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추위 견디는 소나무와 거친 필선"...'세한도' 속 추사의 선비정신

김은비 기자I 2020.11.23 15:28:41

특별전 '한겨울 지나 봄 오듯-세한·평안'
"추운 뒤에야 송백 푸른 줄 알아"
상반된 분위기의 '평안감사향연도' 함께 선봬

[이데일리 김은비 기자] “한겨울 추운 날씨가 된 다음에야 소나무와 촉백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알게 된다.”(‘논어’의 ‘세한연후지 송백지후조’)

추사 김정희(1786~1856)가 1844년 제주도 유배 시절 당시 논어의 ‘세한’에 영감을 받아 그린 국보 제180호 ‘세한도’는 조선시대 문인화의 높은 품격을 보여주는 걸작으로 꼽힌다. 가로 69.2cm, 세로 23cm 크기의 종이 한 가운데 집 한 채와 소나무, 잣나무 몇 그루가 한겨울 추위를 견디고 있다. 그림 자체로만 봤을 때는 세한도가 왜 그렇게 높은 평가를 받는지 이해가 안될 수 있다.

하지만 ‘세한도’는 김정희가 당시 처했던 고난의 상황을 고스란히 떠올리게 한다. 유배형은 조선시대 사형 다음으로 높은 형벌이었다. 김정희는 1880년부터 무려 8년 4개월동안 제주에서 유배생활을 했다. ‘세한도’ 속 소나무는 유배지에서 힘든 시간을 견뎌내는 추사를 떠올리게 한다. 옆의 잣나무는 그럼에도 추사가 잃어버리지 않으려 애썼던 선비정신, 기개를 상징하는 듯하다. 건조한 먹과 거친 필선은 당시 추사가 처했던 물리적, 정신적 고달픔을 사실적으로 드러낸다. ‘세한도’가 조선 후기 선비 정신을 오롯이 담았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국보 제180호 세한도(사진=국립중앙박물관)
‘세한도’는 지난 8월 미술품 소장가 손창근 선생의 기증으로 국립중앙박물관 품으로 돌아갔다. 박물관은 이를 기념해 오는 24일부터 내년 1월 31일까지 특별전 ‘한겨울 지나 봄 오듯-세한(歲寒)·평안(平安)’전을 개최한다. 특별전에서는 ‘세한도’와 비슷한 시기 그려진 ‘평안감사향연도’를 전시해 조선시대 관리로서 겪을 수 있었던 가장 절망적인 순간과 영예로운 순간을 상반되게 보여준다. 특별전 개최에 하루 앞선 23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두 작품의 모습을 미리 엿봤다.

1부 ‘세한-한겨울에도 변치 않는 푸르름’에서는 김정희가 느꼈을 감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영상이 가장 먼저 펼쳐진다. 영화 제작자 겸 미디어 아트 작가인 프랑스인 장 줄리앙 푸스는 독특한 시선으로 포착한 제주도 풍경에 김정희의 고통과 절망, 성찰의 과정을 7분짜리 영상 ‘세한의 시간’에 녹여냈다. 이 영상을 찍기 위해 한밤중에 한라산을 오르기도 했다. 거칠고 황량한 제주의 모습은 김정희가 느꼈을 매서운 제주도의 환경을 전한다.

민병찬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김정희 선생이 유배된 곳 바로 옆에 모슬포가 있는데 모슬포는 사람이 살기 정말 힘든 ‘몹쓸 곳’이란 뜻에서 모슬포가 됐다”며 “제주의 겨울 바람은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바람이라 뼛속까지 춥다”며 그가 겪었을 고난을 설명했다.

본격적으로 전시에 드러서면 김정희의 ‘세한도’와 청나라 문인 16인, 한국인 4인의 감상 글로 이뤄진 ‘세한도’ 두루마리 전모를 14년 만에 볼 수 있다. 이들은 ‘세한도’를 어려운 상황에서도 군자의 곧은 지조를 지키는 행동의 가치를 전한다고 칭송했다.

‘평안감사향연도’ 연광정연회도 부분(사진=국립중앙박물관)
◇조선시대 관리가 느낀 최고의 영광 ‘평안감사향연도’

전시 2부 ‘평안-어느 봄날의 기억’에서는 ’세한도’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평안감사향연도’ 3점을 만날 수 있다. ‘평안감사향연도’는 평안감사가 주인공인 지방 연회의 기록화이자 조선 후기 평양 사람들의 일상과 풍류를 풍부하게 담아낸 풍속화다. 당시 평안감사는 “평안감사도 저 하기 싫으면 그만이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조선의 관리라면 누구나 선망했던 명예로운 자리였다. 그만큼 그림 속 평안감사를 비롯한 등장인물의 모습은 활기가 넘친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그림과 함께 평안감사로 부임해 부벽루, 연광정, 대동강에서 열린 세 번의 잔치를 다양한 미디어 영상으로 즐길 수 있다. 특히 이번 전시를 평안감사뿐 아니라 등장하는 주변 다양한 인물 모두에 주목할 수 있다. 양승미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는 “국립중앙박물관이 단일 유물로 꾸민 최대 규모의 미디어 아트전”이라고 말했다.

각각 ‘길’, ‘환영’, ‘잔치’, ‘야경’을 주제로 평양에 도착한 감사를 축하하는 잔치의 여정을 영상으로 구정했다. ‘길’에서는 평양에 도착해 만나게 되는 대동문 앞 저잣거리를, ‘환영’에서는 교방 기생들이 춤을, ‘야경’에서는 대동강에서 열린 밤의 잔치 장면을 그래픽 미디어 아트로 구현했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