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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법제처의 설명이 무색하게 이데일리가 만난 시민 다수는 ‘만 나이 통일법’이 현실에서 잘 정착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반응이었다. 대부분 익숙한 연 나이로 자신을 소개하고 부가적으로 만 나이를 밝힌다는 게 대다수의 설명이다.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박모(30)씨는 “이제는 나이 물어보면 연 나이를 먼저 말하고 ‘윤(윤석열 대통령) 나이로는 몇 살이다’이라고 이중으로 설명해야 한다”며 “그냥 정부에서 ‘만 나이로 통일하자’ 주장하는게 의미가 있나 싶다”고 강조했다.
특히 연 나이로 학년이 나뉘는 초등학교 학생들 사이에서는 만 나이가 사실상 사용되지 않고 있었다. 경기 안양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는 김모(38)씨는 “보통 학년이나 연 나이로 자기를 소개하지 만 나이로 소개하는 경우는 없다”며 “만 나이 초반에 아이들끼리 호칭 문제로 혼란이 있었던 뒤로 교실에서 만 나이가 이용되는 경우는 사실상 없다”고 설명했다. 오히려 만 나이를 억지로 적용할 경우 교실 내 분쟁만 생긴다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미취학 아동들 사이에서도 만 나이 적용은 소소한 갈등을 불러오고 있었다. 인터넷 커뮤니티를 보면 만 나이로 인해 또래 친구들과 싸운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파주에서 6세 딸 아이를 키우는 김모(34)씨는 “작년에 만 나이를 적용한 뒤 생일이 느린 동갑 친구가 반말을 한다며 고집을 부렸다”며 “그 이후로 연 나이를 기준으로 아이에게 교육하고 있다”고 했다.
시민들은 만 나이 도입의 취지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연 나이 포기가 쉽지 않다는 반응이었다. 직장인 김모(31)씨는 “내가 아무 설명 없이 31살이라고 말하면 만으로 31살인지 연 나이로 31살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결국 몇 년생인지 말하거나 부가 설명을 한다”며 “서열 문화를 타파하자는 취지는 좋지만 아직 적용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라고 역설했다.
전문가들은 연공주의적 문화와 사회에 동화되고자 하는 심리가 동시에 작용한 결과라며 극복해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회에 나를 동화시키려는 욕구와 집단주의, 서열을 만들려는 관성적인 태도들이 남아있는 결과”라며 “우리가 지속적, 의식적으로 노력하면서 극복해야 할 문제”라고 설명했다. 특히 미취학 아동이나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에게 관련 교육을 충분히 진행하는 등 문화 정착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게 구 교수의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