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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오후 1시 39분쯤 파란색 수의를 입고 법정에 등장한 이춘재는 반삭발한 상태였다. 남은 머리카락은 희끗했고 이마에 굵은 주름 한 줄이 있었다. 공개된 젊은 시절 사진처럼 눈썹이 반 잘려 있는 모양이었고 눈매는 날카로웠으며 큰 귓불을 갖고 있었다. 그는 흰색 헝겊 마스크를 착용하고 입장했지만 추후 일회용 마스크로 고쳐 썼다.
이춘재는 군 제대 직후 1986년 아동 강간 사건으로 경찰 조사를 받았으나 처벌받지 않았고, 화성연쇄살인사건 용의선상에서도 당시 빠져나갔다. 해당 사건 외에 단 한 번도 경찰 조사를 받은 적이 없다고 털어 놨다.
이(李)는 “검문 당한적은 있었다. 그 당시 형사들이 거의 뭐 (화성 사건으로) 까이다시피 했기에(비난받았기에)”라며 “저는 뭐 검문 과정에서 긴장하게 만든 특별한 상황은 없었다. 민증 없어서 파출소 한 번 간 적 있었다”고 말했다.
이춘재는 자신이 용의선상에 오르지 않은 이유에 대해 “저도 아직도 그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제 주변에 난 사건인데, 제가 은폐하거나 숨기고 그러면서 돌아다닌게 아니라 수사가 진행됐다”며 “그러면 한 번쯤 의심을 받는, 그런 용의선상에 오를 수 있단 생각을 했는데 수사관 몇백명이 왔다갔다 했는데 딱 빠져나왔다”라고 강조했다.
이춘재 8차 사건은 1988년 9월 16일 경기도 화성시 태안읍 진안리에서 박모(당시 13세)양이 자신의 집에서 성폭행을 당한 뒤 목이 졸려 살해된 사건이다. 당시 경찰은 윤모(53)씨를 범인으로 검거했다. 이후 윤씨는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감형됐다가 20년을 복역한 뒤 지난 2009년 가석방됐다. 이춘재가 자백하자 윤씨는 지난 1월 자신이 연루된 8차 사건에 대한 재심을 청구했다.
이춘재는 화성 사건 이후인 1994년 1월 청주에서 처제를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한 혐의로 체포됐다. 이후 1995년 7월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현재까지 부산교도소에 복역 중이다.
한편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지난 7월 최종 수사결과 발표를 통해 1986년 9월부터 1991년 4월까지 화성과 수원 등지에서 이춘재가 총 14건의 살인사건과 9건의 강간사건을 저질렀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