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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증권가로 돌아온 '검투사' 황영기 금투협회장 당선자

박수익 기자I 2015.01.20 16:31:47
[이데일리 박수익 기자] ‘검투사가 증권가로 돌아왔다.’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 당선자(64·사진)는 역대 회장 가운데 처음으로 직장생활 첫 발을 비(非)금융파트에서 시작한 인물이다. 초대 황건호 회장과 2대 박종수 회장이 대우증권·외환은행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것과 달리 황 당선자는 1975년 삼성물산에서 출발했다. 이후 영국 런던대 정경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마친 뒤 30대 초중반을 뱅커스 트러스트은행 서울지점과 동경지점에서 보내며 국제금융감각을 익혔다. 삼성그룹에 복귀한 이후에는 회장 비서실 국제금융팀장과 삼성전자 자금팀장(상무)을 역임하며 그룹내 최고 금융전문가로 꼽혔다.

1988년 삼성의 국제증권 인수 건을 맡았고, 2001년에는 본인이 직접 삼성증권 대표이사를 받아 지금의 삼성증권 토대를 마련했다. 당시 황 당선자는 삼성증권의 종합자산관리형 영업 체계 구축, 투자은행 사업 강화 등을 통해 기존 위탁매매 중심의 수익구조를 다변화하는 전략을 적극 추진했다.

황 당선자가 증권가를 넘어 금융가에 본격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은 2004년 우리금융지주 회장 겸 우리은행장에 선임되고부터다. 당시 치열했던 은행권 영토 확장 과정에서 ‘토종은행론’ ‘맏형론’ 등 화두를 선점하며 숱한 화제를 남겼다. ‘우리은행’이라는 이름을 경쟁 은행에서 문제 제기하자 ‘우리 등에 칼을 대면 우리도 뒤통수를 치겠다’는 공격적 표현으로 맞서기도 했다. 우리금융 대주주 예금보험공사와도 경영정상화이행약정(MOU)를 놓고 자주 충돌했다. 이러한 이력은 그에게 ‘검투사’라는 별칭을 안겨주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황 당선자는 우리금융지주에서 물러난 후 1년 반 가량 공백기를 거친 뒤 2008년에는 KB금융지주 회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하지만 취임과 동시에 글로벌 금융위기기 터졌고, 2009년에는 우리은행장 시절 파생상품 투자 실패에 대한 책임으로 금융당국으로부터 직무정지 3개월의 중징계를 받고 회장직에서 중도 사퇴했다. 이후 금융계를 떠났지만 자신에 대한 중징계 결정에 불복한 행정소송에서 3년 만인 2013년 대법원 승소판결을 이끌어내며 또 한번 주목을 받았다. 최근에는 차병원그룹 부회장을 지내며 바이오업계에 몸담기도 했다.

한편 황 당선자는 다른 후보자들에 비해 증권업계 경력이 짧은 탓에 선거전 기간 “정통 증권맨이 아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예상을 뒤짚고 1차투표에서 과반이 넘는 득표를 하며 일찌감치 승부를 갈랐다. 최소 결선투표까지 예상했던 금융투자업계에서도 이같은 선거 결과는 다소 의외라는 반응이다. 황 당선자는 소신이 강해 가는 곳 마다 당국과 마찰을 불사하기도 했지만 이러한 측면이 증권업계를 대변할 소신으로 작용할 수있다는 ‘표심’, 금융업계를 뛰어넘어 정관계까지 폭넓은 인맥도 승부를 가른 요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64세 △경북 영덕 △서울고 △서울대 무역학 △영국 런던대 정치경제대학원 석사 △뱅커스 스트러스 동경지점 부사장 △삼성그룹 비서실 국제금융팀장 △삼성전자 자금팀장(상무) △삼성생명 전략기획실장(전무) △삼성투신운용 대표 △삼성증권 대표 △우리금융지주회장 겸 우리은행장 △KB금융지주회장 △법무법인 세종 고문 △차병원그룹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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