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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박업 등록하거나 벌금 내거나'…퇴로 막힌 생숙 소유주들 반발

신수정 기자I 2023.09.25 19:31:19

['생숙, 주택 아니다' 못박은 정부]
허가권 여러 기관에 흩어져 있어
올 2월 용도변경 가구수 1%대 그쳐
소유주들 "용도변경 하늘의 별따기"
"생숙 정의 여저히 모호…혼란 여전"
"시대변화 따른 개념 정립부터 해야"

[이데일리 신수정 기자] 40대 김 모 씨는 지난 2019년 부산 해운대구의 생활숙박시설인 한 레지던스 분양권을 20억원대에 샀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르던 때여서 김 씨는 큰 결심을 하고 가진 모든 돈과 30년 만기 상가담보대출 80%를 받아 샀다. 원금은 고사하고 한 달 이자만 300만원 이상씩 내고 있는 김 씨는 내달 14일 생숙 이행강제금 부과로 은행으로부터 대출 상환 압력을 받을까 불안에 떨고 있다. 정부가 1년 더 유예했으나 부동산 경기 악화에 생숙의 인기가 떨어져 매수자를 찾기가 쉽지 않은 데다 숙박업으로 전환하고 싶어도 이를 대행하는 회사에 인감도장을 맡겨야 하는데 자칫 레지던스를 날릴까 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정부가 생활형숙박시설(생숙)의 실거주 금지 원칙을 못 박고 ‘생숙은 숙박시설’이라고 재확인했다. 그러면서 생숙 거주자와 투자자의 혼란을 막기 위해 다음 달 14일 생숙의 숙박업 미신고에 따른 이행강제금 부과를 1년 더 연장하겠다고 했다. 유예는 하지만 그 사이에 숙박업이던 주거용 오피스텔이던 전환신고를 마치라며 압박에 나섰다. 생숙은 소유자가 직접 거주하면 불법 건축물로 본다.

이를 두고 생숙 소유주의 원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주거용인지 숙박용인지 해당 제도를 도입할 때는 명확히 구분도 안 해주더니 소유주의 재산권마저 침해한다며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단순히 이행강제금 부과 유예만 내놓고 시장의 혼란을 부추길 게 아니라 이번 기회에 주거와 생활여건 변화에 따른 주거개념과 유형의 변화가 필요하다며 일본 등 해외 사례를 검토해 세부 기준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래픽=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그동안 생숙 실거주는 불법”

국토부는 25일 내년 말까지 생숙 숙박업 신고 계도기간을 부여하고 내달 14일부터 이행강제금 처분을 내년까지 유예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다만 주거용으로의 사용은 할 수 없다는 원칙을 재확인했다. 오피스텔은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소득세 중과 대상에 포함된다. 그러나 생숙은 주택으로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종부세와 양도세 중과 대상에서 배제된다. 투자수요가 많은 부동산 경기 상승기 때 생숙이 인기를 끌었던 이유다.

일부 투자자들은 이를 악용, 그동안 편법으로 숙박시설이 아닌 실거주용으로 생숙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오피스텔처럼 세를 놓을 용도로 생숙을 사들인 것이다. 생숙 주인은 종부세와 양도세 중과를 피하면서도 오피스텔과 사실상 똑같은 임대소득을 챙길 수 있다. 이에 정부는 2021년 건축법 시행령 개정, 생숙에 대한 숙박업 신고를 의무화했다. 국토부는 2021년에 숙박업 신고를 의무화했을 뿐 원래 실거주용은 아니었다고 했다. 다시 말해 생숙이 건축법에 편입될 때인 2013년부터 생숙은 숙박시설이었기 때문에 생숙 소유자가 실거주하면 불법이지만 눈감아 주고 있었으니 숙박업 신고를 하던, 주거용 오피스텔로 전환하라는 것이다.

다음달 강제이행금 부과를 앞둔 생활형 숙박시설 소유주와 거주자들이 19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국토교통부 앞에서 강제이행금 폐지 등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용도변경 규제 풀어 주거용으로 바꿔라”

전국레지던스연합회는 생활형 숙박시설의 준주거 인정 불발에 국토부가 유도한 용도변경 정책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국레지던스연합회 관계자는 “2년간 주거 사용을 위한 용도 변경을 추진하며 최선의 노력을 다했지만 민간에서 이를 이행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며 “각종 규제 족쇄와 관계 부서의 협의 부족, 국토부의 소극 행정으로 대부분 생숙이 용도 변경을 완성하지 못했다. 국토부가 나서서 규제를 정리하지 않으면 실거주민의 고통은 지속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생숙의 용도변경 현황을 보면 주거용 용도변경 대상 가구는 2월 기준 8만 6920가구로 이 중 오피스텔 용도변경 완료 가구수는(1033가구) 1.17%에 불과하다. 용도변경이 1%에 그친 이유는 허가권자가 여러 기관에 뿔뿔이 흩어져 있어서다. 현재 생숙의 주거 제한은 국토부(건축정책관) 담당 업무다. 숙박시설의 숙박업 등록 신고를 규제하는 부서는 보건복지부다. 생숙의 주거형 오피스텔 용도변경 정책에서 허가권자는 각 지방자치단체장이다. 용도변경 전제 조건에 지구단위계획 변경이 필요한 경우도 지자체가 담당한다. 용도변경을 신청·검토하는 단계에서 관계부서는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돼 소방·교육·교통 등 관련법의 모든 규제를 피할 수 있어야 한다. 일반 민간인이 수행할 수 없는 정책이었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김지엽 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는 “현실적으로 주택이나 오피스텔로 용도 변경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수분양자에게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과도한 규제다”며 “1인 가구가 많고 수도권 주택 공급 필요성을 고려할 때 생숙도 준주택으로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래픽=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생숙 관련 정책 정비 시급

처음부터 숙박업을 목적으로 인허가한 건물이니 취지에 맞게 사용하도록 관련 정책을 정비하는 게 우선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무분별하게 용도 변경을 허용하는 것은 특혜 논란이 생길 수 있다”며 “생숙의 정의는 여전히 모호해 실사용자의 혼란을 일으킬 수밖에 없어 구체적인 보완책을 논의하고 생숙의 가치에 대해 평가·논의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시장 안팎에선 시대 변화에 따른 새로운 체류형 주거시설 필요성이 커지는 만큼 미국 뉴욕과 일본의 사례를 연구해 ‘신주택유형’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현재 뉴욕은 30일 이상 거주하는 숙박시설에 대해 ‘주거용도’로 인정하며 성능규제를 시행 중이며 일본은 인구 감소와 라이프스타일 변화에 맞게 선호하는 입지·주택 유형을 반영해 체류형 주거시설 개념을 도입했다.

김지엽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는 오피스텔에 대해 건축법상 업무시설이지만 시대와 시장변화를 수용해 주거 유형으로 인정하고 주택법상 준주택으로 도입했다”며 “생숙 또한 ‘숙박시설’에 한정돼 있으나 이미 주거용도도 활용되고 있는 실제 사용용도를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석호영 명지대 교수는 “생숙을 주거시설 또는 숙박시설, 주거와 숙박 겸용의 시설로 볼지 명확한 개념 정리가 필요하다”며 “생숙 입주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데도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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