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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파급력 큰 창작자 추가 보상청구권, 서두르지 말아야

정다슬 기자I 2023.02.17 19:51:55

4시간 가까이 이어진 공청회
같은 질문에도 진술인들 의견 엇갈려
문체부 5월께 용역결과 나올 듯
객관적 실태조사 결과 나온 뒤에 논의해도 늦지 않아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저작권법 개정에 관한 공청회가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리고 있다. 왼쪽부터 진술인으로 참석한 이해완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규호 중앙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노동환 ㈜콘텐츠웨이브 정책협력팀장, 김병인 한국시나리오작가조합 대표. (사진=연합뉴스 제공)
[이데일리 정다슬 기자]“창작자 권리 보호를 위한 입법 취지에는 공감을 하고 있다”

9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열린 저작권법 개정 공청회에서 진술인들이 이구동성으로 한 말이다. 창작 생태계를 더욱 활발하게 하기 위해서는 영상 콘텐츠가 소위 ‘대박’이 났을 경우 감독·작가 등 영상물 저작자에도 추가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는 전제에 대해서는 반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문제는 언제나 그렇듯 ‘디테일’에 있다. 이날 공청회에서 진술인들은 같은 사안에서도 180도 다른 답을 냈다.

①플랫폼은 “낙농업자”vs“편의점 점주”

창작자 측은 방송사·인터넷동영상서비스(OTT)·극장 등 최종이용자(플랫폼)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음악의 경우, 음악저작권협회와 같은 신탁업체가 최종이용자에게 음악저작권료를 징수해 창작자에게 분배한다. 그러나 영상콘텐츠는 저작권법 100조에 따라 특약이 없는 한 콘텐츠의 지적재산권(IP)이 제작사에 넘어가 버린다. 권리관계가 최종 이용자에게까지 이어지지 못하고 제작사에서 끊어지는 것이다. 플랫폼은 해당 영상콘텐츠의 이용권리를 창작자가 아닌 제작사와 논의한다. 영상 콘텐츠 창작자 업계는 이것이 불합리하다며 최종이용자가 추가 보상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플랫폼 측은 창작자와 계약을 맺은 제작자가 추가보상의 주체가 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병인 한국시나리오작가조합 대표의 비유에 따르면, 창작자는 소이고 낙농업자는 플랫폼이다. 김 대표는 “제대로 된 낙농업자라면 더 좋은 유제품을 만드는데 신경써야 한다”며 “(플랫폼의 주장은), 소에게 돌아갈 먹이를 줄여야 우리가 살아날 수 있다라고 들린다”고 비판했다. 반면 플랫폼 업체는 자신들의 낙농업자가 아닌 편의점 점주라고 주장한다. 좋은 우유가 편의점 매출에 기여하는 것은 맞지만, 편의점 매출이 늘었다고 해서 자신들이 소에게 직접 풀을 줄 수는 없다는 것이다.

글로벌 OTT 업체인 ‘넷플릭스’가 미국·유럽 등에서는 창작자에 대한 추가보상을 보장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창작자 업계는 이런 사례를 봤을 때 창작자에 대한 추가보상 보장은 글로벌 스탠다드이며 오히려 창작 생태계를 활성화시킬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플랫폼 측 진술인으로 나선 노동환 웨이브 정책팀장은 “넷플릭스의 오징어게임으로 이런 논의가 시작됐는데 넷플릭스가 창작자와 어떤 지위로서 계약을 맺었는지를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며 “계약 당시의 넷플릭스 지위는 플랫폼이 아닌 콘텐츠 제작 투자자”라고 말했다.

아울러 OTT 역시 제작자 투자자로서는 노력하고 있다고 항변했다. 오리지널 시리즈를 제작할 때 일정한 성과가 나오면 지금도 계약을 통해 작가나 실연자들에게 이익을 분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직접적 계약관계에 있지 않은 제작물까지 이를 보장하기는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이규호 중앙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창작자 측의 주장은) 아파트를 팔아놓고 아파트값이 오르자 그 돈도 내가 나눠 가져야 한다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②“법이 없어서 해외서 국부 유실”vs“법 생기면 해외에 국부 유출”

창작자 측이 법 개정 필요성으로 주장한 대표적 이유 중 하나는 창작자의 추가보상을 보장한 국가에서조차 국내법의 미비로 이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한국영화감독조합(DGK) 측은 “한국영화가 해외로 본격 수출되기 시작한 1990년대 말부터 2015년까지 전 세계에서 상영된 한국영화의 창작자 보상금이 유실됐다”며 “최소 1000억원 이상의 손실이 이미 발생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이날 공청회에서 문화체육관광부는 “해외에서 거둬들이는 추가보상금은 우리 국내법과 상관없다”고 말했다. 문체부는 최근 스페인 정부로부터 이같은 답변을 확인했다고 한다. 다만 “(스페인 측은) 한국도 우리처럼 이런 제도를 도입했으면 좋겠다는 희망사항을 전달했다”고 덧붙였다.

플랫폼 측은 반대로 법이 제정되면 베른협약에 따라 국내 미디어 사업자가 해외에 보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 팀장은 “웨이브 기준 연간 300억원의 해외 콘텐츠를 들여오는데 추가보상이 의무화되면 약 10%인 30억원을 추가로 미국으로 보내야 한다”고 추산했다. 반면 김 대표는 “미국은 영상물은 업무상 저작물이기 제작사가 저작권자이고 감독·작가 등 창작자와의 단체협약을 통해 1~2%의 보상금을 줘왔다”며 “우리나라에서 추가보상금에 대한 법을 제정한다고 해서 미국에 돈을 줄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③“법 생기면 창작 생태계 활성”vs“얼마든지 빠져나갈 구멍있어”

가장 핵심은 이 법이 정말 우리나라 창작 생태계를 건강하게 만들 것이냐이다. 김 대표는 “영화계가 지금 폐사 위기에 놓여있는 상황에서 많은 영화 인력들이 어찌할 바를 모르는 상황”이라며 “방송 드라마는 너무 호흡이 길고 OTT의 6~8부작 오리지널 시리즈가 영화인으로서는 도전할만한 한데 영화와 달리 OTT는 너무 보상이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만약 법이 개정된다면 동기 부여가 돼 많은 영화인력이 돌아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플랫폼은 가뜩이나 토종 OTT의 경우, 만년적자인 상황에서 추가보상 의무까지 생기면 콘텐츠 투자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아울러 넷플릭스와 같은 해외 OTT는, 준거법을 다른 해외에 두면 되기 때문에 토종 OTT만 역차별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항변했다.

이날 공청회는 4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그만큼 치열한 격론이 벌어졌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갈수록 참석자들이 공감한 것은 보다 객관적인 검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재 문체부가 현재 제도 도입에 따른 영향 분석 등 연구용역을 진행 중인 만큼 먼저 이 결과를 기다려볼 필요가 있다. 결과는 이르면 5월께 나온다.

희망적인 것은 엇갈리는 주장 속에서도 창작자에게 더 나은 대우가 돌아갈 필요가 있다는 공감대는 확인됐다는 점이다. 파급력이 큰 법인 만큼 좀 더 긴 호흡에서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납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는 노력을 해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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