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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 받으러 갔더니 지갑이.. 한강서 방심하면 다 털려

이유림 기자I 2024.06.12 15:53:30

치안 강국이라지만..자리 비운사이 돗자리만 덩그러니
"사람 많은데", "잠깐이니까" 경각심 부족..주의 필요
서울시, CCTV 추가 설치에도 사각지대 불가피

[이데일리 이유림 기자] 이른 더위가 찾아온 지난 10일 저녁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 커플로 보이는 20대 남녀는 잔디밭 위에 돗자리를 깔고 가방을 내려놓은 뒤 곧장 어디론가 향했다. 이들이 자리로 돌아온 건 10여 분 뒤. 편의점을 다녀온 듯 손에는 컵라면과 탄산수 두 개가 들려 있었다. 그사이 가방을 지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도둑맞을 걱정은 하나도 하지 않는 듯 했다.

지난 10일 저녁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 시민들이 돗자리와 소지품을 남겨둔 채 자리를 비운 모습. (사진=이유림 기자)
최근 한강공원 일대에서 절도 범죄가 발생해 나들이객의 주의가 요구되고 있다. 잔디밭에 돗자리와 소지품만 놔둔 채 자리를 비운 사이 누군가 가방과 휴대폰, 지갑 등을 훔쳐 가는 일이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지난달 특수절도 혐의로 고등학생 A(16)군 등 3명을 붙잡았다. 이들은 지난해 12월 말부터 지난 4월 말까지 약 5개월간 한강공원 일대에서 시민들의 소지품을 훔친 혐의를 받는다. 주로 음식 배달을 받으려 돗자리를 비운 틈이나 화장실을 간 사이 물건을 훔친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 파악된 피해 금액은 약 1000만원, 피해자는 30여 명에 달했다.

사건이 발생한 지 한 달이 흘렀지만 한강공원 곳곳에서는 여전히 돗자리와 소지품만 달랑 남겨진 모습을 어렵지 않게 포착할 수 있었다. 대다수 시민들은 짧은 시간 자리를 비운 데다 주변에 사람도 많아 ‘별일 없겠거니’란 생각으로 안일하게 대처하고 있었다.

퇴근 후 직장 동료와 치맥을 하러 나왔다는 20대 장효원씨는 “음식을 다 먹고 정리하기 위해 잠깐 자리를 비웠다”며 “공원이 넓어서 한 명씩 다녀오기엔 시간이 오래 걸리고 한 번에 움직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가방 세 개와 맥주캔 여러 개로 자리를 맡은 20대 여성(익명 요청)은 “지갑이랑 휴대폰은 챙겼는데 나머지는 사실 그렇게까지 중요한 소지품은 아니라서 놓고 갔다”며 “자리를 비울 때마다 모든 물건을 다 가져갈 수는 없는 노릇이라 대부분 이렇게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강공원에 종종 놀러 온다는 20대 남성(익명 요청)도 “한국은 길거리에 명품을 놓고 가도 아무도 안 가져가지 않나. 그래서 그런 일(절도)이 발생할 거라는 생각은 안 해봤다”며 “사실 카페나 식당에서 음식을 받으러 갈 때도 충분히 훔칠 수 있는 상황이니까 꼭 한강만 해당하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10일 저녁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 시민들이 돗자리와 소지품을 남겨둔 채 자리를 비운 모습. (사진=이유림 기자)
시민들의 인식뿐만 아니라 공원 환경 자체도 절도 범죄에 취약했다.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탓에 돗자리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고, 폐쇄회로(CC)TV도 보이지 않았다. 절도 행위에 경각심을 고취할만한 안내문도 부족했다. 미래한강본부가 게시한 ‘한강공원 내 금지행위’에는 △불법주차 △무단상행위 △쓰레기 미수거 △나무·식물 훼손 △동물학대 △반려견 방치 △야영·취사 △낚시 등이 기재되어 있지만 절도 또는 소지품 관리에 대한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곳곳에 나붙은 현수막에도 ‘그늘막 설치 금지 구역’, ‘드론 비행 금지 구역’, ‘불법 노점상 이용 금지’ 내용만 있었다.

서울시는 한강공원 내 범죄 예방 차원에서 반포한강공원 12개소 27대, 광나루한강공원 2개소 5대, 강서한강공원 2개소 4대 등 폐쇄(CC)TV를 추가 설치하기로 했지만 절도 자체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미래한강본부 관계자는 “이미 CCTV가 설치된 곳이 있음에도 일부 사각지대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며 현실적인 한계를 토로했다.

공원을 이용하는 시민들 스스로 주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훈 조선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절도는 분실과 달리 다른 사람의 물건을 고의적으로 몰래 가져가는 행위이기 때문에 되찾을 가능성은 희박하다”며 “절도범에게 ‘매력적인 타깃’이 되지 않는 것이 첫 번째 예방법”이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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