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성가족부는 지난 25일 입장을 돌연 바꾼데 대해 “사실혼·동거가족을 정책적 대상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는 전혀 아니며, 실질적인 지원을 확대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국가의 보호·지원 대상을 법에서 규정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나아가 “앞으로 여가부는 다양한 가족 형태를 ‘건강가정기본법’에 규정하는 것을 지속적으로 검토해 나간다”고 해명했다.
이는 법적 가족 개념은 유지하되 그 대상의 범위를 현행 ‘혼인·혈연·입양’보다 확대하겠다는 뜻으로 파악된다.
현행 건강가정기본법은 사실혼·동거 및 동성가족 등을 법적으로 배제하면서 기본권 침해와 차별 논란이 나오고 있다. 사망신고를 비롯해 병원 수술 동의서 작성에도 이들은 보호자로 인정받지 못한다. 아울러 배우자 사망시 재산 상속을 비롯해 건강보험, 세제 혜택 등에서도 제외된다. 이에 시대의 변화를 반영해 이같은 차별을 줄여나갈 필요성의 목소리가 나오면서 관련 법 개정이 추진됐다.
특히 지난 정부에서 여가부는 “위탁가족, 동거 및 사실혼 부부 등이 가족 정책에서 소외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것에 대한 가족의 정의 규정을 삭제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국회에 제출한 바 있다.
하지만 최근 정경희 국민의힘 의원실이 최근 가족의 법적 정의를 삭제하는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에 대한 의견을 묻자 여가부는 “현행 유지가 필요하다”고 답변했다. 개정안은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발의한 것으로 ‘혼인·혈연·입양으로 이뤄진 단위’로 가족을 규정하는 조항을 삭제하고 ‘건강가정’ 용어를 ‘가족’으로 수정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여가부가 새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별다른 계기도 없이 입장을 바꾸자 일각에서는 정권이 교체되자마자 보수단체 눈치보기로 정책을 손바닥 뒤집듯 뒤집었다는 비판을 제기한다. 이들은 가족의 정의가 삭제되면 동성혼 관계도 가족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는 이유를 들어 개정안을 ‘동성혼 합법화 시도’로 규정하고 반대해왔다. 동성애를 성적지향으로 인정하지 않으며, 성평등이라는 용어를 양성평등으로 바꾸어 사용하기를 주장하는 국민의힘의 당론과도 비슷한 결이다.
이에 법적 가족 개념을 유지하면서 보수정권의 입맛에 맞는 가족의 형태만 인정하겠다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나온다.
앞서 국가인권위원회는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이 허용될 수 없다는 헌법정신과 국제인권규범의 원칙에 따라 국가가 적극적인 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하면서 법률 개정을 권고한 바 있다.
해외에서는 동성 커플의 법적 지위를 보장해 차별을 줄여나가는 입법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프랑스는 2013년에는 동성혼을 합법화했고, 독일도 지난 2017년 “혼인은 2명의 이성 또는 동성 간의 일생 동안의 결합”이라고 관련 법률을 새정해 동성혼을 법적으로 인정했다. 미국에서는 동성 커플이 미시간주와 오하이오주 등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동성 커플이 혼인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연방대법원이 판결하면서 모든 주에서 동성혼이 허용됐다.
인근 국가인 대만도 동성 커플의 관계를 증명해주는 등록 제도를 마련해 이들의 지위를 인정해주다, 지난 2019년엔 동성혼 관련 법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