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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피의자 신상공개 역대 최다…스토킹·교제·보복 살인 잇따라

이소현 기자I 2021.12.20 14:43:06

강력범죄 8명·디지털성범죄 2명…흉악범죄 급증
과거 신분증 사진·마스크에 가린 얼굴…'반쪽'
범죄 예방 기능 제대로 하고 있나

[이데일리 이소현 기자] 얼굴과 이름, 나이 등 신상이 공개된 피의자 수가 올해 두자릿수를 기록하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경찰이 신상정보 공개 심의위원회 운영지침을 마련한 2015년 이후 처음이다. 피의자 신상공개는 살인 등 강력범죄 중에서도 범행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허용되지만, 최근 들어 스토킹 살인을 비롯해 교제 살인, 보복 살인 등 강력범죄가 늘고 사회적 공분이 커지자 더욱 적극적인 신상공개가 이뤄지는 추세다.

2021년 신상공개가 결정된 강력범죄 피의자 김태현(25)·허민우(34)·최찬욱(26)이 마스크를 벗고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으며, 피의자 김병찬(35)·강윤성(56)·김영준(29)·백광석(48)이 신상공개가 결정된 이후에도 마스크를 벗지 않은 채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0일 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피의자 신상공개는 10명(9건)으로 나타났다. 2016년 5명(5건), 2017년 3명(2건), 2018년 3명(3건), 2019년 5명(5건), 2020년 8명(8건) 등 예년에 비해 늘었다.

피의자 신상공개는 경찰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특정강력범죄법)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처벌법)에 근거해 이뤄진다. △범행 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사건일 것 △피의자가 그 죄를 범했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을 것 △국민의 알권리 보장과 피의자의 재범 방지 및 범죄예방 등 오로지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할 것 등이 요건이다.

올해 신상이 공개된 피의자 10명 중 강력범죄자는 8명, 성폭력범죄자는 2명이다. 특히 강력범죄 피의자는 지난해 2명에서 올해 대폭 늘었다. 스토킹 범죄로 시작해서 피해자뿐 아니라 피해자의 가족까지 살해하는 등 죄질이 불량한 범죄가 잇따랐다.

올해 첫 신상공개 대상자는 서울 노원구에서 세 모녀를 살해한 김태현(24)이었다. 온라인 게임에서 만난 피해자를 스토킹하다가 일가족을 모두 죽인 참극을 벌여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지난 4월 신상공개됐다. 11월 스토킹하던 여성의 목숨을 앗은 혐의를 받는 김병찬(35)은 앞선 10월부터 시행된 스토킹 처벌법 위반죄를 적용 받고 얼굴을 공개했다.

범죄 타깃 삼은 이의 가족까지 해친 흉악범은 김태현뿐만이 아니다. 지난 17일 검찰에 송치된 이석준(25)은 신변보호를 받던 여성의 가족을 살해해 어머니는 사망했고, 남동생은 중상을 입었다. 앞서 지난 7월 신상이 공개된 백광석(48)과 김시남(46)은 동거했던 여성의 중학생 아들을 살해한 혐의로 1심에서 각각 징역 30년과 27년형을 선고받았다.

작년 ‘n번방’ 사건에 이어 올해 디지털 성범죄자들도 지난 6월 피의자 신상공개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남자 n번방’ 사건으로 불리는 김영준(29)과 최찬욱(26)은 여성을 사칭해 미성년자가 포함된 남성 피해자를 유인해 불법촬영물을 제작하고 유포한 혐의를 받는다. 이외 허민우(34)는 지난 5월 인천의 한 노래주점에서 손님을 살해하고 유기한 혐의로, 강윤성(56)은 지난 9월 ‘전자발찌’를 끊고 여성 2명을 연달아 살해한 혐의로 각각 신상을 대중에 공개했다.

피의자의 신상공개가 잇따르지만, 당초 제도 취지인 범죄 예방 기능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계속 나온다. 현재의 모습과 현저히 다른 과거 사진이 공개되거나 코로나19를 이유로 마스크를 벗지 않아 ‘반쪽’에 그치는 데다 사회적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에도 부족하다는 것이다.

법조계 한 인사는 “범죄자의 재범 위험성을 낮추는 예방 기능은 사실상 없고, 일반인들에게도 알권리를 충족시키는 데에 머물고 있다”며 “국민적 공분에 밀려 신상공개만 늘릴 게 아니라 범죄예방과 국민 알권리의 적절한 배합, 피의자 가족 등에 대한 2차 피해 가능성 등을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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