 에콰도르의 성공 사례를 소개했다. “에콰도르는 인플레이션과 싸우기 위해 달러화를 전면 도입했다”는 것이다. 아르헨티나 국립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아르헨티나의 소비자물가지수는 전월 대비 8.3% 상승했다. 1년 전과 비교하면 142.7% 폭등했다. 32년 만에 가장 높다. 말 그대로 살인적인 수준이다.

에콰도르는 지난 2000년 1월 자국 화폐인 수크레를 폐기하고 달러화를 법정 통화로 공식 채택했다. 중앙은행이 자체적으로 화폐를 찍어내지 않고 달러화 수입량을 기준으로 통화량을 맞추는 것이다. 밀레이 당선인의 달러화 도입 아이디어는 그의 경제 책사인 에밀리오 오캄포 아르헨티나 세마(CEMA·거시경제연구센터) 교수 겸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부연구원에게서 나왔는데,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을 해도 잡히지 않는 인플레이션에 있다. 그는 “물가를 안정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달러화 도입”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에콰도르 경제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달러화 채택과 함께 마법처럼 인플레이션이 잡혔다. 세계은행(WB)에 따르면 2000년 에콰도르의 물가 상승률은 96.1%에 달했다. 그런데 2001년 37.7%로 가라앉더니 2002년 12.5%→2003년 7.9%→2004년 2.7%→2005년 2.2%→2006년 3.3% 등으로 빠르게 낮아졌다. 그 이후로도 꾸준히 한자릿수대를 유지했다. 에콰도르는 1990년대 후반 아시아와 러시아에 이어 남미를 덮친 경제위기 충격파 탓에 1999년 당시 성장률은 -4.7%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서는 1980년대보다 오히려 더 나은 성장세를 보였다. 미국 달러화가 주는 안정성 때문에 외국인 투자가 늘고 무역이 활발해진 덕이라는 분석이다. 나라 경제를 운용하는데 물가 안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사례다. 에콰도르의 달러화 채택은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밀레이 당선인이 주목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다른 그 무엇보다 물가 안정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밀레이 당선인은 이를 두고 “현 정부는 파탄 난 경제를 우리에게 남겼다”고 성토했다. 게다가 그는 HSBC 수석이코노미스트 출신의 경제 전문가다. 블룸버그는 “밀레이 당선인은 제도권에서 훈련된 첫 아르헨티나 대통령”이라고 전했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의 아드리아나 두피타 이코노미스트는 “그의 여유 있는 당선은 경제 공약들을 이행할 정치적 자산을 제공할 것”이라고 했다.

19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 대선에서 자유전진당 소속 극우파 하비에르 밀레이(53) 당선인이 승리하자 지지자들이 거리에서 환호하고 있다. (사진=AFP 제공)


물가 잡았지만 통화주권 빼앗겨

그렇다고 꼭 장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에콰도르는 인플레이션의 악몽은 잦아 들었지만 금융 시스템이 미국에 종속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연방준비제도(Fed)가 에콰도르의 통화 주권을 사실상 쥐고 있는 구조다. 아울러 달러화가 강세를 띨 경우 수출이 줄어 국제수지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 역시 있다. 수입 가격을 높여 빈곤 문제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달러화 흐름은 에콰도르가 통제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투자전문매체 배런스는 “밀레이 당선인은 인플레이션으로 경제가 불구가 됐고 현금이 부족하며 채권자와 국제사회로부터 동정이 추락한 나라를 물려받았다”면서 “승리를 만끽할 시간이 없다”고 전했다.

그의 정치 기반이 미미하다는 점도 약점으로 거론된다. 그가 속한 자유전진당은 상원에서 72석 중 7석, 하원 257석 중 38석을 각각 차지하고 있는 소수당이다. 입법 단계부터 난관에 봉착할 수 있다는 의미다. 토르쿠아토 디 텔라 대학교의 카를로스 제르바소니 분석가는 “국가의 법정 통화를 바꿀 법안을 처리할 방법이 없다”고 전했다. 유라시아그룹의 대니얼 커너 이사는 “밀레이 당선인은 (공약을 추진할) 팀을 갖고 있지 않다”며 “시작 단계부터 강한 반대에 부닥칠 것”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그는 에콰도르식(式) 급진 정책의 길을 따라갈 게 유력하다. 밀레이 당선인은 이날 밤 당선이 확정된 뒤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내에서 “점진적인 변화는 없을 것이고 급진적인 변화만이 있을 뿐”이라며 “세계 모든 국가들에게 기존의 아르헨티나는 끝났다는 것을 알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9월 한 인터뷰에서 “(당선되면 달러화 도입 아이디어를 낸) 오캄포 교수를 중앙은행 총재로 임명할 것”이라며 “임무는 중앙은행 폐쇄”라고 했다. 오캄포 교수는 저서 ‘달러화:아르헨티나를 위한 해결책’을 통해 이를 예고했다. 오캄포 교수는 그러면서 “인플레이션을 통제하려는 아르헨티나의 모든 시도는 실패했다”고 규정지었다. △1980년대 페소화를 호주달러화로 대체 △1990년대 미국 달러화 대비 환율을 고정하는 페그제 도입 등을 가리킨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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