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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법원 등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7부(부장판사 손승온)는 지난 14일 한은이 정부(조달청)를 상대로 낸 38억원 상당의 손해배상금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당시 재판부는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며 “원고가 소송 비용을 부담한다”고 판시했다.
양 기관 사이 분쟁은 20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은은 창립 70주년인 2020년을 목표로 한 서울 중구 남대문로 통합별관 재건축 공사입찰을 조달청에 위임했다. 조달청은 공개입찰을 통해 계룡건설을 시공사로 선정했다. 하지만 공사는 곧바로 진행되지 못했다. 입찰에 참여했던 삼성물산이 이의를 제기하면서다. 삼성물산은 당초 공고됐던 예정가격(약 3200억원)보다 100억원 이상 초과한 가격을 낸 계룡건설을 낙찰예정자로 선정한 결과는 절차상 하자가 있다며 기획재정부 산하 국가계약분쟁조정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했다.
당초 조달청은 입찰절차에 하자가 없다는 입장이었다. 조달청은 2018년 4월 보도자료를 통해 “국가계약법령상 실시설계 기술제안 입찰에선 입찰금액 평가 시 입찰금액을 예정가격 이하로 제한하는 규정은 없다”며 “관련 법령 및 입찰공고문에 따라 적법하고 투명하게 입찰을 정상적으로 집행했다”고 설명했다.
삼성물산은 조정신청을 취하했지만, 2018년 10월 감사원의 감사가 진행됐다. 시민단체가 실시설계 기술제안입찰에서도 예정가격을 초과해 입찰할 경우 예산낭비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냐며 공익감사를 청구하면서다. 이듬해 4월 감사 결과 감사원은 소관부서인 기재부가 ‘예정가격 범위 내 낙찰은 예정가격을 작성하는 모든 입찰방법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원칙’이라는 유권해석을 내렸다는 점을 들며 계룡건설의 낙찰자 선정은 타당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라 조달청은 계룡건설 입찰을 취소했다. 이에 계룡건설은 조달청의 입찰 취소가 부당하다며 법원에 재입찰을 중단하는 가처분신청과 낙찰자 지위를 확인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며 그 지위를 인정받았다. 조달청은 법원 결정에 따랐고, 계룡건설의 정식 시공계약은 2019년 말에서야 체결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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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은 공사 막바지 시점인 작년 2월 말께 소장을 냈다. 조달청이 한은 의사를 반영해 임무를 수행할 의무가 있음에도 의사에 반해 입찰취소를 함으로써 위임계약을 위반했다는 취지다. 이는 민법 681조에 따라 ‘선량한 권리자의 주의(선관주의) 의무’를 위반한 것이고, 조달청 관계 공무원의 고의과실도 인정된다는 주장이다. 한은은 입찰취소공고가 올라온 시점부터 계약절차가 재개된 약 4개월 간의 대체근무지였던 서울 중구 삼성본관 건물 임차료 등 38억원 상당을 배상하라고 청구했다.
약 1년 간의 소송 끝에 법원은 한은 측 주장을 모두 증거가 부족하다며 기각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재판부는 조달청의 입찰취소공고 직전 한은이 조달청 측에 보낸 이메일을 주목했다. 당시 한은 관계자는 이메일에 “입찰취소, 신규입찰 등 절차 진행 중 법적 분쟁으로 사업이 다시 지연되지 않아야 하고, 법적 분쟁이 발생하지 않도록 법적 리스크를 면밀히 검토해 절차에 착수해야 하겠다”며 “이를 감안해 금일 예정된 조치 계획 발표를 재고해달라”고 적었다. 한은은 이를 입찰취소공고를 반대한 명시적 근거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해석을 달리했다. 오히려 묵시적으로 신규입찰 진행을 승인했다고 봤다.
재판부는 “한은은 조달청이 이 사건 사업 입찰취소와 신규입찰절차를 진행한다는 전제 아래 법적 분쟁 등으로 사업이 또다시 지연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법적리스크 등을 면밀히 검토해 준비를 마친 후 절차에 착수하는 것이 바람직하므로 입찰취소 공고를 연기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보일 뿐, 입찰취소에 반대하는 의사를 표시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어 “입찰취소 후 신규입찰을 진행하는 경우에도 가처분이 인용되지 않도록 적극 대응하고 신규입찰공고기간을 최대한 단축할 것을 요청했을 뿐이므로 한은은 조달청이 입찰절차를 취소하고 신규입찰을 진행하는 것을 묵시적으로 승인했거나 동의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부연했다.
조달청의 선관주의 의무 위반과 조달청 공무원의 고의·과실도 인정되지 않았다. 재판부는 “국가계약법에서 실시설계 기술제안입찰의 경우 예정가격을 초과해 입찰한 자와 계약을 체결할 수 없다는 내용을 규정하지 않았고, 입찰공고 당시 그 해석이 확립돼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사후적으로 관련 판결에서 입찰취소공고가 효력이 없다는 판결이 선고됐다고 하더라도 조달청이 선관주의 의무를 위반했다거나 조달청 공무원의 직무 집행에 있어 고의 또는 과실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한은은 아직 항소 여부를 결정하지 못했다. 판결문 도달 시점 이후 2주 뒤까지 항소가 가능한데, 한은은 법원이 지난 15일 송부한 판결문을 아직 받지 않고 있다. ‘민사소송 등에서의 전자문서 이용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송부일부터 일주일 이내 판결문을 확인하지 않으면 일주일이 지난 시점에 송달된 것으로 본다. 이에 따라 오는 23일 판결문이 송달 처리됐다고 가정하면, 항소 기한은 다음달 8일까지다. 기간 내 한은이 항소하지 않으면 1심 결과는 확정된다.
한은 관계자는 “판결문을 봐야 하는데, 아직 송달을 안 받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