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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사병은 쥐가 옮기는 페스트균(Yersinia pestis)이 유발하는 전염병으로, 1346~1353년 유럽에서 맹위를 떨치며 5000만명 이상의 사망자를 냈다. 감염자의 피부가 까맣게 변하는 증상 때문에 흑사병이라는 병명이 붙었다.
그동안 흑사병의 진원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중국 등 아시아 지역에서 시작해 유럽으로 전파됐다는 가설이 가장 유력했지만 실질적인 근거가 부족하다는 한계가 있었다.
이번 연구는 역사학자들과 과학자들의 협업으로 이뤄졌다. 중세사 연구자인 필립 슬리반 박사는 1886년 키르기스스탄 이식쿨 호수 근처에서 공동묘지를 발견한 러시아 학자들의 발굴일지를 바탕으로 이곳에서 흑사병의 전염이 시작됐다고 주장했다.
1338~1339년에 만들어진 공동묘지에는 유해들과 함께 시리아어로 “역병(pestilence)으로 사망한 자가 이곳에 묻혔다”라는 글이 새겨진 묘비 118개가 연달아 나왔다. 이는 유럽에서 흑사병이 본격적으로 확산하기 8~9년 전인 것으로 파악됐다. 슬리반 박사는 “이곳이 흑사병의 진원지임을 100% 확신했다”고 밝혔다.
과학자들은 이를 입증하기 위해 유해 3구의 치아에서 페스트균 유전자를 검출해 분석했다. 그 결과 해당 유전자는 14세기 영국을 휩쓸었던 페스트균 돌연변이 유전자의 직계 조상인 것으로 확인됐다.
요하네스 크라우스 고고유전학 박사는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이후 알파와 델타, 오미크론 등 모든 변이를 낳은 것처럼, 키르기스스탄의 묘지가 모든 페스트균이 시작된 곳이라는 의미다”라고 설명했다. 의·과학계에서는 이번 연구에 대해 고도의 기술이 투입된 완벽한 역학 연구 사례라는 평가가 나온다고 NYT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