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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비 지원 안된다고요”…이주 앞둔 조합 ‘날벼락’

오희나 기자I 2022.06.15 17:28:20

이사비·이주비·이주촉진비 제공 금지로 도정법 개정
건설사 출혈경쟁 줄어 드는 건 '순기능'이지만
이주 지연되면 재건축 사업 느려질 수 있어 우려

[이데일리 오희나 기자] 오는 12월부터 건설사가 재개발·재건축 사업 수주를 따기 위해 조합에 이주비 등 시공과 관련 없는 비용을 제공하는 행위가 법으로 금지된다. 정비 업계에서는 수주를 따기 위한 출혈경쟁이 사라질 것이라는 기대가 나오는가 하면 거주민의 이주가 늦어져 사업 시행이 지연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서울의 한 재건축 공사 현장 (사진=뉴시스)
이주비 지원할 경우 최대 과태료 1천만원

15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재개발·재건축 등 정비사업 관련법인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 지난 10일 일부 개정돼 이 같은 내용이 법제화됐다. 개정안 시행은 오는 12월 11일부터다.

개정안에는 사업자가 조합과 시공 계약을 체결할 때 시공과 관련 없는 사항으로 △이사비·이주비·이주촉진비 등 시공과 관련없는 금전이나 재산상 이익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에 따른 부담금의 제공을 금지하는 내용이 신설됐다.

그동안 건설사들은 재건축·재개발 시장에서 시공권을 확보하기 위해 조합에 관행적으로 이사비와 이주비·이주촉진비 등을 제공해 왔다. 이같은 행위는 국토부 고시 ‘정비사업 계약업무 처리기준’에 따라 이전부터 금지돼 왔지만 법령이 아닌 고시에 기반한 규정으로 법적 처벌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개정안으로 건설사가 조합에 금전적 이득을 제공할 경우 최대 1000만원의 과태료를 내야 한다.

통상 이주비 대출 한도는 담보인정비율(LTV) 40% 이하지만 일부 건설사들은 우회로를 찾아 100%까지 지원해주는 경우도 있다.

앞서 노량진 3구역 수주전에서 시공사로 선정된 포스코건설은 조합원들에게 LTV 100%만큼 대출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금융권에서 대출가능한 이주비 40%에 시공사가 추가로 신용공여를 통해 60%를 알선하는 방식이다.

지난 2월 관양현대아파트 재건축을 수주한 HDC현대산업개발이나 작년 11월 과천주공5단지 재건축을 수주한 대우건설 등은 SPC를 통해 이주비 대출을 지원하겠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이주비 대출 규제가 강화되면서 자금을 마련하지 못해 이사를 가지 못하거나 집을 비워주지 못하는 조합원들이 생기면서 사업진행을 원활히 하기 위한 고육책이다.

조합원들 이주비 몫돈 마련 비상 걸릴 것

업계에서는 이번 개정안으로 건설사들의 출혈 경쟁이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일부에서는 법 시행 이후 상당수 정비사업 현장이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주가 지연되면서 사업 진행이 늦춰질 수 있어 주택 공급에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것이다. 조합원들 입장에서도 시공사로부터 이주비 등을 지원받지 못하면 이주하기 위해 몫돈을 마련해야 하는 부담을 지게 된다. 게다가 규제로 인해 은행권 대출도 어려운 상황이라 이주 자체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건설사 관계자는 “조합원들이 이주비를 마련하지 못해 이주가 늦어지면 사업 진행을 못할 수도 있다”면서 “정부가 왜 주택공급 속도를 늦추는 정책을 자꾸 펴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전문가들도 불필요한 규제로 인해 재건축 사업 진행이 지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태희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이주비·이주촉진비 금지는 정비사업의 자정작용이라는 표면적인 목적과 달리 정비사업 진행을 지연시키는 부작용이 있다”면서 “대출 규제로 인해 조합원들이 이사비를 조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시공사들이 이주를 원활히 하기 위해 제공했던 건데 이마저 금지한다면 재건축 사업이 지연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주비 지원이 뇌물로 기능할 수 있다고 본다면 대출규제를 완화해 퇴로를 열어줘야 한다”며 “불필요한 규제로 인해 정비 사업을 지연시키기보다는 시장에 맡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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