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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간 책임 떠넘기기에…또 다시 발 잃게 생긴 가사도 주민들

정다슬 기자I 2021.03.17 13:21:05

권익위 "중복항로 판단 애초에 잘못돼…적극행정해야"
국토부 "감사원 통보가 우선…행안부 판단 따라야"
최재형 감사원장, 적극행정면책 제도 강조했는데

전남 진도군 가사도 주민 50여 명은 10일 진도읍 쉬미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토교통부의 차도선 국고보조금 회수 철회를 요구했다. (사진=가사도보조금환수반대대책위원회 제공)
[이데일리 정다슬 기자] 정부의 보조금 회수 방침에 따라 가사도 주민들의 발길이 또다시 끊길 위기에 처했다. 주민들은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지만 부처간 책임을 떠넘기고 있어 실제 개선이 이뤄질지는 불분명하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에 민원 해결을 촉구할 방침이다.

17일 권익위에 따르면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가사도 주민들은 지난 11일 권익위에 국토부의 차도선 국고 보조금 회수를 막아달라는 민원을 제출했다.

가사도는 진도군에서 3번째로 큰 섬이다. 현재 158가구 246명이 살고 있다. 섬에서 키우거나 잡은 농수산물을 육지로 내다 파는 것이 주민들의 주된 생계수단이다.

문제는 2015년 3월 가사도와 진도읍 가학항을 운항하던 여객선이 만성적인 적자 등을 이유로 운항을 중단하면서 발생했다. 당장 농수산물을 실어나를 배가 사라지자 주민들은 진도군에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진도군는 차도선 건조에 필요한 정부 보조금을 마련하기 위해 국토부에 도서종합개발계획 변경을 신청했다. 당초 예정됐던 도서 급수운반선 건조를 위한 보조금을 먼저 차도선 건조를 위한 비용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국토부는 신설항로가 목포에서 서거차도까지 다니는 보조항로와 동선이 겹친다는 행정안전부(구 행정자치부)의 의견을 받아 이를 불허했다.

진도군은 차도선 건조를 위한 보조금 확보가 어렵게 되자 이미 반영된 급수선 건조 예산 40억원 가운데 27억원으로 차도선을 건조했다. 진도군과 위탁계약을 한 민간선사는 2018년 12월부터 가사도와 쉬미항을 하루 3차례 왕복 운항하고 있다. 그러나 감사원은 진도군이 도서종합개발계획 변경 승인을 받지 않고 차도선 건조에 보조금을 사용했다며 2019년 10월 국토부에 보조금 환수를 통보했다. 진도군은 차도선 건조에 들어간 27억원과 제재 부과금 81억원 등 108억원을 반납해야 하는 상황이다.

가사도 주민들은 진도군의 재정자립도가 열악한 상황에서 보조금을 환수하면 차도선 운항에 지원하는 예산이 중단돼 또다시 뱃길이 끊길 것을 우려하고 있다.

진도군 가사도와 진도 본도를 잇는 여객선이 끊기면서 대신 사용되던 소형 선박이 좌초돼 있다.
권익위 관계자는 “여객선이 끊겼던 2015년 3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약 3년 9개월 동안 주민들은 대파, 톳 등을 소형 선박으로 출하하다 좌초되기도 했고 생필품 구입과 어린이, 노약자 응급환자 이송에도 많은 어려움을 겪어왔다”며 “당장 여객선이 끊어지면 주민들의 생계가 다시 위협에 처하게 된다”고 말했다.

권익위는 진도군이 차도선 건조를 위한 보조금 변경 절차를 제대로 밟지 않은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애초에 국토부와 행안부의 판단이 잘못됐을 가능성을 지적했다. 권익위가 해양수산부와 목포지방해양항만청 등에 질의한 결과 일부 동선이 겹친다는 이유로 중복항로로 보기는 어렵다는 답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미 전라남도에는 일부 동선이 겹치지만 기점과 종점이 다른 항로가 5개 운항되고 있다.

권익위는 지난해 12월 가사도 주민들의 고충민원을 받아들여 국토부에 차도선 건조와 관련된 국고 보조금 환수 절차를 중단해달라는 의견을 전달했다. 그러나 국토부는 감사원의 환수 결정 통보가 나온 상황에서 이를 따르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권익위의 의견 표명보다 감사원의 처분 통보가 구속 영향력이 더 크다”며 “아울러 행안부가 해당 항로는 도서개발 촉진법 위반이라는 판단을 내린 상황에서 선행 판단을 존중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권익위는 적극 행정의 측면에서 이 사건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절차적 법질서를 준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보다는 당장 도서지역 주민들의 발이 끊어지게 생긴 상황에서 이를 확보하기 위한 노력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권익위 관계자는 “절차상 문제가 있었지만 군수를 위한 선박을 건조한 것도 아니지 않는냐”며 “가사도 주민들이 생계 위협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한 행정의 취지를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행안부도 진도군의 재정상태 등을 고려할 때 81억원의 부과금은 과하다며 감면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8년 취임한 최재형 감사원장 역시 공무원 등이 공익을 증진하기 위해 성실하고 능동적으로 업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부분적인 절차상 하자 등의 부작용이 발생했더라도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 관련 공직자 등에 대하여 불이익한 처분요구 등을 하지 않거나 감경해야 한다며 ‘적극행정 면책’을 강조한 바 있다.

다만 감사원은 진도군과 가사도 주민들이 제기한 재심의 요청은 기각했다.

권익위는 조속한 시일 내 가사도를 방문해 주민들의 사정을 청취하고 국토부 등 관계기관을 만나 적극행정을 통한 민원 해결을 촉구할 예정이다. 아울러 “갑자기 운항이 중단된 선박부터 우선 건조할 수 있도록 도서지원 제도가 달라져야 한다”는 주민들의 주장에도 귀를 기울여 제도 개선 검토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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