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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시장법상 영업행위도 네거티브시스템으로 전환해야"

최정희 기자I 2017.09.11 14:30:00

`금융규제 패러다임 전환을 위한 정책세미나` 개최
"영업행위 포지티브 시스템, 금융혁신 막아"
원칙 위반시 과징금 등 엄중한 책임 부과해야

[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지난 2013년 동양증권은 부실 계열사 회사채 및 기업어음(CP)를 법정관리 직전까지 판매하거나 특정금전신탁에 편입해 4만여명의 투자자에게 약 1조6000억원의 피해를 입혔다. 그러나 동양증권은 과태료 3억5000만원을 부과받는 데 그쳤다. 투자자 정보 확인 등 세부 판매규제 위반 명목이다. 계열사가 법정관리에 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알고서도 계열사 지원을 위해 투자자를 속이는 행위에 대해선 제재를 받지 않은 셈이다. 계열사 지원을 위한 위험상품 취급 금지 규제는 2013년 10월 금융위원회 규정을 통해서야 사후 도입됐다.

동양 사태와 이에 대한 제재 등을 살펴보면 현행 자본시장법이 가진 문제점이 드러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령에 열거된 규제사항만 제재가 가능해 투자자보호 등을 하지 않았어도 규정만 잘 비켜가면 제재를 받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이런 ‘규정’ 중심의 자본시장법 체제를 ‘원칙’ 중심(Principle-based Regulation)으로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출처: 김용재 교수)규정 중심 규제와 원칙 중심 규제 차이
김용재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금융규제 패러다임 전환’ 정책 세미나에서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자본시장법상 원칙중심규제의 도입 필요성과 개정방향’이란 보고서를 발표했다. 김 교수는 “최근 로보 어드바이저, 블록체인과 같은 핀테크 발달 등 자본시장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며 “자본시장에서의 금융혁신을 통해 경제 역동성을 극대화 함과 동시에 새로운 형태의 위험으로부터 투자자 보호를 달성하는데 적합한 원칙 중심 규제로 규제 패러다임이 대전환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2007년 자본시장법이 제정되면서 투자자 보호를 강화하고 금융혁신을 이루려는 입법적 시도가 있었으나 시행령이나 감독규정 등 하위법령은 종전 증권거래법의 규정 중심 규제 틀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의 자기자본 규모가 각각 105조원, 92조원에 달하는데 우리나라에선 자기자본 규모가 가장 큰 증권사가 미래에셋대우의 6조6000억원에 불과해 여전히 글로벌 투자은행(IB)간 격차도 크다.

김 교수는 “현행 자본시장법은 금융투자상품만을 네거티브 시스템(Negative System)으로 전환했을 뿐 정작 가장 중요한 영업행위 규제는 포지티브 시스템(Positive System)”이라며 “금융투자업자가 새로운 금융투자상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하려고 해도 관련 법령에서 촘촘한 영업행위 규제를 열거해 창의적인 금융혁신이 불가능하다”고 꼬집었다. 문제는 영업행위규제 자체가 금융혁신은 물론 투자자 보호에도 별 도움이 안 된다는 점이다. 금융투자업자들은 세부 규정의 준수여부에만 매몰돼 금융혁신이나 투자자보호엔 소홀하단 지적이다.

핀테크 등 금융환경이 급변하면서 사전에 법령에서 열거하지 못한 행태로 투자자 피해가 발생할 경우엔 즉시 제재를 내리지 못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식 규제 신설이 반복되는 꼴이 양산될 수 있단 우려다.

김 교수는 “규정 중심의 규제는 법령에 열거된 절차와 방식만을 강조해 금융투자업자가 신상품 개발과 업무 혁신에 소극적”이라며 “원칙중심 규제로 전환해 금융회사의 자율과 창의를 극대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본시장법의 모태가 됐던 영국, 호주 등은 10여년전에 원칙 중심의 규제로 전환됐다.

규정 중심의 규제가 ‘과정’을 중시한다면 원칙 중심 규제는 ‘결과’를 중시한다. 김 교수는 “원칙 중심 규제는 법령에 일반적인 기준만 제시하고 원칙 위반시 강력한 처벌이 가해진다”며 “새로운 변화에 대한 수용성이 높고 규제 사각지대를 해소할 수 있단 강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영업행위나 운용규제는 원칙 중심 규제로 전환하고 시장질서와 공시 등은 현행 규정중심 규제로 전환하는 게 바람직하단 지적이다. 이어 “영업행위에 대한 결과와 이에 따른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 투자자 피해 야기시 금융투자업자에 엄중한 책임을 부여토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원칙중심 규제가 규제 완화라는 지적에 대해선 “법률상 세부사항이 원칙으로 통합해 규율되는 것이지, 규제 내용이 사라지거나 완화되는 것은 아니다”며 “결과에 따른 책임을 엄중하게 묻기 때문에 규제 완화로 볼 여지가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원칙중심의 규제는 규제의 명확성이 부족하다는 부분이 단점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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