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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100일]②막다른 길에서 돌아섰다…자기부정의 정치

방성훈 기자I 2017.04.27 12:13:00

수세 몰리면 이해득실 따라 ‘자기부정·말바꾸기’
즉흥적 ‘트윗’ 배설이 문제…뱉은말 책임지려다 말바꿔
시리아·러시어·중국·나토 등 대외정책 '손바닥 뒤집듯'
멕시코장벽·오바마케어 등 좌초 위기에 수시로 ‘타협’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AFP PHOTO)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후 연설문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 문구는 ‘날 믿으라’라는 말이다. 하지만 그는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말바꾸기 달인’으로 불렸다. 그만큼 트럼프를 믿기가 힘들다는 얘기다.

◇수세 몰리면 ‘자기부정·말바꾸기’…‘트윗’ 배설이 문제

트럼프가 취임 후 ‘자기부정의 나날’을 보내게 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말이 많아서’다. 특히 트위터를 통해 즉흥적으로 쏟아내는 말이 문제였다. 트럼프는 1월20일 취임한 뒤 이달 23일까지 94일 동안 총 440회(리트윗 제외)의 트윗을 올렸다. 하루 평균 4.68회 꼴이다. 워낙 많은 말을 뱉어낸 탓에 책임을 지려다가 기존 입장을 뒤집거나 타협하게 된 경우가 많았다. 자신이 무슨 말을 했었는지 잊어버는 듯한 모습도 보였다. 결국 말바꾸기 달인이라는 오명은 스스로 만들어낸 셈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트럼프의 신념은 10초짜리’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트럼프가 자신의 말을 얼마나 많이 어겼는지 하나 하나 따지기도 힘들 지경이다. 그가 보여주는 일관된 패턴은 ‘배신’”이라며 혹평했다.

아울러 트럼프가 말을 바꾼 사례들을 살펴보면 정치적으로 수세에 몰리는 등 주로 ‘막다른 길’에 다다랐을 때였다. 그는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이해득실에 따라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말을 바꾸는 행태를 보였다. 이에 대해 트럼프가 현실을 직시하고 실무에 적응해 나가는 과정이라는 긍정적인 시각도 있다. 영국 BBC방송은 대선 기간 제시했던 단순명쾌한 해답이 복잡다단한 실제 업무에선 통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일각에선 트럼프가 주변 인물들의 의견에 너무 쉽게 동조하거나 흔들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앤더슨 쿠퍼 CNN 앵커는 “트럼프는 자기 입장이 없고 자신한테 10분 강의를 해주는 사람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냐”라고 꼬집었다. 때로는 트럼프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잊는 것은 물론, 잘못된 사실이나 자신에게 유리한 통계를 인용해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트럼프는 스웨덴에서 테러가 일어났다는 ‘가짜뉴스’를 사실처럼 말해 세계를 혼란에 빠뜨린 바 있다. 또 정부의 실업률 통계는 거짓이며 실제로는 42%라고 주장해 논란을 키우기도 했다.

◇시리아·러시어·중국·나토 등 대외정책 ‘손바닥 뒤집듯’

트럼프는 국내에서 반(反)이민 행정명령 제동, 러시아와의 커넥션 의혹, 오바마케어(건강보험 개혁조치) 폐기 좌초 등 국정운영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역대 유례없는 지지율 추락을 경험했다. 결국 외부의 적(敵)을 타깃팅해 돌파구를 찾았고 이 과정에서 기존 입장들은 손바닥 뒤집듯 쉽게 바뀌었다.

트럼프의 말바꾸기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준 사례는 시리아 폭격이다. 트럼프는 지난 6일 시리아 정부가 화학무기 사용했다면서 직권으로 시리아 공군기지를 폭격했다. 그는 지난 2013년 시리아가 화학무기를 사용했을 때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에게 군사개입은 절대 안된다며 의회 승인을 받으라고 촉구했다. 러시아, 중국,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에 대한 기존 입장도 모두 뒤집어졌다. 러시아의 경우 취임 초반까지만 해도 ‘밀월 관계’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트럼프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러시아를 추켜세웠다. 전통적인 적대 관계를 청산하고 친(親)러시아 노선을 걸을 것처럼 시사했던 트럼프는 현재 러시아가 시리아 정부를 돕고 있다면서 ‘역대 최악 의 관계’를 선언했다.

트럼프는 지난 해 대선 기간부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중국 정부를 강도 높게 비난했다. 하지만 이달 초 미·중 정상회담 이후 시 주석을 연일 칭찬하고 있다. 또 대북(對北) 제재와 관련해 시도때도 없이 통화하는 등 그 어느 때보다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대선 기간 수도 없이 언급했던 “취임 첫날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겠다”는 말은 정상회담 이후 “중국은 환율조작국이 아니다”라는 말로 바뀌었다.

나토에 대해서도 대선 기간엔 ‘무용지물’이라고 비판했으나 취임 후엔 “나토는 무용지물이 아니다. 테러리즘과 맞서 싸우고 있다”며 칭찬했다. 트럼프가 말을 바꿔 비난을 받는 것과는 별개로 러시아, 중국, 나토 등에 대한 입장 변화는 현명한 처사라고 NYT는 평가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월 25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 위치한 국토안보부에서 멕시코 국경장벽 프로젝트를 시작하라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사진=AFP PHOTO)


◇멕시코장벽·오바마케어 등 좌초 위기에 수시로 ‘타협’

트럼프는 국내 국정운영에 있어서도 여러 차례 말을 바꿨다. 불과 하루 전에도 멕시코 국경장벽 건설 약속을 뒤집었다. 장벽 없이도 불법 이민자 유입을 막을 수 있다는 조사 결과로 트럼프의 주장은 힘을 잃었다. 민주당은 물론 일부 공화당 의원들까지 나서 제동을 걸고 나서면서 취임 100일째 날을 연방정부의 ‘셧다운(업무 중단)’과 함께 맞이할 위기에 놓였다. 트럼프는 결국 스스로 뜻을 굽혔다. 그런데 트위터에선 “내가 장벽에 대한 입장을 바꿨다는 가짜뉴스를 믿지 말라”고 적었다. 장벽 건설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도 트럼프는 멕시코로부터 돈을 받아내 장벽을 짓겠다고 했다가 우선 미국인들이 낸 세금으로 건설에 착수한 뒤 나중에 받아내자는 식으로 은근슬쩍 말을 바꿨다. 장벽건설 비용도 처음에는 120억달러가 필요하다고 했다가 2월엔 216억달러로 늘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취임 즉시 오바마케어를 폐기하고 더 좋은 건강보험법 ‘트럼프케어’를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취임 한 달 뒤 “건강보험이 이렇게 복잡한 건지 몰랐다”면서 어려움을 토로했다. 지난 달 트럼프케어는 결국 공화당 내부 반발에 부딪혀 의회에 안건으로 오르지도 못하고 좌초됐다.

트럼프는 과거 오바마의 여름 휴가를 비판하며 “취임 후 백악관을 거의 비우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하지만 실상은 거의 모든 주말을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보내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오바마가 8년 동안 갔던 외부여행을 임기 첫 해에 모두 소진할 것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이외에도 의료보험 지원금을 삭감하지 않겠다는 약속, 처방약 가격 인하, 경영권 포기, 북미자유무역협정(나프타·NAFTA ) 재협상 등이 말을 바꾼 주요 사례들로 거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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