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상윤 기자] “에너지 정책은 정치가 아니라 경제 논리로 가야 할 텐데 걱정이 많습니다.”
A기업 한 임원은 최근 ‘새 정부 에너지정책 방향’ 발표에 혀를 내둘렀다. 현재 전체 에너지 믹스 가운데 27.4%인 원전의 비중을 2030년 30% 이상으로 확대하겠다는 계획만 있을 뿐 정작 기업들의 관심사인 재생에너지 조달에 대한 계획은 빠졌기 때문이다. 그는 “‘보수는 원전, 진보는 재생에너지’라는 논리로 공급자 중심의 정책만 펴고 있다”며 “정작 전력을 필요로 하는 수요자인 기업들의 입장은 배제된 꼴”이라고 우려했다.
원전 비중이 높아지면 상대적으로 전기요금 상승은 억누를 수는 있다. 재생에너지 발전 단가가 빠르게 낮아지고는 있긴 하지만 여전히 원전이 가장 저렴한 에너지원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원가를 줄이고 비싼 값이 상품을 팔면서 수익을 남겨야하는 입장에서 저렴한 전력 이용은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재생에너지를 불가피하게 이용할 수밖에 없는 흐름이 거세다는 점이다. 이제는 상당히 알려진 RE100(100% 재생에너지 사용) 캠페인은 무시할 수 없는 ‘글로벌 연성 규제’가 됐다.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2050년까지 재생에너지 100%를 사용하겠다는 캠페인이지만 가입 선언을 하지 않을 경우 공급망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고 자칫 투자도 받지 못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RE100에 가입하려면 국내에서 충분한 재생에너지가 뒷받침돼야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새 정부 들어 뒤집힌 에너지 정책에 삼성전자, LG전자 등 주요 대기업들은 최근 들어 재검토에 나섰다는 얘기가 들린다. 재생에너지 확대에 맞춰 전력 구입비 등을 따져야 하는데 예측 가능성이 상당히 떨어졌다는 후문이다.
기업 입장에서 규제보다 더 무서운 것은 불확실한 정책이다. 예측 가능한 규제면 적절하게 대응을 할 수 있지만 에너지정책처럼 정치논리에 따라 오락가락하는 정책에는 대응할 방법이 없다. 친원전, 친재생에너지 등 페달을 밟기 전에 더 시급한 건 탈(脫) 정치다. 에너지 수요자 입장에서 더는 과거로 회귀할 수 없는 에너지 정책을 짜야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