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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전에 국민 93%가 중국 응원?…정부 "여론조작 의혹" 포털 압박[이슈분석]

경계영 기자I 2023.10.04 17:33:51

다음 응원클릭으로 불거진 여론 조작 의혹
카카오 "해외 IP 2개, 매크로로 이례적 현상"
정부 "국내 포털, 여론 조작 취약점 드러내"
與, 댓글 국적 표기제 법안 추진 의지

[이데일리 경계영 김현아 기자] 우리나라와 중국 간 항저우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8강전이 열리던 지난 1일, 포털 다음(Daum)의 응원 댓글 사이트에선 네티즌 93%가 중국을 응원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정부와 여당은 당장 11일 예정된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와 내년 총선을 앞두고 ‘드루킹 시즌2’ 재현을 우려하며 범부처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는 등 포털에 시스템 개선을 압박했다. 다음 운영사인 카카오는 심야시간 반복 작업을 자동화하는 프로그램인 매크로가 활용된, 이례적 현상을 확인하고 경찰에 수사 의뢰하기로 했다.

다음이 운영하는 항저우 아시안게임 응원 댓글 사이트. 지난 1일 열린 중국과의 남자 축구 8강전에서 중국을 응원한다는 댓글이 91%로 우리나라를 응원한다는 댓글을 압도했다. (사진=다음스포츠 페이지 캡처)
왜, 누가 중국과 북한을 응원했나

다음 스포츠 내 항저우 아시안게임 응원 페이지에서 이상 현상이 일어났던 것은 남자 축구 8강전만이 아니었다. 이보다 하루 앞선 지난달 30일 우리나라가 북한과 맞붙었던 아시안게임 여자 축구 8강전에서도 네티즌 75%가 북한을 응원했다. 다음 스포츠가 운영하는 ‘클릭 응원’은 스포츠 경기에서 로그인하지 않아도 수시로 횟수 제한 없이 어떤 팀이든 응원할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다.

논란이 커지자 카카오는 사태 파악에 나섰다. 4일 카카오에 따르면 한중 8강전 클릭 응원 총 3130만건 가운데 한국 클릭 응원이 211만건으로 6.8%를, 중국 클릭 응원이 2919만건으로 93.2%를 각각 차지했다. 클릭 응원에 참여한 것으로 확인된 IP를 기준으로 총 클릭 응원 수는 2294만건이었고 이 가운데 해외 IP 비중은 86.9%였다. 특히 IP 2개가 해외 IP 응원 클릭의 99.8%인 1989만건에 달했다. 해당 IP 클릭은 경기가 끝난 2일 새벽 0시30분 이후에 진행됐다. IP 2개의 클릭 비중은 네덜란드 79.4%, 일본 20.6%였다.

카카오는 이용자가 적은 심야시간대 IP 2개가 매크로를 활용해 만든 이례적 현상이라고 결론 내렸다. 이를 서비스 취지를 훼손하는 중대한 업무방해라고 보고 경찰에 수사를 의뢰할 예정이다. 지난 2일자로 클릭 응원 서비스를 중단한 상태이며 포털 내 비로그인 기반 서비스를 점검하는 등 모니터링 체계를 개선할 방침이다.

제2 드루킹 사태 우려하는 정부여당

우리나라 포털 사이트에서 우리나라가 아닌 중국이나 북한을 더 많이 응원하는 현상을 두고 정부와 여당은 온라인상 여론 조작 시도 결과라고 규정하고 이같은 시도가 선거를 앞두고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좌파 성향이 강한 포털 사이트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점에서 내년 총선을 앞두고 또 다시 여론 조작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각한 문제 제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며 진상 규명을 촉구했다. 유상범 국민의힘 수석대변인도 논평에서 “총선 6개월을 앞두고 다시 반복된 이번 사태는 국가안보에도 위협이 될 수 있는 ‘드루킹 시즌2’로 번질 수도 있는 중대한 사안”이라고 꼬집었다.

지난 2일 관련 의혹을 처음 제기한 박성중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국회 기자회견에서 “한중 축구에서 (네티즌) 93%까지 중국을 응원할 수 없는데 이렇게 된 것은 시스템에 뭔가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는 일”이라며 “앞으로 여론에 의해 선거에도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경각심을 갖고 새로운 시스템이나 법적 보완을 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도 발 빠르게 대응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날 국무회의에서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긴급 현안 보고를 받고 여론 왜곡 조작 방지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범부처 TF 구성을 지시했다. 이동관 방통위원장은 “다음·카카오의 비로그인 상태 사용자에 대한 응원 클릭 횟수 무제한 정책은 국내 포털 서비스가 여론 조작에 취약하다는 점을 재확인한 것”이라며 “현행법령 위반 혐의가 확인될 경우 엄중한 제재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격적 태도를 취한 국민의힘과 달리 더불어민주당은 별 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민주당 관계자는 “다음 스포츠에서 축구 외에도 다른 경기에서도 비슷한 상황을 볼 수 있었지만 대상을 특정하기 어렵다”며 “지금으로선 입장을 낼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그래픽=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포털 댓글에 국적도 함께 달릴까

국민의힘은 댓글에 국적을 표기하고 가상사설망(VPN)을 활용해 다른 국가로 우회 접속하는 여부도 함께 명기하도록 하는 법안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다. 김기현 대표가 지난 1월 관련 내용을 담은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고 박성중 의원도 추가 법안 발의를 검토하고 있다.

해당 법안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뿐 아니라 VPN 우회로 국적을 임의로 정할 수 있어 실익이 없다는 지적도 있다. 김 대표의 개정안 검토 보고서에서도 △표현·영업의 자유 침해 △국적 표시 댓글 제도를 적용할 대상 불명확 등을 지적했고 소관 부처를 두고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방통위가 서로를 지목하며 난색을 표했다.

사단법인 오픈넷 위원장을 지낸 황성기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선거 시기 선거게시판 실명제와 달리, 인터넷 본인확인제(실명제)는 위헌 판결을 받았다”면서 “국적 표시 댓글제는 네티즌의 익명성을 저해해 표현의 자유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봤다.

이번 사태가 해프닝으로 끝날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 커뮤니티 사이트엔 자신이 축구 응원 클릭을 조작했다고 주장하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앞서 지난해 9월 우리나라와 카메룬의 남자 축구 A매치 평가전에서도 카메룬 응원 클릭이 83%를 점한 사례도 있다.

다만 박성중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일개 사용자(유저)의 장난으로 생길 사안이 아니다”라며 “(여론 조작을) 작성한 사람과 가담한 사람, 방치한 사람에 대한 벌금형이나 징역형 등 강력한 대책을 추진해야 하고 특히 이를 방치한 포털은 자체 시스템을 정밀화해 (여론 조작을) 방지할 수 있는 시스템을 사전 구축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동관(가운데) 방송통신위원장이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해있다. (사진=이데일리 김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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