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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지극한 사랑,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마음이죠"

장병호 기자I 2021.09.07 16:15:24

신작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 출간
5월 광주 이어 제주 4·3 사건 다뤄
"죽음에서 삶으로 연결해준 소설"
"사랑도 애도도 계속 끌어안고 가야"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은 사랑이라는 생각을 ‘소년이 온다’ 이후로 하게 됐고, 이 소설을 쓰면서 더 깊게 생각하게 됐습니다.”

맨부커상 수상작 ‘채식주의자’, 5·18민주화운동을 다룬 ‘소년이 온다’ 등으로 잘 알려진 소설가 한강(51)이 5년 만에 신작 장편소설로 독자 곁을 찾아왔다. 9일 출판사 문학동네를 통해 출간되는 ‘작별하지 않는다’다.

소설가 한강이 신작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 출간을 앞두고 7일 온라인으로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한 작가는 “저 자신도 완성될 수 있는 소설인지 의문을 품었는데, 어떻게 완성하게 됐다”며 “오랜 시간 썼기에 이 책이 더 감사하고 뭉클하다”고 말했다. (사진=문학동네)
한 작가는 이번 신작에서 또 다른 역사의 비극인 제주 4·3사건을 이야기한다. ‘소년이 온다’를 쓰면서 겪은 고통의 기억, 그리고 90년대 후반 제주도 바닷가에서 3~4개월 머물면서 주인집 할머니로부터 4·3사건의 상처를 들은 경험이 새 소설로 이어졌다.

7일 온라인으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한 작가는 “그동안 지금 어떤 소설을 쓰고 있는지 물어보면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 ‘죽음에서 삶으로 건너가는 소설’ ‘제주 4·3 사건을 그린 소설’이라고 답했는데, 그 중에서도 하나를 고른다면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을 꼽고 싶다”며 “이 소설이 나에게 지극한 사랑의 상태를 요구했고, 그러한 마음에 이르기 위해 애썼기 때문이다”라고 이번 소설을 소개했다.

소설은 학살에 대한 소설을 쓰고 난 뒤 악몽에 시달리는 소설가 경하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실제로 ‘소년이 온다’를 쓴 뒤 악몽에 시달렸던 한 작가의 개인적인 내용이 투영된 인물이다. 흰 눈 가득한 언덕 위 이름 없는 무덤 위를 하염없이 걷는 경하의 꿈은 한 작가가 실제로 꾼 꿈이다. 한 작가는 “어떤 소설이든 소설을 쓰는 동안 사람을 변형시킨다”며 “‘소년이 온다’를 쓰고 난 뒤 내가 꾼 악몽과 고민 또한 내가 평생 가져가야 하는 것이 됐다”고 털어놨다.

경하의 이야기에서 시작하는 소설은 경하의 친구이자 제주도가 고향인 인선, 그리고 4·3사건을 겪었던 인선의 어머니 정심의 행적을 좇는 전개로 펼쳐진다. 역사의 비극을 다룬다는 점에서 ‘소년이 온다’와 유사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 소설은 한 작가를 고통으로부터 구해주는 작품이 됐다는 것이다.

“‘소년이 온다’를 쓰면서 제 삶에 악몽이나 죽음이 깊이 들어오는 경험을 했다면, 이번 소설을 쓰는 동안엔 죽음에서 삶으로 건너오는 경험을 했어요. 물론 이번에도 소설을 쓰는 동안 고통을 겪기도 했지만, 오히려 소설이 저를 고통에서 구해주는 순간도 있었어요.”

소설가 한강이 7일 온라인으로 열린 신작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문학동네)
한 작가는 2014년 6월 자신의 꿈을 두 페이지로 쓴 뒤, 2018년 12월 말이 돼서야 본격적으로 소설 집필에 들어갔다. 1년여가 흐른 뒤 코로나19 팬데믹을 겪게 된 경험도 소설에 자연스럽게 반영됐다. 한 작가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집단적으로 고독한 경험을 하고 있는 지금, 그 고독으로 우리는 더 간절하게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됐다고 생각한다”며 “그러한 간절함이 지극한 사랑과도 맞닿아 있다”고 말했다.

제목인 ‘작별하지 않는다’에서도 한 작가가 말하는 간절하고 지극한 사랑의 의미를 확인할 수 있다. 소설 중간 경하와 인선이 나누는 대화에서 따온 제목이다. 한 작가는 “소설 속에서 경하와 인선은 ‘작별하지 않는다’의 여러 의미를 놓고 대화를 나누는데, 저에게는 ‘작별하지 않겠다’는 각오의 말이며 사랑이든 애도든 끝내지 않고 계속 끌어안고 걸어가겠다는 결의였다”고 밝혔다.

차기작에 대한 생각도 털어놨다. 먼저 이번 소설 집필을 위해 미뤄둔 ‘눈’ 연작 3부작의 마지막 편을 쓸 계획이다. 한 작가는 “이번 소설로 죽음에서 삶으로 나왔기 때문에 앞으로 가게 될 방향도 달라질 것”이라며 “몇 개의 이야기가 마음 속에 맴돌고 있는데 그 결은 이번 소설과는 또 다를 것 같다”고 말했다.

소설가 한강 신작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 표지(사진=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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