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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재 털어 만든 명문高 왜 죽이나`…"고교서열화도 못 막을 것"

신하영 기자I 2019.06.20 16:32:45

홍성대 박사, 451억 사재 출연에 기숙사에 190억 내놔
매년 30명이상 서울대行…꾸준히 전국 10위권 성적
전문가 “자사고서도 최고 명문…멀쩡한 학교 직격탄”
“명문고 수요 그대로, 자사고 폐지돼도 고교서열화”

전북도교육청이 전주 상산고등학교에 대해 자율형사립고(자사고) 지정 취소 결정을 내린 20일 오전 전주시 완산구 상산고에 적막감이 맴돌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신하영 기자] 20일 전북 상산고가 자사고 재지정 취소 위기에 몰리면서 지역사회를 넘어 교육계까지 들썩이고 있다. 논란이 커지자 상산고와 설립자인 홍성대 이사장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린다.

교육계에 따르면 상산고는 ‘수학의 정석’이라는 대표 교재의 저자로 유명한 홍성대(82) 상산학원 이사장이 1980년에 설립한 학교다. 2002년 지금의 자율형사립고(자사고)의 전신인 자립형사립고로 지정됐다. 이명박 정부 출범 뒤인 2009년 초중등교육법시행령 개정으로 자사고에 대한 법적근거가 마련된 뒤에는 2010년 자사고로 전환했다. 상산고와 같이 자립형사립고로 출발한 민족사관고·광양제철고·포항제철고·현대청운고 등도 이 시기 자사고로 바뀐 뒤 전국단위로 신입생을 선발하고 있다.

상산고는 전국단위 자사고 중에서도 명문고로 손꼽힌다. 이데일리가 종로학원하늘교육으로부터 입수한 최근 5년(2014~2018학년도)간의 서울대 합격자 배출 상위 30위 고교 현황에 따르면 상산고는 매년 졸업생 중 30명 이상을 서울대에 진학시키는 명문이다. 2014학년도 53명에 이어 △2015학년도 53명 △2016학년도 57명 △2017학년도 47명 △2018학년도 30명의 서울대 합격자를 배출했다. 2018학년도를 제외하면 서울대 진학 기준 전국 상위 10위권 성적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 “교육발전에 기여” 사재 털어 설립한 명문고

상산고 설립자 홍성대 박사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린다. 홍 박사는 1937년 전북 정읍 출생으로 남성고와 서울대 수학과를 졸업했다. 1966년에는 수학교육의 질적 수준을 높이기 위해 ‘수학의 정석’을 기술,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의 논리적 사고력을 신장시키는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홍 박사는 수학의 정석 판매로 얻은 수익을 교육발전에 쓰기로 하고 1980년 학교법인 상산학원을 설립하고 이듬해인 1981년 상산고를 개교했다. 상산고 설립에 사재 451억 원을 출연한 뒤 학생 기숙사 확충을 위해 190억 원을 추가로 내놨다.

상산고는 이러한 유명세를 타고 개교 초기부터 지역 명문으로 성장했다. 2002년에는 자립형사립고로 지정되며 강원도의 민사고와 더불어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명문으로 도약했다. 이 때문에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우후죽순 설립된 자사고로 오히려 손해를 본 학교란 평가가 나온다. 이명박 정부는 ‘고교 다양화 300프로젝트’를 내걸고 지난 2009~2010년 사이 서울에서만 27곳, 전국적으로 54곳의 자사고를 출범시켰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상산고는 개교 초기부터 학생들의 선망의 대상이 될 정도로 전국 최고의 명문고에 해당한다”며 “고교 다양화 프로젝트 등 섣부른 공약으로 자사고 공급확대정책이 이어지면서 멀쩡한 명문고가 자사고 취소라는 직격탄을 맞았다”라고 말했다.

◇ “번듯한 명문고 왜 죽이나” 지역사회 반발

지역사회의 반발도 거세다. 전북지역 주민들은 “번듯한 명문고를 죽이려는 이유를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심지어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를 지낸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도 최근 라디오방송에 나와 “멀쩡한 학교를 폐지하는 게 전북에 도움이 되겠냐는 부분에서 공감대가 형성됐다”며 “느닷없는 상산고 재지정 취소는 도민 정서와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교육계에서는 자사고 폐지 정책으로 고교 서열화가 해소될지에 대한 회의론도 나온다. 임성호 대표는 “자사고 경쟁률을 보면 대부분 2대 1에 미치지 못하며 과열현상과는 거리가 멀다”며 “자사고 중 일부가 일반고로 전환될 경우 살아남은 자사고로의 쏠림현상이 강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종로학원하늘교육이 최근 초·중학생 학부모 7880명을 대상으로 고교 유형별 선호도를 조사한 결과 자사고의 하락세가 뚜렷했다. 자사고에 대한 선호도는 2017년 51.7%로 정점을 찍은 뒤 지난해 48.4%, 올해 40.7%로 하락했다.

◇ “살아남는 자사고로 쏠림현상 심화할 것”

자사고 선호도 하락은 입학 경쟁률에서도 나타난다. 서울지역 자사고 22곳의 경쟁률은 2017학년도 1.7대 1에서 2019학년도 1.3대 1로 하락했다. 특히 경문고·대광고·세화여고·숭문고 등 4곳은 지원자가 일반전형 정원에 미달했다. 어차피 경쟁력을 잃은 자사고는 정부가 나서지 않아도 도태되고, 반대로 경쟁력을 갖춘 자사고는 일반고로 전환돼도 여전히 지역명문고로 존재할 것이란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자사고 폐지로 고교서열화를 완화할 수 있다는 논리에 대해 전문가들은 회의론을 내놓고 있다. 대입제도가 변하지 않는 한 수월성 교육과 명문고에 대한 수요는 여전할 것이란 이유에서다. 서울의 경우 자사고가 일반고로 전환되면 강남 8학군의 인기가 다시 치솟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교육계 관계자는 “경쟁력이 있는 학교라면 일반고로 전환되더라도 입시 노하우를 그대로 갖고 있기 때문에 학생들이 몰릴 것”이라며 “마찬가지로 경쟁력 없는 학교라면 자사고 지위를 유지해도 도태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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