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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52시간 근무 `D-10`..여전히 갈피 못잡는 기업들

양희동 기자I 2018.06.20 15:53:53

인력 더 뽑기 어려운 중소기업 난감
정부 가이드라인 명확치 않아 불만
대기업도 임원 운전기사 등 애매

20일 오후 서울 중구 세종대로 상의회관에서 열린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대응방안’ 전국상의 순회 설명회에 각 기업의 인사·노무 담당자 170여명이 모여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과 관련한 강의를 듣고 있다.
[글·사진=이데일리 양희동 기자] “사람을 더 뽑으세요. 이런 말은 제발 하지 마세요”.

경남의 한 시내버스회사는 현재 기사들이 전일제로 근무를 하고 있다. 버스 1대 당, 기사 1명이 새벽부터 막차까지 차량을 운행하는 업무 형태라 현재는 정규 시간 외에도 연장 근무를 해야한다. 그러나 다음달부터 주 52시간이 시행되면 연장 근로 12시간까지 모두 소진하더라도 기사들이 일주일에 2일만 버스를 운행을 해도 근무시간이 초과해버린다. 따라서 기사들은 이틀 이상 근무를 할 수가 없다.

국토교통부와 고용노동부, 버스운송사업조합연합회 등이 여러 번 모여 논의를 벌여 탄력근로제를 선택하는 방향으로 협의가 이뤄지고 있지만, 이 역시 한 주에 3일만 일하면 그 다음주는 이틀 밖에 일을 못한다. 업체 입장에선 현 상황에서 그대로 제도가 운영되면 전체 버스 노선 중 절반 가량은 운행을 할 수 없다. 이 회사 인사·노무 담당자는 “노동부가 별다른 대책을 알려주지도 않았다. 제도 시행 불과 3개월 전에 내용을 알려주고 갑자기 시행을 하니 준비할 시간 자체가 없었다”며 “지금 상태에서 주 52시간에 맞춰 정상적으로 운행을 하려면 버스기사를 최소 30% 이상 더 뽑아야하는데, 자금 사정상 불가능해 답답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인력 채용’·‘공정 자동화’ 모두 어려운 중소기업 현실

오는 7월 1일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부터 시행될 주 52시간 근무제를 불과 열흘 앞두고 각 기업들은 여전히 갈피를 못잡고 있다.

20일 오후 서울 중구 세종대로 상의회관에서는 대한상공회의소와 한국능률협회컨설팅 주최로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대응방안’ 전국상의 순회 설명회가 열렸다. 이날 설명회에는 전국에서 온 다양한 업종·업체들의 인사·노무담당자 170여명이 참석, 강의실을 가득 메우면서 주 52시간 시행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방증했다. 이 자리에선 △근로시간 단축과 노무관리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인사제도 운영 △일하는 방식 개선과 조직·개인 변화 관리 등을 중심으로 강연이 이뤄졌다.

하지만 이날 참석한 기업 관계자들은 대기업과 중견·중소기업 모두 정부로부터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받지 못해, 업종별로 서로 정보를 교환하며 분위기를 살피는 모습이엇다. 또 300인 미만이라 당장 주 52시간 근무제가 적용되진 않지만 1년 6개월 가량의 남은 기간에도 별다른 해결책이 보이지 않아 불안감을 호소하는 업체 관계자들도 많았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6개월의 충분한 계도기간을 건의했고 정부도 수용의사를 밝혔지만 혼란을 잠재우긴 턱없이 시간이 부족하다는게 참가자들의 반응이었다.

이날 설명회에 참석한 경기도 안성의 한 반도체·자동차 부품업체 관계자는 자금 사정상 인력 충원이나 자동화 전환 중 어느 쪽도 선택할 수 없는 어려움을 호소했다. 이 관계자는 “우리 회사는 당장 제도가 시행되지는 않지만 다른 회사들은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 분위기를 보고 해법이 있는지도 파악하기 위해 왔다”며 “현재는 직원들이 2교대로 근무를 하고 휴일 잔업도 많은데 52시간 근무제가 되면 3교대로 바꿔야하지만, 중소기업 입장에선 사람을 더 뽑을 수가 없다”고 전했다. 이어 “중소기업 입장에선 발등에 불이 떨어졌고, 다른 접근 방식이나 가이드라인이 필요한데 현재까지 정부에서 알려 준 게 전혀 없다”며 “인력도 자동화 및 생산성 향상 등으로 줄어들고 있는 추세인데 다시 직원을 더 뽑을 여력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기업은 인력을 줄이고 공정 자동화로 대응할 수 있겠지만 중소기업 입장에선 투자가 많이 필요한 부분이라 고려 자체가 어렵다”며 “자동화로 전환이 가능했다면 이미 예전에 했을 것”이라고 답했다.

◇대기업도 임원 운전기사 등 업무별로 ‘대안 고심’

주 52시간 근무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주요 대기업도 업무별로는 근무 여건이 달라 적용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이번 참석한 한 10대 그룹 계열 제조업체 인사·노무 담당자는 대표적으로 임원들의 운전기사 인력에 대한 부분을 거론했다. 지금까지는 상무급 이상 모든 임원들에게 차량 1대당 기사 1명씩을 배정해 왔지만, 주 52시간 근무제를 실시하면 근로시간 측정이 어렵다고 밝혔다.

이 담당자는 “운전기사 분들에 대해 자체적으로 52시간에 맞춰 업무시간을 체크해보니 담당 임원의 해외 출장이나 업무 이동, 구성원들과의 소통 자리 등을 가질 때 대기시간, 주말 대관 업무 등을 근무시간으로 산정하기가 매우 어렵다”며 “임원 1명 당 기사를 2명씩 두는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지만 비용부담이 너무 크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른 대기업들의 경우 전무급 이상에게만 운전기사를 배정하거나, 대리기사업체와 계약해 업무상 필요할 때만 운전기사를 아웃소싱하는 방안 등도 검토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어떤 방법이 맞는지를 계속 고민하고 있지만 여전히 답은 찾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대기업 관계자는 재무 분야나 경영 관리 등 지원 업무에서 52시간 근무 대응이 힘들다고 답했다. 업무의 특성상 시기별로 업무가 몰리는 시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관계자는 “재무 분야에서는 각 분기 결산 시기에 업무가 몰리기 때문에 52시간 근무로 대응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며 “경영 관리에서도 연말 등 시기별로 경영 계획을 새로 수립할 시기엔 연장 근무가 필요한데 일단 탄력 근무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지만 실제 시행되면 어떤 부작용이 생길지 예상할 수 없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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