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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퇴직연금]<2>②한국식 기금형제도, 벌써 실효성 논란

정수영 기자I 2017.11.16 12:29:00

2014년 도입 계획 발표 후 아직 개정안도 못내
수탁법인 설립비·운영비 부담에 기업들 시큰둥
해외와 다른 투자문화·비경쟁 수탁법인 등 한계
중소기업 기금형퇴직연금도 국회 통과 하세월



[이데일리 정수영 기자] 정부가 지난 2014년 도입 계획을 발표한 기금형 퇴직연금제도가 준비 미흡과 의견 충돌로 아직 법안 개정안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는 이르면 이달 관련법(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지만 정부가 계획하고 있는 한국형 방식에 대해 벌써부터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어 국회 논의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된다. 대통령 공약사항인 종업원 30명 미만 사업장에 대한 기금형 퇴직연금제도 의무도입 방안도 국회 논의과정에서 퇴직금을 1년 미만 근로자에까지 확대 적용하는 문제로 여야간 의견이 갈리며 계류중이다.

◇일단 도입부터 해야 VS 경쟁구도 없인 의미 없어

기금형 퇴직연금제도는 사용자와 근로자의 합의로 회사와 분리된 퇴직연금 기금을 신탁형태로 설립하고 수탁자를 선정해 연금 운용을 맡기는 형태다. 사용자는 노사공동으로 기금운용 관련 정책을 결정해 수탁자에게 업무를 맡기고 수탁자가 모든 관리 책임지고 기금을 운영한다. 형태는 대기업처럼 덩치가 큰 회사가 단독으로 수탁법인을 설립, 운영하는 형태와 계열사와 함께 또는 몇몇의 중소기업들이 공동으로 법인을 설립해 운영하는 연합형으로 나뉜다. 정부는 기금형 퇴직연금제도 도입으로 현재 퇴직연금사업자(은행·보험·증권사)와 계약형태인 퇴직연금 방식을 계약형 또는 기금형으로 나눠 회사가 선택할 수 있게 할 계획이다.

금융투자업계는 일단 도입을 시도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의견이 많다.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박사는 “(기금형) 제도를 만들어 선택 가능한 대안을 여러 개 만들어 주는 것은 바람직하다”며 “다만 대기업 위주인 단일 형태야 별 문제없지만 중소·중견기업들이 대상인 연합형은 기금 운용에 따른 비용이나 수수료를 인하 또는 지원해주는 등 정책적 배려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수탁법인 설립과 운영, 전문가 채용 등에 비용 발생은 불가피하다. 계약형은 일종의 수수료만 내면 되지만 수탁법인 설립시 인건비, 사무실 운영비 등이 추가로 들어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손성동 한국연금연구소 대표는 “기존 계약형은 일종의 수수료만 부담하면 되지만 수탁법인을 설립할 땐 비용부담이 클 수밖에 없어 웬만큼 수익을 올리지 못하면 오히려 손해”라고 설명했다. 또 “기금형이 잘 돼 있는 호주, 미국, 일본과 달리 국내에선 투자 마인드가 갖춰져 있지 않고 신탁도 낯설어 한다”며 “문화 자체가 다른데 만들어만 놓고 도입하라고 한들 해외처럼 활성화가 잘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김성일 KG제로인 연금연구소장도 “호주의 경우 근로자가 회사가 만든 기금법인 뿐 아니라 외부에서 만든 기금 관련 법인에도 가입할 수 있지만 국내에선 회사가 만든 수탁법인에만 가입이 가능한 구조로 설계됐다”며 “기금법인간 경쟁 없이는 수익률 확대, 수수료 인하 등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중소기업 기금형 퇴직연금…근무기간 논란 속 묻혀

중소기업부터 도입하기로 한 기금형 퇴직연금제도가 퇴직급여 대상자 기준 선정 문제로 도입 시기가 불투명하다. 현재는 직장을 1년 이상 다녀야 퇴직급여(퇴직금 또는 퇴직연금)을 받을 수 있지만 1년 미만 비정규직 근로자도 가능하도록 하는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면서 함께 담고 있는 중소·영세사업장 기금형 퇴직연금제도 시행도 미뤄지고 있다. 정부는 50인 이하 사업장을 대상으로 중소기업 퇴직연금 기금제도를 도입, 기업이 개별 납부한 적립금을 공적으로 관리하고 사업주 재정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3년간 한시적으로 재정을 지원하겠다는 구상이다.

이 안은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제출한 개정안과 임이자 자유한국당 의원이 지난 6월 제출한 개정안을 중심으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논의중이다. 하지만 지난 9월말 열린 환노위에서 퇴직급여 대상을 어디까지 확대할 것인지를 두고 여야간 설전이 벌어지면서 기금형 부분에 대해선 논의조차 못한 상황이다. 환노위는 오는 24일부터 법제심사소위를 열어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근로자 퇴직연금 보장법 개정안을 논의할 예정이지만 최저임금제 등 현안이 많아 다뤄질지도 미지수다. 금융투자협회 관계자는 “중소기업부터 기금형 퇴직연금이 자리잡으면 중견기업과 대기업으로 확산될 것”이라면서 “서둘러 개정안이 통과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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