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박원순 성추행 피소 후 사망’ 1년…무엇이 달라졌나

이소현 기자I 2021.07.09 18:53:38

13일부터 성폭력방지법 개정안 시행…발생 즉시 통보
"법 개정뿐 아니라 제대로 작동하는 구조 중요"
"직장 내 성범죄, 개인 아닌 조직 문제로 인식해야"

[이데일리 이소현 조민정 기자] 9일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1주기 추모제가 조촐하게 열렸다. 박 전 시장은 성추행 혐의로 고소당한 다음 날인 2020년 7월 9일 극단적인 선택으로 생을 마감했다. 인권 변호사의 길을 걸었으며, 스스로 ‘페미니스트’로 자처했던 박 전 시장의 성추행 피소 사실은 물론, 피해자에게 해명이나 사과 대신 스스로 택한 죽음은 충격의 연속이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는 진일보했을까. 박 전 시장의 죽음을 놓고 지지자와 피해자를 지원하는 여성·시민단체의 입장 충돌은 여전하다. 지난달 군대 내에서 성추행 피해를 당한 공군 부사관이 사망하는 등 직장 내 성폭력 문제도 지속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직장 내 성범죄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관련 법 개정뿐 아니라 개인이 아닌 조직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2020년 7월 10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 서울대학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박원순 서울시장 빈소에 고인의 영정이 놓여 있다. (사진=연합뉴스)
◇朴 지지자 “추모도 금기시”…피해자 “일상 복귀 요원”

이날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진행된 박 전 시장의 1주기 추모식에는 부인 강난희씨와 딸 박다인씨가 참석했다. 조계사 천도재에 이어 10일부터 11일까지 창녕 묘역 시민참배로 진행될 예정이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해지면서 유족만 참석하는 소규모 추모제로 전환했다.

조촐하게 열린 추모식이었지만, 박 전 시장의 지지자들은 행사에 참석해 애도를 표했다. 이들은 유족을 향해 “건강하세요”, “힘내세요”, “우리 함께 합시다“라고 외치기도 했다.

또 여전히 성추행 의혹에 대해 확실하게 밝혀진 사실이 없다며 진실 규명을 촉구하기도 했다. 박 전 시장의 지지자 중 한 명으로 이날 추모제 생중계를 진행한 유튜버 손유재(50)씨는 “성추행을 하지 않았는데 박 시장이 억울하게 부당한 일을 겪었다고 본다”며 “확실하게 사실관계를 조사하고 사실을 밝혀야한다”고 말했다.

이어 50대 이모씨도 “박원순 지지자들은 성추행 문제 때문에 추모의 자유가 없고, 추모하는 것도 사회적으로 금기시된 분위기”라며 “피해자들이 피해에 대해 마음껏 이야기할 자유가 있는 것처럼 우리도 자유롭게 추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추모식을 촬영하는 보수 유튜버와 박 전 시장 지지자의 갈등도 있었다. 한 우파 성향 유튜버가 “성추행을 해놓고 안 했다고 한다”고 말하는 등 고인을 비방하며 추모제를 생중계하자 박 전 시장의 지지자인 50대 남성이 “여기서까지 이러지 말라”며 촬영을 제지해 잠시 설전이 오갔다.

한편, 서울시장위력성폭력사건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은 전날 공동성명을 통해 “여전히 피해자의 ‘일상으로의 복귀’는 요원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또 “수사기관이 ‘공소권 없음’을 핑계로 지지부진하게 시간을 끄는 동안 피해자와 변호인, 지원단체에 대한 공격은 나날이 심해졌다”며 “가해자 사망 후 또다시 성폭력 가해에 이용된 권력을 두둔하며 피해자를 의심하고 비난하는 사회의 일면을 목격했다”고 언급했다.
9일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1주기 추모제가 열린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부인 강난희 씨가 추모객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사진=조민정 기자)
◇직장 내 성범죄 ‘ing’…“인식 개선 우선…교육 필요”

박 전 시장이 성추행 혐의로 고소된 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크게 변화한 된 것은 오는 13일부터 시행되는 성폭력방지법 일부 개정안이다. 공공기관에서 성폭력이 발생했을 때 기관장은 피해자의 명시적 반대가 없는 한 사건을 여성가족부 장관에게 바로 통보하고 수사기관에 신고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잇단 지방자치단체장의 성폭력 사건으로 법 개정이 이뤄졌지만, 실질적으로 법과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는 구조를 만드는 게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소희 한국여성민우회 소장은 “지금까지 성폭력 사건이 보고되지 않아서 문제가 된 건 아니었다”며 “충분히 알려졌음에도 해결하지 않으려는 내부 분위기와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문제가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제도가 있지만 작동하지 않은 게 문제였기 때문에 법 개정도 중요하지만 원래 있는 제도가 작동하게 만드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박 전 시장의 사건 등으로 우리 사회가 성범죄 문제에 대해 경각심을 가지게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신진희 성범죄피해전담 국선변호사는 “박원순, 오거돈 전 시장과 같은 직장 내 성폭력 사건 사례가 보도되는 것을 보고 ‘이런 형량을 받는구나’, ‘나도 조심해야지’라고 조심하게 되는 경향은 있다”며 “일부 반발의 목소리도 있긴 하지만, 사회 인식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특히 직장 내 성범죄를 개인이 아닌 조직의 문제로 인식하는 변화와 교육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소장은 “지금은 성폭력 사건을 개인과 개인 사이에서 발생하는 문제라고 여기는 인식 속에서 조직적으로 은폐하는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며 “기업 여성 임원 비율을 늘리거나 책임자부터 인식을 바꾸는 등 구성원이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도록 경영방침 속에 주체적으로 녹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신 변호사는 “직장 내 성범죄는 대부분 어린 시절 성 평등 교육을 제대로 못 받은 4050세대가 주로 저지르고 있다”며 “가치관, 통념을 바꾸는 인식 개선은 어릴 때부터 관련 교육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금 초·중·고등학교에서는 인권 의식 등 교육이 이뤄지고 있어 20대를 대상으로 양성평등 인식을 조사하면 40~50대와 차이가 크다”며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은 직장 내에서 평생교육으로 갈수밖에 없다”고 했다.

아울러 직장 내 성범죄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사각지대’ 해결도 숙제로 남았다. 신 변호사는 “성희롱 예방, 성평등 인식교육 등을 직장 내에서 필수로 하는데 5인 미만 직장은 예외로 교육이 부재하다”며 “5인 미만 직장이라고 해서 직장 내 성폭력이 없는 건 아니므로 사각지대를 해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