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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을 위한 행진곡' 수난의 역사…文대통령이 마침표 찍었다

고준혁 기자I 2017.05.12 22:57:28

文대통령, 12일 5·18 기념식서 '제창' 지시…MB 이후 9년 만
한국당 "사회적 합의 이끌어 내는 것 반드시 필요…이게 '통합'?"
행진곡, 진혼곡으로 탄생해 민중가요로…탄핵 의결 때 불리기도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후보 당시인 지난 4월 6일 오전 광주 국립 5.18민주묘지를 방문, 고 임욱환님의 묘역을 참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고준혁 기자] ‘님을 위한 행진곡’을 둘러싼 수난의 역사가 마침표를 찍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3일 만인 12일 ‘님을 위한 행진곡’을 5·18 기념식 제창곡으로 지정해 부르도록 주무부처인 국가보훈처에 지시했다. 이명박·박근혜정부 보수정권에서 문재인정부로의 정권교체를 실감나게 하는 대목이다. 이명박정부 출범 이후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 때마다 ‘님을 위한 행진곡’을 둘러싼 보수·진보진영간 갈등이 끝없이 이어져왔다. 이번 조치로 2017년 5.18민주화운동 37주기 기념식에서는 문 대통령과 참석자들이 님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는 광경을 볼 수 있게 됐다.

◇文대통령 “민주화 더 훼손돼선 안 돼” vs 한국당 “통합이 이런 것인가”

님을 위한 행진곡 논란은 이명박정부로 거슬러 올라간다. 5.18 기념일이 정부 기념일로 지정된 1997년부터 2008년까지 5.18 기념식에서 제창됐지만 이명박 정부인 2009년 이후부터 제창이 아닌 합창 방식으로 변경됐다. 이때부터 행사에 참여한 합창단만 노래해 의미가 축소되면서 야당 정치인들이 반발하는 등 5.18기념식은 툭하면 반쪽짜리 행사가 됐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12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 브리핑룸에서 “문 대통령은 이날 “제37주년 5·18 기념식의 제창곡으로 ‘님을 위한 행진곡’을 지정해 부르도록 주무부처인 국가보훈처에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는 정부 기념일로 지정된 5.18 광주 민주화운동과 그 정신이 더 이상 훼손돼서는 안 된다는 대통령의 강한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의 이러한 인식은 ‘님을 위한 행진곡’이 북한의 대남선동 영화에 사용되는 등 종북노래라는 주장을 반박하는 것. 제창곡 지정에 반발해온 박승춘 전 국가보훈처장은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사의를 표명했고 문 대통령도 이를 즉각적으로 수리했다. 다만 논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자유한국당은 문 대통령의 ‘님을 위한 행진곡’ 제창 지시에 대해 “마음대로 일방적으로 결정한 것에 대해서는 깊은 우려를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맹비난했다. 정준길 대변인은 이날 “5.18 기념식의 님을 위한 행진곡 합창 또한 주무부처의 의견을 수렴하여 결정되어온 사항”이라며 “정권을 잡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하고 싶은 일들을 전광석화같이 처리하고 있다. 과연 대선 때 내세운 ‘통합’이 이런 것인지 되묻고 싶다”고 꼬집었다.

◇진혼곡에서 운동·민중가요로…지난 연말 국회 탄핵사태에도 불리워져

님을 위한 행진곡은 1981년 5월 탄생했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의 시인 ‘묏비나리’의 절정 부분을 시인 황석영씨가 다듬어 가사를 썼고 5·18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전남대학생 김종률씨가 곡을 만들었다.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 대변인으로 활동하다 전남도청에서 계엄군에게 사살된 윤상원씨와 1979년 숨진 노동운동가 박기순 ‘들불야학’ 운영자의 영혼결혼식에 헌정된 노래극 ‘넋풀이’를 통해 지난 1982년 처음 발표됐다.

이후 1980년대 민주화를 열망하는 시위현장에서 대표적인 민중가요로 애창됐다. 오죽하면 ‘진보진영의 애국가’라는 애칭도 붙었다. 가깝게는 지난연말 촛불시위가 한창이던 광화문에서도 이 노래가 울러퍼졌다. 특히 12월 9일 국회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의결된 이후 국회 주변에서 모였던 촛불시민들이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이색적인 점은 보수진영에서도 불렀다는 것.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됐을 패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지지자들이 ‘부정 개표’를 주장하며 시위를 벌이며 부르기도 했다. 문학평론가인 황현산 고려대 명예교수는 자신의 산문집 ‘밤이 선생이다’에서 “나름대로 자신들이 의로운 일을 하고 있다고 믿었을 그들은 이 노래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을 위한 노래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라고 해석했다.

아울러 해외에서도 사랑받았다는 점을 주목할만하다. 대만이나 홍콩, 필리핀, 일본에서도 노동·사회운동가들이 이 노래를 투쟁가로 선택했다.1984년엔 홍콩노동자모임에서 가사를 번안했고 1988년부턴 대만에서도 사용됐다고 알려졌다. 지난해 6월 대만 중화항공 파업 현장에서도 주최 측이 행진곡을 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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