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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文도 칭찬한 `빠른 경제회복`이 국정조사감이라는 與

이명철 기자I 2021.11.16 16:30:28

윤호중 대표 "50조 넘는 추가세수 예측 못한 것 추궁해야"
예상보다 빠른 경제 회복 탓…올해 예산안 與가 통과시켜
재정 고려 않고…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 혈안돼 압박만

[세종=이데일리 이명철 기자] “국회와 협력해 여섯 차례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 등 전례 없는 확장재정을 통해 빠르고 강한 경제 회복을 이끌어 주요 선진국 중 코로나19 위기 이전 수준을 가장 빨리 회복했습니다.”

문재인(단상 위) 대통령이 지난달 25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2022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내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세계 경제가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우리 경제는 안정적”이라며 정부의 경제정책 성과를 높이 평가했다. 그런데 최근 여당에서는 예상보다 빠른 경제 회복세를 탐탁찮게 보는 듯하다.

법인세·부가세·소득세 호조…세수 풍년 예상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16일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한해 50조를 넘는 추가세수를 세입 예산에 잡지 못한 건 재정당국의 심각한 직무유기를 넘어선 책무 유기”라며 “기획재정부가 많은 추가 세수를 예측하지 못하고 그 예산을 국민께 돌려드리지 못하는 것은 추궁 받아야 마땅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올해 편성한 본예산에서 국세 수입을 282조8000억원으로 예측했다. 이후 2차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국세 수입 예상치를 31조5000억원 늘어난 314조3000억원으로 늘렸다.

윤 원내대표는 이를 두고 “이후로도 약 19조원의 추가 세수가 더 있다는 것이 확인됐다”며 정부가 의도적으로 세수 규모를 축소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이날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그런 부분(과소 추계)에 대해 의도가 있었다면 이를테면 국정조사라도 해야될 사안”이라고 정부를 몰아붙였다.

윤호중(오른쪽에서 두번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16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렇다면 정부는 정말 의도적으로 세수 추계를 축소했을까. 기재부가 이날 발표한 재정동향에 따르면 올해 1~9월 국세 수입은 274조5000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59조8000억원 증가했다. 이대로 가면 당초 추경에서 예측한 초과 세수(31조5000억원)를 크게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본예산의 국세 수입은 전년도 예산안을 제출할 때 예측한 것이다. 보통 경제성장률 등 거시 경제 전망과 부동산, 증시 등 세부 경제지표에 대한 전망치를 취합·분석한 후 세목별로 시뮬레이션을 거쳐 전체 세수 규모를 전망한다.

코로나19 위기가 한창이었던 지난해 8월만 해도 올해 경제 성장에 대한 불확실성이 컸던 시기다. 정부는 지난해 6월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할 때 올해 한국 경제 성장률을 3.6%로 제시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해 9월과 10월 올해 한국의 경제 성장률을 각각 3.1%, 2.9%로 제시한 바 있다. 올해 한국 경제 성장률이 4%대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과 비교하면 차이가 큰 것이다.

지난해 예상보다 세수가 늘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기재부는 경기 회복세와 자산시장 호조로 법인세·부가가치세·소득세 등이 늘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수출이 호조를 보이다 보니 관련 기업들의 실적이 늘어 법인세나 부가세 등 납부 규모가 늘었고 부동산·주식 거래가 늘면서 부동산 양도세, 증권거래세 등도 더 많이 거둬들인 것이다.

기재부가 일부러 경제 회복 효과를 낮춰 잡은 게 아니라 백신 접종 확대, 수출 호조세, 부동산·주식 투자 열풍 등이 예상을 웃돌았기 때문이다.

기재부 세제실 직원들은 보통 세수가 당초 추계보다 적을 때 큰 압박감을 받는다고들 한다. 이미 예산안에 맞춰 나갈 돈을 정해놨는데 수입이 적게 들어오면 어딘가에서 메꿀 방안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세수가 예상보다 남으면 잘못된 추계에 대한 비판은 받지만 `세수 펑크`보단 낫다는 의미다.

與 “더 걷은 세수, 내년으로 납부 미뤄 지원금 주자”

올해 초과 세수가 예상됨에도 유독 여당의 압박이 심한 이유는 결국 이들이 방역지원금이라고 일컫는 전(全)국민 재난지원금 지급과 얽혀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1인당 최고 50만원의 전국민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덩달아 민주당은 내년 초 1인당 20만원의 지원금을 전국민에게 지급하겠다고 정했다.

재원은 올해 초과 세수다. 올해 남는 세금을 다 거둬들이고 나면 법에 따라 국가채무 상환 등에 써야 하니 재난지원금에 쓸 세금은 아예 내년으로 미루자는 구체적인 계획까지 마련했다. 국민들이 낸 세금을 당정 협의도 거치지 않고 자의적으로 사용처까지 정한 것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9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법으로 정한 범위 이상의 세수 유예는 쉽지 않다”는 입장을 밝히자, 민주당은 ‘홍 부총리를 필두로 기재부가 의도적으로 세수를 과소 추계했다’며 압박하는 모양새다.

그런데 올해 세수는 여당을 포함한 국회도 알고 있던 사안이다. 정부는 통상 매년 8월마다 다음연도 예산안을 편성해 9월 국회에 제출한다. 올해 예산안 또한 지난해 9월 국회 제출해 의결된 것이다. 올해 초과 세수는 보수적인 세수 추계 영향도 있지만 이를 뛰어 넘는 경제 회복 속도 덕이라는 게 중론이다.

윤 원내대표 또한 지난 9월8일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우리나라는) 코로나 이후 OECD 국가 중 가장 빠르게 경제를 회복한 나라 중 하나”라고 높이 평가한 바 있다. 세수는 경제 성장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데 한국의 경제 회복세는 자찬하면서 세수는 과소 추계했다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여당 주도의 내년 초 재난지원금 지급은 결국 내년 3월 열릴 대통령 선거와도 떼어놓고 볼 수 없는 사안이다. 이미 민주당은 지난해 총선을 앞두고 전국민에게 14조3000억원의 재난지원금을 살포한 적이 있다. 재정으로 표심을 얻을 수 있다는 ‘달콤한 유혹’을 놓치지 못하는 모양새다.

세수의 과세 추계가 잘못됐다면 그대로 정부에 문제를 제기해 해결하면 되는 사안이다. 하지만 `세수를 국민에게 돌려 드리겠다`는 공감과 명분도 없는 주장은 오히려 나라 곳간을 염려하는 국민들로부터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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