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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 MB정부 ‘인권위 블랙리스트’ 확인…檢수사 의뢰(종합)

신중섭 기자I 2018.12.11 15:46:51

최여애 위원장 "인권 파수꾼 역할 회복할 것"
인권위 블랙리스트·장애인활동가 사망 진상조사 발표
2008~2010년 靑인권위 블랙리스트 작성 확인
장애인인권활동가 사망 잘못 인정…명예회복 조치

11일 오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최영애 인권위원장과 인권위 관계자들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한 뒤 고개를 숙이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신중섭 기자]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가 인권위에 대한 블랙리스트를 작성했음을 확인하고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기로 했다. 인권위는 또 2010년 장애인 인권 활동가 사망 사건에 대한 인권침해를 인정하고 유족 등에 사과했다.

인권위는 11일 오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브리핑을 열고 이러한 내용을 담은 인권위 블랙리스트·장애인활동가 사망 진상조사 결과와 함께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최영애 위원장은 “인권위 존재 이유는 오직 인권만을 판단의 나침반으로 삼아 부당한 공권력으로부터 인권과 존엄성을 지키는 것에 있다”며 “그럼에도 인권위는 2009년 청와대 관계자가 인권위 고위간부를 만나 블랙리스트를 전달한 의혹을 2012년 인지하고도 침묵함으로써 인권위의 정체성과 독립성을 유기하는 과오를 범했다”고 말했다.

최 위원장은 장애인인권활동가 우동민씨 사망 건에 대해 “장애인의 인권을 보호하는 차별시정기구로서 당시 점거농성이 가지는 인권옹호활동 의미를 이해하고 농성참여 인권활동 장애인의 인간 존엄과 가치가 침해되지 않도록 적극적인 조치를 하지 못했다”며 반성했다.

최 위원장은 “인권위가 그 활동의 기초가 되는 독립성을 잃거나 국가 인권기구에게 맡긴 인권옹호자로서의 사명과 책임을 다하지 못했을 때 인권위 역시 언제든 인권침해의 당사자가 될 수 있음을 인식하는 뼈아픈 계기로 삼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인권위는 지난 7월부터 약 4개월간 사무총장을 단장으로 하는 자체 진상조사를 진행했다. 이를 위해 교수·인권활동가·변호사로 ‘진상조사 자문위원회’를 구성하고 조사 전반에 대해 자문을 받았다.

11일 오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혁신위 권고 진상조사 결과’ 브리핑에서 최영애 인권위원장이 우동민 장애인인권활동가 사망 사건에 대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진상조사 결과 ‘인권위 블랙리스트’는 지난 2008년 10월 27일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에 대해 인권위가 경찰 측의 인권침해를 인정한 후부터 본격적으로 작성된 것으로 나타났다

인권위는 블랙리스트들이 2008년에는 경찰청 정보국에서, 2009년·2010년 청와대 시민사회비서관실에서 작성·관리한 것으로 봤다.

인권위는 특히 당시 청와대 시민사회비서관이 지난 2009년 10월쯤 서울 중구 더 플라자호텔에서 당시 인권위 전 사무총장에게 촛불집회 직권조사 담당조사관이던 김모 사무관 등 10여명이 포함된 인사기록카드를 전달하며 ‘이명박 정부와 도저히 같이 갈 수 없는 사람’이라고 말한 사실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와 관련해 인권위는 직권조사·경찰징계 등을 권고했다”며 “이에 불만을 가진 정부가 진보성향 시민단체 출신의 인권위 별정·계약직 직원을 축출하기 위해 작성·전달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블랙리스트를 통한 조직축소는 인권위 독립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행위라고 보고 보다 명확한 사실관계 규명을 위해 이명박 전 대통령과 당시 시민사회비서관 등을 포함한 관련자들을 검찰에 수사 의뢰할 계획이다.

인권위는 아울러 2010년 장애인인권활동가인 고(故) 우동민씨가 인권위 사옥에서 점거농성 중 사망한 사실과 관련해 인권침해가 있었음을 인정했다.

우씨 사건은 2010년 겨울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장애인인권활동가들이 당시 인권위 사옥인 금세기빌딩 11층의 배움터 및 사무실(8~12층) 등을 점거농성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당시 장애인 인권 활동가들은 “인권위가 농성장에 난방과 전기 공급을 끊고 활동보조인 출입 및 식사 반입을 제한하는 등 농성 참여자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과정에서 우씨가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우씨는 점거농성 중이던 2010년 12월 6일 오전 119구급대에 의해 병원에 이송됐다. 이어 같은 달 23일 기침과 호흡곤란 등 증상을 겪다 이듬해 1월 2일 급성호흡곤란증후군으로 사망했다.

인권위는 “우씨의 사망이 인권위 청사 내 농성참여로 인한 것인지는 명확히 밝히지 못했다”면서도 “당시 인권위가 경찰에 의한 출입·엘리베이터 통제 등을 통해 활동보조인 출입을 제한적으로 허용한 것이 우씨의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최 위원장은 “블랙리스트 사건과 우씨의 모두 사건이 발생한 지 8~10년이 넘었지만 인권위는 이제라도 진상을 밝히고 필요한 조치를 함으로써 국가인권기구로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 지난 10년간의 퇴보를 만회하고 인권파수꾼의 역할을 회복하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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