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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드는 거품론…"주가 고평가" 월가 큰 손들 잇따라 경고

이준기 기자I 2020.05.14 14:52:01

테퍼·드러켄밀러 등, 일제히 "증시 너무 고평가" 지적
거세지는 美中갈등·바이든 승리 땐 증세 등 최대 도전

데이비드 테퍼 아팔루사 매니지먼트 창립자. 사진=AFP
[뉴욕=이데일리 이준기 특파원] “지금 뉴욕 주식시장은 내가 본 것 중 1999년 (IT 버블) 이후 두 번째로 가장 고평가돼 있다.”(미국 헤지펀드 업계의 거물 데이비드 테퍼 아팔루사 매니지먼트 창립자)

“수평선 넘어 어렴풋이 보이는 줄도산 가능성과 증시 환경의 불확실성을 고려할 때 주식시장이 너무 높은 데 위치해 있다.”(전설적인 투자자이자 조지 소로스의 수석 투자전략가를 지낸 스탠리 드러켄밀러 뒤켄패밀리오피스 대표)

월가(街)의 큰 손들이 잇달아 미국 뉴욕증시가 과도하게 고평가돼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미·중 무역전쟁, 미 대선 등 곧 직면할 굵직굵직하고 거대한 도전들을 감안할 때 미 주식시장은 언제든 주저앉을 수 있다는 얘기다.

◇“렘데시비르에 과민반응·연준, 좀비 기업 살려 ‘반등’ 어렵게 해”

코로나19 사태 이후 3330만명 이상의 미국인이 실직했고, 8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지만, 월가(街)는 빠른 회복을 넘어 매섭게 질주하고 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는 코로나19발(發) 충격으로 바닥을 찍은 3월23일 이후 30% 가까이 뛰었다. 금융정보업체 리피니티브에 따르면 S&P 500지수의 현재 예상 수익률은 20배를 넘어 IT 버블 이후 가장 높다.

이 같은 실물경제 위기에도 증시가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제로금리 정책과 각종 선제적·파격적인 ‘양적완화’(QE) 정책 때문인 점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월가의 베테랑 투자 전략가이자 야데니 리서치의 대표인 에드 야데니는 지난주 고객들에게 보낸 메모에서 “연준은 바주카포와 헬리콥터를 건너뛰고 B-52 전략폭격기로 직행해 현찰로 금융시장을 융단폭격하고 있다”며 “금융시장의 즉각적인 반응은 ‘돈이 쏟아지고 있다’는 거다”고 할 정도다. 파월 의장은 13일(현지시간) 연설에서도 코로나19발 경제충격과 관련, ‘불확실성’ 및 ‘하방 위험’을 거론하면서 “우리는 피할 수 있는 것을 피해야 한다”며 연준의 통화정책도구를 최대한 사용하겠다는 의지를 재차 드러냈다.

그러나 드러켄밀러는 되레, “연준의 정크본드 매입 등은 좀비 기업을 양산하는 등 향후 미국의 경기회복을 방해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작금의 증시 랠리를 두고도 코로나19 치료제인 렘데시비르에 대한 과민반응 등이 영향일 미쳤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날 드러켄밀러와 테퍼의 ‘뉴욕증시의 과도한 상승’ 발언은 파월 의장의 ‘불확실성 및 하방위험’ 발언과 맞물려 뉴욕증시의 하락을 이끌 정도로 강력했다.

‘증시 활황’을 자신의 최대 업적으로 꼽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즉각 불만을 드러내며 견제에 나섰다. 이들 큰 손의 ‘지적’으로 이날 뉴욕증시가 곤두박질치자,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 “이른바 ‘부자들’이 시장에 대해 부정적인 발언을 할 때, 일부는 그 반대에 큰돈을 베팅하고, 큰돈을 벌고 있음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고 썼다.

스탠리 드러켄밀러 뒤켄패밀리오피스 대표. 사진=AFP
◇美中 경제전쟁, 증시에 치명적·바이든 승리 땐 ‘감세’ 없던 일로

큰 손들의 경고대로 올여름 증시는 만만찮은 ‘도전’에 직면할 공산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장기적으로 ‘낙관론’을 지지하는 골드만삭스마저 향후 3개월간 S&P500지수는 2400선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한 게 대표적이다. 골드만은 △경제 재개로 인한 코로나19 감염률 증가 △느린 경기반등 △주요 은행들의 현금비축량(대손충당금) 증가 △기업들의 배당금 삭감 △미 대선 △미·중 긴장 심화 등을 그 이유로 꼽았다.

이 가운데 미·중 갈등은 증시에 매우 치명적이다. 올 1월 체결된 1단계 무역합의가 붕괴하고, 이로 인해 양국이 관세 폭탄 등을 날리며 무역전쟁을 재개한다면 증시에 치명타로 작용할 수 있다. 투자회사 레이먼드제임스의 에드 밀스 워싱턴정책 분석가는 “양국 관계의 긴장은 더욱 부정적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연말께 정면대결 양상으로 갈 것 같다”며 “그러나 시장은 이 위협을 충분히 인정하지 않은 분위기”라고 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재선 가능성이 줄었다는 평가를 받는 트럼프 대통령의 ‘퇴장’도 증시엔 부정적일 수 있다. 최근 들어 공화당과 백악관 내부에서 모락모락 피어나는 대선 연기 가능성은 의미심장하다.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보좌관은 전날(12일) 미 주간지 타임과 인터뷰에서 11월3일 대선 실시를 확신하지 못한다는 취지의 답변을 내놓는데, 이를 두고 민주당 내부에선 트럼프 측이 승리 가능성이 작다고 판단할 경우 코로나19 확산을 이유로 들어 대선 연기를 시도할 수 있다는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만약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하고 이미 하원을 장악하고 있는 민주당이 상원까지 거머쥐게 될 경우 트럼프 행정부의 법인세 인하 등의 정책은 없던 일이 될 수 있다. 이미 바이든 전 부통령은 대선 경선 경쟁자이자 ‘좌파 진영’의 리더격인 버니 샌더스(무소속) 상원의원과 함께 정책 개발을 모색할 실무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경제 정책이 좌편향 될 공산이 큰 것으로, 월가로서는 달갑지 않은 일이다. 이와 관련, 골드만은 “트럼프 행정부의 감세 정책이 번복될 경우 S&P 500지수의 주당 평가액은 19달러 감소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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