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한국금융투자협회가 ‘표준포트폴리오제도 도입 등 퇴직연금 적립금 운용 합리화’를 주제로 연 정책세미나에서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박사는 “사업자들의 안내 부족과 근로자들의 무관심 등으로 적립금이 저금리 안전상품에 장기 방치되고 있다”며 “한국형 디폴트옵션 제도 도입 등 시스템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디폴트옵션 제도란 퇴직연금제도를 도입한 회사에서 근로자가 본인의 퇴직연금 운용전략을 선택하지 않을 경우 회사나 이를 관리하는 금융사에서 사전에 정해둔 투자전략에 따라 퇴직연금 자산을 운용해주는 제도를 말한다.
남 박사는 “디폴트 상품 도입은 운용 수익률 제고를 통해 궁극적으로 근로자의 수급권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며 “제도 도입에 앞서 충분한 수준의 투자자 보호장치 마련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현재 계약형 지배구조하에서 최초 운용 지시 없이 자동으로 편입되는 디폴트 상품 도입은 어렵다”며 “칠레의 멀티펀드 제도를 벤치마킹해 금감원의 표준포트폴리오 제도와 연계하는 방안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칠레에서 시행 중인 멀티펀드 제도의 경우 주식 외의 기타 자산군에 대해서도 펀드별 투자 한도를 설정하고 있다.
남 박사는 “투자자 보호를 위해 감독기관이 승인한 표준포트폴리오상품을 활용하는 한편 현행 확정기여(DC)형 운용규제의 대폭적인 완화가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열린 패널토론에서 이승현 한국투자신탁운용 상무는 “기금형제도 뿐만 아니라 계약형제도 아래에서도 가입자 은퇴 소득 확보와 정부 재정부담 완화 등을 위해 디폴트옵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머서의 황규만 부사장은 “디폴트옵션이 성공하려면 사용자와 가입자가 객관적인 투자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도록 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성주호 경희대 교수는 “충분한 교육과 더불어 자산운용능력의 전문성과 신뢰성 확보도 이뤄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세미나에 참석한 정태호 금융위원회 사무관은 “연금 가입자가 적극적으로 운용방법을 지정하기 어려운 경우, 사업자가 감독 당국의 승인을 받은 대표적 포트폴리오 상품을 가입자에게 제시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 사무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들은 연금자산 운용 규제를 두지 않거나 설사 두더라도 개괄적인 수준의 규제만을 두고 있다”며 “지나치게 경직적인 현행 규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한편 이번 세미나에서는 한국 채택 국제회계기준(K-IFRS) 도입 이후 퇴직부채 리스크 관리 방안 마련을 촉구하는 의견도 제기됐다.
황규만 부사장은 “퇴직급여 부채의 변동성 관리를 위해 적극적 자산운용과 투자정책서 도입, 투자위원회를 통한 운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밖에 송홍선 자본시장연구원 박사는 퇴직연금의 수익률 제고를 위해 자산운용 규제를 대폭 완화해야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송 박사는 “현재 엄격한 위험자산 편입 규제로 투자자의 선택권이 제약받고 있다”며 “자본시장법상 증권 개념의 포괄적 도입, 위험자산별 한도 규제 폐지, 공모펀드를 통한 DC형의 대체투자 허용 등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