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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인권특별보고관 "반도체 피해자 구제 방법 문제있다"

이지현 기자I 2015.10.23 16:57:55

한국 유해물질과 인권 침해 사례 등 조사..예비결과 발표

[이데일리 이지현 기자] “기업들이 인권보다 이윤추구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어 피해자가 발생하고 있다.”

배스컷 툰캇(Baskut Tuncak) 유엔(UN)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유해물질 특별보고관은 23일 서울 소공동 프라자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같이 말했다.

툰캇 특별보고관은 12일부터 23일까지 2주간 한국에 머물며 유해물질 배출 기업들이 밀집한 김포 거물대리 중금속 피해, 원전 인근주민 피해,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고 등 한국에서 벌어진 유해물질로 인한 인권 침해 사례 등에 대한 전반적인 조사를 벌였다.

그가 주목한 것은 삼성전자(005930) 반도체 LCD 사업장에서 일하다 백혈병과 뇌종양 등 직업병에 걸린 근로자들이었다.

그는 “임신한 줄 모르고 반도체 생산공정에서 일하다가 기형아 아들을 출산할 수밖에 없었다고 자책하는 한 아이의 어머니 이야기
배스컷 툰캇(Baskut Tuncak·가운데) 유엔(UN)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유해물질 특별보고관이 예비조사결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이지현 기자)
를 들으며 좌절감과 비통함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삼성전자 LCD·반도체 생산공정에서 일하다 벤젠 등 유해물질에 노출돼 백혈병 등과 같은 직업병에 걸렸다고 제보한 사람은 68명이다. 이 중 3명만이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산재를 인정받았다.

툰캇 특별보고관은 “기업들이 안전한 화학물질의 사용과 개발이라는 책임을 재발방지 조치로 우회하는 것 같다”며 “특히 삼성전자와 피해자 간에 이뤄진 중재과정을 보면 상당한 우려를 금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 문제 해결을 위해 구성된 독립적인 조정위원회는 회사와는 별도로 공익법인을 만들고, 여기서 정한 기준에 따라 보상하도록 권고한 바 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별도 기구를 만들면 보상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대신 사내 기금으로 조성한 1000억원을 재원으로 한 자체 보상위원회를 만들어 직접 피해자들과 협상에 나섰다.

툰캇 특별보고관은 “삼성전자 내부 보상위원회 설립에는 예방조치가 제대로 포함되지 않았다”며 “국제 인권기준에 부합하는 추가적 권고를 받기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도 인권을 보장할 책임이 있다”며 “필요한 경우 피해자가 피해 상황을 확인할 수 있게 하고 이들에게 효과적 구제책을 제공할 책임도 기업에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기업들이 영업비밀을 이유로 관련 정보제공을 꺼리는 부분에 대해서도 그는 문제가 있다고 봤다. 툰캇 특별보고관은 “기업이 영업기밀을 이유로 인권을 보장하는데 필요한 정보 제공을 제한한다면 그 규모는 제한적이어야 한다”며 “영업기밀이 (피해자에게) 정보 제공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상당한 근거가 될 순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한민국 정부의 유해물질 관련 인권보장을 촉구했다. 툰캇 특별보고관은 “인권은 경제·사회·문화적 권리뿐만 아니라 정보에 대한 권리와 문제가 생기면 효과적으로 구제받을 수 있는 심리·사회적 권리까지 포함한다”며 “대한민국 정부가 이와 관련한 국제규약을 조속히 비준해 다른 나라에 교훈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발표는 예비조사결과였다. 관련 최종 보고서는 내년 9월 유엔인권이사회에 최종 제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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