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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서는 실거주 의무가 없는 재건축 단지를 중심으로 갭투자가 다시 유행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엄포’로 끝난 규제에…“피해보상 하라”
13일 국회와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전날 정부·여당은 작년 6·17부동산대책의 핵심 규제안인 재건축 조합원의 2년 실거주 의무(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법률안·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 대표발의)를 빼기로 했다. 이 법안이 원안대로 통과되면 재건축 조합원은 해당 아파트에 2년간 실거주해야만 분양권을 얻을 수 있었다.
애초 정부는 재건축시장의 갭투자(전세 낀 매매) 방지를 위해 이 같은 규제를 마련했다. 당시 시장에서는 전세 물량이 줄어 임대시장이 불안해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지만 밀어붙이다가 전세난이 심화하자 1여 년 만에 규제를 철회한 것이다.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은 이날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시장에서 실제 집 소유자가 실거주를 하겠다고 들어오는 바람에 살고 있던 세입자가 이주하는 문제점이 있었다”며 철회 배경을 설명했다.
재건축시장에서는 오락가락하는 부동산정책 때문에 피해를 봤다는 불만이 나오면서 정책 신뢰도가 바닥에 뚝 떨어진 분위기다.
온라인 부동산 커뮤니티에서는 “집주인이 실거주한다고 나가래요”라는 세입자의 볼멘소리가 6·17대책 이후부터 수두룩했다. 이후 해당 법안이 폐지되자 실거주 의무 ‘엄포’로 피해 보상은 어디서 받아야 하느냐는 말이 나온다.
한 네티즌은 “실거주해야 한다고 해서 1억원을 들여 인테리어 공사를 하고 들어가 살고 있는데 이게 무슨 상황이냐”며 “1억원 사기 당했다”고 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재건축 실거주 2년 해야한다고 해서 임대사업자 자진말소하고 실거주하고 있는데 벌금 3000만원을 보상 받을 수 있느냐”며 “혼란스럽다”고 했다.
임대사업자는 의무임대 기간을 절반 이상 채워야 자진 말소가 가능한데 의무 기간을 채우지 않으면 과태료 3000만 원을 물어야 한다. 앞서 정부가 2년 실거주 의무화를 추진하자 불안해진 임대사업자들 중 일부가 과태료를 내고 자진말소를 했다.
◇“전세난에 철회 ‘다행’…갭투자 유행 우려”
부동산시장 전문가들은 이번 규제 철회는 당연한 수순이라고 입을 모았지만 갭투자가 재유행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 원장은 “해당 규제로 전세난이 심화하는 등의 역효과가 있었는데 백지화된 것은 한편으로는 시장에서는 다행으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무주택자가 전세를 끼고 주택을 매입해도 실거주가 아니면 투기로 간주하던 정책방향이 현실과 상충한 결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고 원장은 다만 “실거주 의무를 피했기 때문에 토지거래허가구역이 아닌 노원구 등의 재건축 단지에 갭투자 수요가 유입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토지거래허가구역 내 재건축 단지를 사려면 취득 목적이 실거주여야 한다. 이 때문에 토지거래허가구역 외 재건축단지에 투자수요가 몰릴 것이라는 이야기다. 현재 서울 내 토지거래허가구역은 △압구정동 △여의도동 △목동 △성수동 △대치동 △삼성동 △청담동 △잠실동 등이다.
실제로 서울 노원구 상계동의 C공인중개사사무소 대표는 “상계주공은 재건축활성화 기대감으로 집값이 단기간 급등한 곳이어서 매수 문의가 주춤했는데 어제 실거주의무법이 백지화하면서 갭투자 문의가 제법 오고 있다”며 “다만 매매가 대비 전셋값이 낮아 투자시 현금 6억~7억원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당정은 갭투자 재유행 방지를 위한 보완책 마련을 고심하고 있다.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년 실거주 의무화를 하려고 한 것은 갭투자를 막기 위한 것이었다”며 “실거주안을 없앤 만큼 갭투자나 원정투기를 어떻게 막을지 보완해야 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노 장관은 “실수요자들을 보호하고 투기 수요를 막기 위한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이나 시장 조사를 해서 투기 우려가 있는 곳은 현행 법에 따라 조치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