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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부림? 알아서 살아남으라” 경찰관 글에 쏟아진 '공감'

홍수현 기자I 2023.08.04 22:26:35
[이데일리 홍수현 기자] 사상 초유의 ‘묻지마 흉기 난동’ 범죄가 이어지며 사회적 분위기가 뒤숭숭한 가운데 현직 경찰관이 “국민은 알아서 각자 도생하라”는 글을 올렸다. 경찰들이 현장에서 왜 무력해질 수밖에 없는지 울분을 토해 낸 글에 누리꾼의 분노는 제도와 사법부를 향했다.

(그래픽=뉴스1)
자신을 경찰청 소속이라고 밝힌 A씨는 4일 게시판에 “칼부림 사건으로 피해 보신 분들, 잘 치료받아 건강해지시길 바라고 위로의 말씀을 먼저 드린다”며 장문의 글을 게재했다.

그는 “앞으로 묻지 마 범죄 등 엽기적인 범죄가 늘어날 것 같은데, 이대로는 경찰에도 방법이 없다”고 운을 뗐다.

A씨는 “호우?폭염 등 이 세상 모든 문제와 민원은 112신고를 받은 경찰의 무한책임이 된다”며 “거기에 범죄자 인권 지키려 경찰들 죽어 나간다. 공무원 중 자살률 1위 경찰은 더 이상 못 버티겠다. 국민은 각자도생해라”고 적었다.

A씨가 올린 글 일부다.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그러면서 경찰이 공무집행 중 과잉 진압을 이유로 소송에 휘말려 수억대의 손해배상금 지급 판결이 나온 판례들을 열거했다.

이중 몇가지를 꼽자면 지난 2001년 경남 진주에서 발생한 사건이 있다. 재판 기록에 따르면 사망자 권씨는 지역 씨름대회 우승자 출신으로 사망 당일 함께 술을 마시던 지인의 목을 깨진 맥주병으로 찌른 뒤 자기 집으로 들어갔다.

이후 그의 아내가 ‘남편이 칼로 아들을 위협하고 있다’고 경찰에 신고했다. 권씨는 출동한 경찰을 힘으로 제압하려 했고 공포탄 사격에도 계속 저항하며 몸싸움을 이어가다 가슴에 실탄을 맞고 숨졌다.

대법원2부(주심 김능환)은 이 사건에 대해 2008년 권모씨 유족 4명에게 국가가 총 1억100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확정했다.

2012년에는 교통법규를 어긴 운전자가 경찰의 어깨를 붙잡는 등 불응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사고가 있다. 이때 운전자의 손이 자신의 얼굴로 온다고 생각한 경찰은 운전자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렸다.

이 과정에서 운전자가 넘어지며 전치 8주의 상해를 입었다. 운전자는 연소득 2억원 가량의 유명 영어 강사였고 그는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법원은 운전자의 손을 들었고 4억4000여만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2019년에는 양손에 흉기를 들고 소란을 피우던 여성 정신질환자에게 대치 끝 테이저건을 사용하고 뒷수갑을 채웠다가 여성이 의식을 잃고 5개월 후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유족은 경찰이 과도한 물리력을 행사했다며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3억2000만원을 물어주라고 판시했다. 테이저건 제압 후 뒷수갑까지 채운 건 법이 정한 물리력 행사 기준을 초과한 것이라고 봤다.

충북경찰청에서 신임 경찰관이 테이저건 실사 훈련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위와 같은 손해배상 청구 소송은 국가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당장 경찰관이 내야 할 배상금은 없다. 하지만 국가는 이후에 해당 경찰관을 상대로 구상권을 청구할 수 있다.

공무원 개인이 직무 수행 중 고의 또는 중과실에 따른 불법 행위로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입혔을 때는 손해배상 책임을 진다는 판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A씨는 “경찰 지휘부는 매번 총기 사용 매뉴얼이니 적극적으로 총 쏴라 말만 하지 소송 들어오면 나 몰라라 하는 거 우리가 한두 번 보나”며 “범죄자 상대하면서 소송당하고 심지어 무죄 받고도 민사 수천 수억씩 물어주는 게 정상적인 나라냐”고 따져 물었다.

그는 “여전히 범죄자를 우대하는 말도 안 되는 판례들이 매년 수십 개씩 쌓여가는데 그거 보면서 무슨 생각이 들겠느냐”며 “칼 맞아가며 일해봐야 국가에선 관심도 없고, 선배들 소송에서 몇억씩 깨지는 걸 보면 ‘이 조직은 정말 각자도생하는 곳이구나’ 하는 생각으로 일하게 된다”고 했다.

이어 “사명감으로 시작한 신입들이 3년이면 무사안일주의 경찰관이 되어갈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적극적인 경찰관은 나올 수 없다”고 울분을 토했다.

한편 윤희근 경찰청장은 이날 오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최근 잇따르는 무차별 흉기 난동 범죄에 대한 대국민 담화를 통해 “흉기난동 범죄에 대해서는 총기, 테이저건 등 정당한 경찰물리력 사용을 주저하지 않고, 국민 안전을 최우선 기준으로 경찰관에 대한 면책규정을 적극 적용해 현장의 법집행을 뒷받침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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