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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종 전환으로 매출·고용 5배 늘렸더니"...기업승계 지원 안되는 나라

노희준 기자I 2023.11.28 16:36:51

중소기업계, 기업승계 지원법안 연내 국회 통과 촉구
세법개정안 국회 계류…"기업승계, 부의 대물림 아냐"
연부연잡 기간 확대로 정부도 이자수익 증가
"업종변경 제한시 변화 환경에 대처하지 말라는 것"
기업승예 원활하지 못하면 절반 이상 폐업 고려

[이데일리 노희준 기자] ‘2세 경영인’ 여상훈 빅드림 실장은 부친이 경영하던 문구·사무용품 도·소매 회사를 물려받은 뒤 유통업이던 회사를 과학교구를 생산하는 제조업으로 업종 전환했다. 2014년께 회사가 포화된 시장에서 급격히 사세가 기울어지는 것을 목격해서다. 여 실장은 업종 전환 이후 매출과 고용을 5배나 끌어올렸다. 회사를 안정적으로 변신시키는 데 성공했지만 최근 또 다른 고민에 빠졌다. 부모가 보유한 지분을 상속받으려다가 업종 변경시 기업승계 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돼서다. 여 실장은 “업종을 변경하면 가업승계제도 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회사를 더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줄었다”며 “가업승계제도의 업종변경 제한은 아예 철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추문갑(왼쪽부터) 중기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 여상훈 빅드림 실장, 송치영 중기중앙회 기업승계활성화위원장, 송공석 한국욕실자재산업협동조합 이사장(와토스코리아(주) 대표). 심재우 삼정가스공업(주) 본부장이 28일 서울 영등포구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기업승계 지원법안의 연내 국회 통과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중소기업중앙회)
중소기업계가 기업승계 지원법안의 연내 국회 통과를 촉구하고 나섰다. 중소기업 경영자들의 고령화가 심각해져서다. 제도 보완이 이뤄지지 않아 승계가 원활하게 되지 않은 경우 폐업까지도 고려한다는 게 업계 목소리다. 중소기업중앙회는 28일 서울 영등포구 중소기업중앙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기업승계 지원법안의 국회 연내 통과를 촉구했다.

◇중기 CEO 고령화 심각…“부의 대물림 아냐”

중기중앙회에 따르면 30년 이상 이어진 중소기업의 최고경영자(CEO) 81%가 60세 이상이다. 70세 이상 CEO도 31%에 달한다. 중소기업 경영현실상 전문경영인 도입이 쉽지 않다보니 기업승계를 대안으로 꼽는다.

기업승계를 고민 중인 송공석 한국욕실자재산업협동조합 이사장은 “기업승계라고 하면 부의 대물림이라는 시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는데 매우 억울하다”면서 “우리가 세금을 안 내겠다는 게 아니고 정당하게 세금을 내겠다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승계기업에 적용하는 증여세 과세특례 연부연납 기간을 현재 5년에서 20년으로 확대해달라는 요구 사항이 대표적이다. 이는 증여세 자체를 덜 내겠다는 게 아니다. 증여세가 2000만원을 초과하는 경우 거치기간을 포함해 최대 20년간 나눠내겠다는 것이다. 추문갑 중기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상속세 연부연납처럼 증여세도 담보를 맡기고 국세청이 고시한 이율로 이자(가산금)까지 세금으로 납부토록 돼있다”며 “정부 입장에서도 5년에 거둘 것을 20년에 걸쳐 받을 뿐만 아니라 이자까지 받을 수 있다”고 했다.

현재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는 중소기업 승계 활성화를 지원하는 내용이 포함된 ‘2023년 세법개정안’이 계류돼 있다.

개정안은 자녀가 부모에게서 기업승계를 목적으로 주식 등을 증여받는 경우 적용하는 10%의 기업승계 증여세 저율 과세 구간을 기존 60억원에서 300억원으로 상향하는 내용을 담았다. 또 증여세 납부 세액이 2000만원을 넘으면 부동산 등을 담보로 맡기고 일정 기간 세금을 분납할 수 있는 ‘연부연납’ 기한도 현행 5년에서 20년으로 늘렸다.

(그래픽=이미나 기자)
◇업종전환시 기업승계해택 배제 바뀌어야

정부의 세법개정안은 기업상속공제 혜택을 받는 기업인이 사후 관리기간인 5년간 산업분류상 ‘중분류’ 내에서만 업종을 변경할 수 있도록 한 제한 조치도 ‘대분류’로 확대했다. 5년 이내 중분류를 넘어 주업종을 변경하면 공제된 세금을 토해내야 한다.

이는 승계 업종에 대한 집중을 유도하는 차원도 있지만 빠르게 변하는 산업 생태계 환경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 때문이다. 빅드림의 여 실장 사례가 대표적이다.

또 다른 2세 경영인인 심재우 삼정가스공업 본부장은 “승계기업의 업종변경 제한을 걸어놓고 기업을 동쪽으로만 또는 서쪽으로만 가라고 제한하는 것은 큰 위험을 떠안고 바다에서 항해를 하는 것과 같다”며 “기업은 시시각각 변하는 환경에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 업종제한으로 묶어버리는 것은 기업승계자를 마치 범죄자처럼 제약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업승계가 원활하지 않을 경우 부작용이 크다는 조사도 있다. 중기중앙회가 업력 10년 이상 중소기업 600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2022 중소기업 가업승계 실태조사’를 보면, 가업승계를 하지 않으면 기업 경영변화에 대해 과반(52.6%)이 폐업, 기업매각 등을 했거나 고려하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중소벤처기업연구원에 따르면 기업승계가 불발돼 폐업으로 이어지면 약 57만명의 근로자가 일자리를 잃고, 손실 매출액이 138조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은 기업승계 후계자 부재 문제로 폐업하는 기업이 급증하자 2018년 사업승계 특례조치를 도입하여 기업을 물려받으면 회사를 매각하거나 폐업 전까지 상속·증여세를 전액 유예·면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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