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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벌보다 대화로 해결…"회복적 경찰활동, 법제화 필요"

이소현 기자I 2023.06.14 18:07:46

경찰청, 회복적 경찰활동 세미나 진행
층간소음·이웃간 분쟁 등 근본 해결 모색
올해 5월까지 736건…전년 동기比 49%↑
"지속 가능 운영…회복사법적 접근 필요"

[이데일리 이소현 기자] 중학교 친구 5명이 놀던 중 놀림에 화가 난 가해자 A씨가 피해자 B씨의 손을 밟아 손가락이 골절됐다. 이에 B씨 부모가 A씨를 경찰에 상해죄로 고소장을 제출했다. 극심한 갈등 국면으로 이어질 뻔했으나 학교전담경찰관(SPO)을 연계해 “대화로 해결하자”고 양측을 설득했다. B씨는 “손가락 수술로 일상생활에 큰 불편을 겪고 있고 정신적으로도 힘들다”며 ‘진심 어린 사과’를 원했다. A씨는 “피해자의 말에 화가 나 싸우게 됐지만 원래 친구사이였고 앞으로 잘 지내고 싶다”며 사과하고 치료비를 보상했다. 중학생들이 경찰의 수사를 받는 최악의 상황까지 이어질 뻔했으나 피해자가 처벌불원서를 제출해 사건은 각하처리 됐고, 학교폭력위원회 개최는 취소됐다.

이처럼 학교폭력 사건을 비롯해 이웃 간 분쟁, 층간소음 등을 처벌보다 대화를 통해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모색하는 ‘회복적 경찰활동’이 최근 들어 늘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경찰청은 14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열린 회복적 경찰활동 세미나를 통해 올해 5월까지 접수된 회복적 경찰활동은 736건으로 전년 동기(494건) 대비 49% 늘었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대화가 진행된 546건 중 약속 이행문 작성 등 조정된 사건은 508건으로 대화성공률은 93%에 달한다. 검찰 형사조정 성립률이 50~60% 수준임을 고려하면 회복적 경찰활동의 대화성공률은 상당히 높은 편이라는 게 경찰 측 설명이다.

회복적 경찰활동 접수 건수는 크게 늘었다. 2019년 첫해에는 95건 수준에서 2020년 573건, 2021년 1188건, 2022년 1203건을 기록했다. 실제 10건 중 9건 정도는 조정이 이뤄지고 있다. 2019년 첫해 88% 수준이었던 조정률은 2020년 90%, 2021년 91%, 2022년 89%로 높아졌다.

회복적 경찰활동 2022년 운영 성과 현황(자료=경찰청)
만족도도 높은 편이다. 경찰청이 작년 회복적 대화 활동을 설문조사한 결과 피해자는 91%, 가해자는 93% 결과에 만족한다고 답했다. 이를 담당한 수사경찰관들은 94%가 재연계 의사가 있다고 했다.

회복적 경찰활동은 범죄와 분쟁이 발생했을 때 경찰이 가해자를 잡아 처벌하는 데에만 목적을 두는 게 아니라 피해를 회복하고 대화를 통해 관계 회복을 돕는데 방점이 찍혀 있다. 2019년 수도권 지역 경찰서 15곳에서 시범 운영한 회복적 경찰활동은 현재 전국 258개 경찰서로 자리 잡았다. 경찰청은 한국 NVC센터 등 5개 전문기관과 업무협약을 맺었으며, 위촉한 회복적 대화전문가는 512명이다.

이처럼 민·관 협동으로 회복적 경찰활동이 유의미한 성과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이날 세미나에서 지속 가능하게 운영되도록 법제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제언이 잇따랐다.

심보영 경찰청 피해자보호기획계장(경정)은 “형사조정과 화해권고 제도는 법률에 근거가 마련됐으나 회복적 경찰활동은 경찰수사규칙 외에 아직 법제화가 되어 있지 않아 제도 활성화나 예산 확보 측면에서 한계가 있다”며 “경찰관직무직행법이나 범죄피해자보호법, 더 근본적으로는 형사소송법에 경찰 단계를 포함하는 회복적 사법에 대한 법제화가 이뤄지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말했다.

임수희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 부장판사도 “전통적인 형사사법 절차에서 사법기관에 요구되는 기본 임무를 수행하는데 에너지를 쏟아도 충분치 않은 게 현실”이라며 “회복 사법적 접근이 필요한 경우에 형사소송법뿐 아니라 절차기본법 수준에서 민사, 형사, 행정 등 모든 사법 절차에서 실천할 수 있는 법제도적 기초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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