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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률 0.00014%…"남는 전기 팔겠다"는 신산업 '헛발질'

최훈길 기자I 2016.12.27 16:11:28

대통령 보고 산업부 '프로슈머' 정책, 가입자 31호 그쳐
'120만호-1.5조 잠재시장' 장밋빛 전망 드러나
복잡한 판매요건, 누진제 완화 겹쳐 정책 '유명무실'
산업부 "법안도 추진" Vs 전문가 "원점 재검토해야"

[세종=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이웃 간에 전기를 사고 파는 1조원대 신산업으로 대통령에 보고돼 지난 1년간 추진된 에너지정책이 가입자도 거의 없이 유명무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장 상황을 오판한 탁상공론 정책의 폐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27일 산업통상자원부·한국전력(015760)에 따르면, 이날까지 ‘프로슈머(prosumer) 전력거래 실증사업’에 참여해 약정을 체결한 가입자는 31호에 그쳤다. 2200만호(주택용 전기 총 가구수) 대비 0.00014%에 그친다. 31호에 포함된 일부 일반·교육용 가입자를 빼면 순수 주거 가입자 비중은 더 줄어든다. 약정 체결로 가구당 얻을 수 있는 평균 편익(프로슈머 3월 기준)은 산업부 추산 결과 2116원에 불과했다. 한전은 프로슈머 약정을 체결한 가입자에게 “기대수익이 훨씬 줄어들었다”라며 양해를 구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프로슈머는 전기를 소비하면서 태양광 시설 등으로 전기를 생산해 이웃에 파는 생산형 소비자다. 지난 2월 산업통상자원부는 대통령 주재 9차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이 정책을 신산업으로 보고했다. 태양광 시설을 보유한 소비자가 프로슈머 사업자로 등록한 뒤 쓰고 남은 전기를 이웃(주택용 소비자)에 판매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게 골자다.

당시 산업부는 프로슈머가 전기판매 수익을 얻고 구매자는 요금을 절감하는 이 사업의 잠재시장 규모가 120만호(누진제 5단계 이상), 1조5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사업 초기부터 비즈니스 모델이 불안정하며 까다로운 등록·판매 요건 때문에 실효성 논란이 불거졌다.

게다가 누진제까지 개편됐다. 지난 8월 정부·여당이 누진제를 완화하기로 발표하면서 전기요금 부담이 많았던 소비자들이 굳이 프로슈머에게 태양광 전기를 구입할 이유가 없어졌다. 한전에 따르면 12월 개편안에 따라 주택용 고압(아파트)의 경우 한전에 지불하는 요금단가 최고치(누진 3단계 전력량요금 215원/kWh)가 태양광 등 신재생 단가(220~230원/kWh)보다 싸다.

그런데도 산업부는 프로슈머 정책을 계속 추진해 나갈 예정이다. 앞서 주형환 장관은 지난 7월 “민간의 시장 참여 활성화가 필요한 전력 판매시장의 진입 장벽을 완화하겠다”며 프로슈머 정책 추진을 공언했다. 이어 산업부는 한전을 거치지 않고 전력판매를 허용하는 관련 전기사업법 개정안까지 발의해 국회 처리를 추진 중이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누진제 완화 등 변화된 환경 하에서 정부를 믿고 투자한 사람들이 이익을 보기 어려울 수 있다”며 “이제라도 정부는 프로슈머 정책을 원점에서 재검토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참여 호수는 12월까지 실증사업 약정체결 집계, 편익은 5월 산업부 발표 가구당 평균치, 출처=산업부·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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