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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갈등 속 '전안법' 표류…"소상공인, 생업 포기"

정태선 기자I 2017.12.28 14:54:20

KC인증마크 의무화 '전안법'..'행정편의 주의' 비난 봇물

최승재 소상공인연합회장이 전안법 개정안 통과를 촉구하고 있다. 소상공인연합회 제공.
[이데일리 정태선 기자] 전기용품뿐만 아니라 생활용품도 모두 KC인증을 받아야 하는 ‘전안법(전기용품 및 생활용품 안전관리법)’ 시행을 앞두고 소상공인들의 반발이 거세다. 국회 법 개정안 통과 뿐 아니라 이후 전면적인 대수술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정부의 전안법 제정 취지는 소비자의 안전 강화였지만 적용범위가 과도해지면서 역풍을 맞고 있다. 정부와 국회가 법 제정 과정에서 소상공인 소규모 유통업체의 여론을 제대로 수렴하지 않았고, 행정편의적인 낡은 규제 방식을 답습하면서 세계를 무대로 소량 생산하는 미래 한류 산업을 제한했다는 비난이 나오고 있다.

소상공인들과 소규모 유통업자들이 거세게 반발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제조비용 상승이다. 취급하는 모든 제품에 대해 품목별로 KC인증을 받아야 하는데, 건당 20만~30만원의 비용이 든다.

검사 인력, 설비 등 자체 인증역량을 갖추지 못한 소규모 업체는 대행기관을 거쳐 인증을 받아야 해 비용 부담이 가중된다. 이로 인한 생산단가 상승은 물론 소비 심리 위축과 경기 악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도 낳고 있다.

동대문도매시장에서 의류제조 도매업을 하고 있는 박중현 소상공인연합회 전안법 대책위 회장은 “전안법이 통과되면 1000원짜리 양말에도 KC마크 인증을 받아야 한다”며 “장사를 포기하는 사람도 있을 뿐만 아니고 그 다음에 더 큰 문제는 새롭게 장사에 진입하려는 청년창업자들이 많이 줄어들고, 의류 같은 경우 원단, 봉제, 부자재시장까지 연쇄적으로 위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예컨대 3000원짜리 반팔 티셔츠를 과거에는 한번에 1000장 정도 대량생산 했지만 최근에는 색깔과 디자인을 조금씩 달리해 다품종으로 소량생산한다. 다섯가지 색상별로 KC인증을 받는다고 하면 한색 상당 평균 10만원의 인증비가 추가된다. 결국 3000원짜리 티셔츠의 생산원가가 1000원 더 추가되는 셈이다. 하부구조로 내려가면 원가 상승에 상당한 압력을 줄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겨울 옷처럼 여러 원단을 사용한 제품을 만들 경우 인증 비용만 100만원을 훌쩍 넘길 수도 있다. 가죽공예품, 액세서리 제조업체의 사정도 이와 다르지 않다.

도매업체의 경우, 최대 수천만원에 달하는 인증 비용 부담 외에도 인증에 걸리는 시간도 감당하기 어렵다. 수 십일이 걸릴 수도 있는 인증을 기다려야 하는데, 유행에 민감하고 회전 속도가 빠른 업계와는 괴리가 있다.

망원시장에서 의류판매를 하는 정모씨는“제조업자들의 비용 부담이 고스란히 단가 상승으로 이어질 게 뻔하다”면서 “경기가 좋지 않은데 소비자들의 발길이 더욱 줄어들것”을 우려했다.

한 염색업체 종사자는 “품목마다 인증을 받으려면 매달 수백만원이 추가로 든다”면서 “난데없는 비용 부담으로 하루 벌어 먹고 사는 이들은 다 문닫게 생겼다”고 호소했다. 또 “나이 많은 상인들은 KC인증에 대해 얘기해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과태료만 최소 30만원~최대 500만원 수준이라는데, 1년을 유예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법안대로라면 옷이나 액세서리 등 온라인 유통·판매자도 예외 없이 모든 상품에 KC인증을 받아 인터넷 홈페이지에 게시해야 한다. 특히 구매대행사업자는 말 그대로 구매만 대행해 제품을 송달해주는 서비스업임에도 온라인에 올린 모든 상품을 인증해야 하는 판매자로 보면서 문제가 심각해졌다. 법을 지키기 위해서는 사업자가 고객이 구매한 제품과 동일한 상품을 사비로 구입해 인증을 받아야만 한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인증기관만 ‘배 불렀다’는 뒷말까지 나오고 있다. 전국 20개 정도 민간 인증기관 대부분 산자부 공무원 출신들이 고위직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더욱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다.

박중현 전안법 위원장은 “전안법은 소상공인들이 스스로 생업을 포기하게 만드는 법”이라며 “700만 소상공인을 죽이는 원안의 부활을 막기 위해 연내 개정안을 조속히 처리해달라”고 거듭 호소했다.

한편 내년 초부터 KC인증마크를 달지 않았을 경우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 원 이하의 벌금,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 부과받게 된다. 논란이 지속되면서 정치권에서도 연내 이 법안에 대한 개정안을 일단 통과시켜야 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여야 갈등으로 개정안은 표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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