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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곳에선 편안하길”…‘얼차려 사망 훈련병’ 폭염 속 추모 행렬

황병서 기자I 2024.06.19 15:46:10

군인권센터, 19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8시까지 운영
군인 자식 둔 부모부터 입대 앞둔 대학생들까지 모여
“중대장 너무 가혹해”…“가해자 처벌이 재발 방지”

[이데일리 황병서 기자 정윤지 수습기자] “그곳에선 아프지 말고 편히 쉬세요.”

19일 서울 용산구 용산역 광장에 마련된 ‘육군 12사단 박 훈련병 시민 추모 분향소’의 문이 열리자 마자 군인인 자식을 둔 부모부터 군대를 갓 제대한 대학생들까지 삼삼오오 모여드는 등 발길이 끊임 없이 몰려들었다. 이날은 서울엔 첫 폭염주의보가 내려지는 등 무더운 날씨였지만, 조문객들은 한 송이 국화꽃을 헌화하며 숨진 훈련병의 넋을 위로했다.

19일 서울 용산구 용산역광장에 ‘육군 12사단 박 훈련병 시민 추모 분향소’가 마련되면서 시민들이 숨진 훈련병을 추모하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사진=정윤지 수습기자)
특히 군인 자녀를 둔 가족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훈련병인 아들을 둔 이은영(48)씨는 딸인 이예진(22)씨와 검은색 옷을 맞춰 입고 분향소를 방문했다. 이씨는 “할 수 있는 것은 없지만 이렇게라도 잊지 않고 기억하려고 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훈련병은 일주일에 한 번 주말에 1시간씩 통화가 가능한데, 사건이 터지고 나서는 ‘너라도 잘 알고 대처해야 한다’고 말해줬다”면서 “채 해병 사건도 그렇고 군인을 단순 소모품으로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러면 어떤 군인이 나라를 위해 복무하고 싶겠나”고 목소리를 높였다.

숨진 훈련병과 비슷한 또래의 추모 행렬도 이어졌다. 경남 김해에서 올라왔다는 대학생 이재진(24)씨는 “돌아가신 훈련병의 어머님께서 쓴 편지를 (뉴스를 통해서) 보고 마음이 아파서 오게 됐다”며 “중대장도 이렇게 되라고 한 것은 아니겠지만 가혹한 것 같다”고 말했다.

곧 군대에 가는 입장인 조재민(22)씨는 인천 미추홀구에서 1시간 걸려서 이곳을 찾았다. 검은 정장을 입고 온 조씨는 “나이가 20대 초반이다 보니 친구들이 다 군인이고, 저도 곧 군대를 가야 하는 입장에서 남일 같지 않았다”며 “국가를 지킨다는 이유로 끌고 갔는데 규정을 위반하면서까지 군기훈련을 해서 화가 나고 억울하다. 진상규명과 함께 가해자에 대한 엄벌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휴가 중 분향소를 찾은 현역 군인도 있었다. 강모씨는 “휴가를 받고 서울에 올 일이 있었는데 분향소가 열린다고 해서 왔다”면서 “요즘에 사건 사고가 워낙 많아서 우리 내부에서도 동기들끼리 분위기가 안 좋은 것 같고 안타깝다는 이야기기가 나온다”면서 “결국에는 책임자 처벌이 안 되는 게 문제인데, 가해자를 잘 처벌하는 게 재발 방지에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19일 서울 용산구 용산역광장에 ‘육군 12사단 박 훈련병 시민 추모 분향소’가 마련됐다.(사진=정윤지 수습기자)
숨진 훈련병을 위한 메시지를 남기는 게시판에도 추모 열기가 뜨거웠다. 게시판에는 ‘다시는 이런 비극이 없기를 기도합니다’, ‘당신의 죽음을 조롱한 자들을 살려두지 않겠습니다’, ‘철저한 수사를 바탕으로 부모님의 한을 풀어드리길 바라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고귀한 생명이 나라 위해 복무하러 갔다가 허망하게 갔습니다. 그 이름을 기억하겠습니다’ 등의 메시지로 빼곡했다.

한편, 경찰은 육군 12사단 훈련병 사망사건과 관련해 중대장 등 수사대상자들의 신병확보에 나섰다. 강원경찰청 훈련병 사망사건 수사전담팀은 지난 18일 중대장(대위)과 부중대장(중위)에 대해 직권남용가혹행위와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검찰에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은 이들이 지난달 23일 사단 신교대 연병장에서 숨진 훈련병을 비롯한 6명을 대상으로 군기훈련을 실시하면서 군기훈련 규정을 위반했다고 보고 있다. 군기훈련이란 지휘관이 군기 확립을 위해 규정과 절차에 따라 장병에게 지시하는 체력단련과 정신수양 등을 말한다. 다만, 경찰은 고의성이 없다고 보고 살인 혐의 대신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했다. 춘천지방검찰청은 경찰이 신청한 구속영장을 검토한 뒤 법원에 청구할지 곧 결정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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