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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화 약세, 중국 기업에게도 `양날의 검`

방성훈 기자I 2017.03.02 13:11:14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지난 3년 동안 중국은 미 달러화대비 위안화 가치가 약해지도록 통제·유도했다. 이론적으로만 보면 180개국에서 에어컨을 팔고 있는 중국 기업인 치고는 이익이 늘어나는 게 정상이다. 연간 매출액 12억달러 중 절반이 해외에서 발생, 제품을 판매할 때 가격경쟁력을 앞세워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어서다. 하지만 이 회사의 설립자인 리 싱하오 회장은 위안화 약세가 한계 이익만을 제공했다고 밝혔다. 이는 전 세계 대부분의 에어컨 업체가 중국에 생산기지를 두고 있어서다. 그는 “처음 한 달 동안에는 이익이 발생한다. 하디만 두 번째 달엔 가격을 다시 조정해야 한다. 공급이 수요보다 훨씬 많아서 이익이 늘어나질 않는다”고 설명했다. 위안화 가치가 떨어지면 주문업체들이 가격인하를 요구하거나 다른 사업자와 거래를 트려고 한다는 얘기다.

뉴욕타임스(NYT)는 1일(현지시간) 위안화 약세가 중국에게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위안화가 여전히 하락 압력을 받고 있는데 이러한 사실이 중국에게 ‘딜레마’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선 중국 정부가 위안화 약세를 유도할 경우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될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대선 기간 중 중국의 인위적인 위안화 평가 절하가 미국이 일자리를 빼앗아 갔다며 강도 높게 비난했다. 그러면서 취임 첫 날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겠다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달 23일에도 중국이 ‘환율조작 그랜드 챔피언’이라고 지적하는 등 기존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도 중국 통화정책에 대해 전반적인 환율조작 여부를 살펴보고 있다고 전했다.

아울러 최근 들어서는 위안화 약세가 일부 수출 기업들에겐 도움이 될 수 있으나 대다수 기업에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10년 전 인위적으로 위안화를 평가 절하했다. 중국 기업들은 가격경쟁력 측면에서 혜택을 봤다. 제너럴일렉트릭(GE), 마텔, 샘소나이트 등도 경쟁력 강화를 위해 생산기지를 아예 중국으로 옮겼다. 중국엔 수천만개의 제조업 일자리가 생겼고 경제는 호황기를 누렸다. 덕분에 중국은 경제대국으로 군림하게 됐다.

하지만 더 이상 이러한 효과는 기대할 수 없게 됐다. 과거완 달리 대부분의 생산기지가 중국에 있어서다. 예를 들어 창문 장착형 에어컨의 경우 전 세계에 공급되는 제품의 80% 가량이 중국에서 생산된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동일한 위안화를 사용하고 있어서 딱히 중국 기업이라고 가격경쟁력을 기대하긴 힘든 상황이다. 이제 가격경쟁력은 전문적이거나 고품질의 제품을 수출하는, 즉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할 수 있는 일부 업체에만 해당된단 얘기다.

공급과잉도 문제다. 세계 경기둔화는 수요 감소로 이어졌고 중국 내 많은 공장이 가동을 멈췄다. 여기서 생긴 손실은 가격에 반영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위안화가 약세를 보이면 고객들이 가격 인하를 요구해 온다. 이 때문에 과거와 똑같은 이득을 올리려면 훨씬 더 많은 제품을 팔아야 한다. 치고의 해외마케팅을 총괄 책임하는 재키 쳉 부사장은 “고객들은 위안화가 달러당 7.1위안까지 떨어질 것이라며 가격 인하를 요구하고 있다”면서 “이에 응하지 않으면 다른 중국 에어컨 업체와 계약하겠다고 위협한다”고 토로했다. 이외에도 위안화 가치 하락은 해외에서 돈을 빌린 기업들이 빚을 갚기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위안화는 여전히 하락 압박을 받고 있다. 가족이나 기업을 위한 해외 송금, 중국 경제둔화 우려에 따른 자금이탈 등이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중국은 외환 유출입을 엄격하게 통제·관리하고 있다. 하지만 홍콩과 국경이 맞닿은 심천에는 불법 외환거래가 성행하는 등 많은 외화가 지속적으로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다. 케빈 라이 다이와캐피털마켓 수석 아시아 이코노미스트는 “위안화를 많이 보유할수록 위안화 약세에 따른 손실도 커진다. 이 때문에 더 많은 중국인과 기업들이 해외로 송금하려고 한다”며 악순환을 우려했다.

중국 인민은행은 최근 몇 달 동안 위안화 기준치를 1달러당 7위안을 넘지 못하도록 유지했다. 현재는 달러당 6.9위안 수준이다. 대가는 컸다. 중국 외환보유고는 2년 반만에 1조달러가 줄어들었다. 이에 중국 정부는 최근 환율을 철저하게 들여다보고 있다. 하지만 이젠 다른 문제들까지 통화정책에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임금 상승이다. 신발이나 의류업체들이 다른 나라로 생산기지를 옮기는 시점까지 왔다. 이는 중국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NYT는 오는 5일 열리는 중국 전국인민대표회의(전인대)에서 위안화에 대한 논의가 비공식 주요 안건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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