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우리집도 필로티인데"…한반도 전역에 퍼진 '지진 포비아'

김성훈 기자I 2017.11.16 15:16:37

1978년 관측 이래 규모 5.0↑ 지진 9건 중 4건 2년새
내진설계 대상 건축물 중 20.6%만 내진설계 적용
불안한 시민들 고층·노후건물 방문 피하기도
"다중이용시설 내진설계 의무화·인센티브 검토해야"

16일 오후 경북 포항시 장량동 한 필로티 구조 건물 1층 기둥이 뼈대만 드러내 위태로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김성훈 이진철 기자] “지금 사는 빌라 1층이 필로티(1층에 기둥만 세우고 2층 이상부터 건물을 짓는 방식)인데 지진에 피해가 생기는 거 아닌지 걱정이네요” “전날 일하는데 건물이 흔들리는 게 느껴져서 순간 식은땀이 났습니다. 출근하기 무섭네요.”

15일 경상북도 포항에서 5.4규모 지진이 발생하는 등 최근 2년 새 규모 5.0을 웃도는 지진이 네 차례나 이어진데다 전국에 내진설계(지진에 특화된 구조물 안전 설계)를 적용한 건축물이 20%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지진 피해를 우려하는 시민들이 적지 않다.

◇1978년 관측이래 규모 5.0 이상 지진 9건 중 4건이 2년새 발생

기상청에 따르면 지진 관측을 시작한 1978년 이후 국내에서 일어난 규모 5.0 이상의 지진은 총 9차례다. 이 가운데 4건이 최근 2년 새 발생했다. 지난해 7월 울산 동구 동쪽 해역에서 규모 5.0의 지진이 발생했다. 이어 두 달 뒤인 9월 12일 경북 경주 남남서쪽에서 규모 5.8과 5.1의 지진이 각각 일어났다. 전날 규모 5.4의 지진이 또 일어나며 역대 1~2위 규모 지진이 1년 간격으로 발생했다.

특히 전날 지진 발생 직후 서울 시내 전역에서 진동을 느꼈다는 증언이 이어지며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여의도에서 근무하는 손모(32)씨는 “갑자기 사무실에 있는 물건들이 흔들림을 느끼던 찰나에 긴급재난문자를 보고 나서 더 두려움이 커졌다”며 “순간 당황해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고 말했다.

더욱이 전국에 들어선 건물 5곳 중 4곳은 내진설계를 갖추지 않아 우려가 사그라지지 않는 상황이다.

국토교통부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국토위) 소속 윤영일 국민의당 의원에게 제출한 ‘전국 건축물 내진설계 현황자료’에 따르면 전국 내진설계 대상 건축물 273만 8172동 가운데 내진확보가 된 건축물은 56만 3316동(20.6%)에 그쳤다.

서울시 건축물 내진설계율은 27.5%(지난해 10월 기준)로 주거용 건물이 29.7%, 비주거용 건물이 23.6% 이었다. 특히 시내 저층주택 내진설계 대상 12만 6116동 가운데 내진성능을 갖춘 건축물은 1만 5954동으로 전체 12.4%에 불과하다.

◇고층건물·노후건축물 기피 현상도

상황이 이렇자 고층 빌딩이나 노후 건축물을 기피하는 모습마저 나타난다.

이틀 전 싱가포르에서 모국을 찾은 박모(34·여)씨는 “주말에 시간을 내서 고층 전망대를 갈 계획이었는데 생각을 바꿨다”며 “혹시 모를 안전사고에 대비하는 게 더 중요한 것 같다”고 전했다. 직장인 안모(31)씨는 “평소 출퇴근 때 이용하는 주차장이 필로티인데 지진 여파로 자동차들이 부서진 모습을 보고 다른 곳으로 주차장을 바꿀 생각”이라고 말했다.

업계는 최첨단 기술 적용으로 지진에 안전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나섰다.

국내 최고층(123층·555m) 빌딩인 롯데월드 타워 관계자는 “국내 내진설계 기준은 진도 7~8 정도의 지진을 대상으로 하지만 롯데월드 타워는 진도 9의 지진에도 손상되지 않는다”며 “전날 지진에도 흔들림의 강도가 미미해 117층~123층 전망대를 정상적으로 운영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보강이 시급한 학교시설 내진설계 투자비용을 한해 1000억원에서 2500억원으로 늘려 시행하고 있다.

안영규 행정안전부 재난관리정책관은 서울 광화문 정부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지난달 27일 신규건축물 내진설계 대상을 현행 3층 이상에서 2층 이상(또는 연면적 500㎡ 이상)으로 확대하는 방안이 입법화됐다”며 “이전부터 지적돼온 필로티 건축물 추가 피해와 관련해 국토부와 함께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국회 예산정책처 추계에 따르면 기존 건축물의 내진보강 비용은 ㎡당 9만~19만원 정도이며 신축 건축물은 공사비의 1~3% 정도가 추가된다. 그러나 민간 건축물은 개인소유이기 때문에 정부가 내진보강을 강제하기 어렵다.

최민수 건설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기존 주택에 대해 내진성능 진단이나 구조 보강을 확대하려면 국가나 지자체에서 소요 비용을 분담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며 “공동주택 리모델링 사업의 인·허가 시 내진 보강을 전제로 증수나 용적률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고 말했다.
이낙연 국무총리(오른쪽 두번째)가 16일 지진피해 지역인 포항 흥해읍 대성아파트를 방문해 김관용 경북도지사(오른쪽), 이강덕 포항시장(오른쪽 세번째)과 피해 상황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