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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별명은 목소리에서 풍겨 나오는 이미지 때문에 뚝배기로 불렸다. 학창시절 다니던 성당에서 그에게 사랑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던 수녀님의 권유로 신부의 삶을 꿈꾸며 논산 대건중, 대건고를 거쳐 가톨릭 신학대학에 입학한 그는 이탈리아로 떠난 유학이 그의 생을 결정지었다고 얘기한다. 그곳에 있었던 세계 각국의 신부님들에게 금전적, 정신적 후원을 받으며 공부할 수 있었고 이후 베푸는 삶에 뛰어들게 된다.
‘라자로’라는 세례명은 그의 음력 생일과 일치하는 성인을 찾다 명명하게 됐다. ‘라자로’는 생전에 거지였다가 천국에 가서 부활해 예수님의 친구가 됐던 인물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을 여러차례 만난 그는 이런 세례명 덕분에 교황에게 더 친구처럼 다가갈 수 있었다고 전한다.
유 추기경은 교황청 장관으로 취임한 이래 전 세계 50만 명에 달하는 사제·부제의 직무·생활을 관장하는 업무를 무난하게 잘 수행해오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동안 줄곧 이탈리아 출신 장관이 도맡아온 일을 아시아 출신 성직자가 넘겨받은 데 대해 교황청 안팎에서 일부 우려도 있었으나 특유의 성실함과 친화력으로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켰다.
그는 불필요하고 잘못된 업무 관행을 개선하고 조직을 능률적으로 탈바꿈시키는 데도 일조했다. 취임 직후 장관실을 모든 직원에게 개방하고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도록 한 것도 교황청 관행상 보기 어려웠던 풍경이다. 탁월한 업무 추진력에 더해 이러한 소탈하고 열린 리더십으로 성 내 직원들의 두터운 신임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추기경은 가톨릭교회 교계 제도에서 교황 다음의 권위와 명예를 가진 지위로 기본적으로 종신직이다. 한국 천주교는 김수환(1922∼2009)·정진석(1931∼2021) 추기경과 염수정(79) 추기경을 배출했다. 지난해 4월 정진석 추기경이 선종한 뒤 1명으로 줄었던 한국인 추기경은 13개월 만에 다시 2명으로 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