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원짜리 한우세트가 가능할까요?"..김영란법 선물기준 20만원 오르나

이명철 기자I 2021.01.04 11:02:29

청탁금지법상 농수산물 선물가액 한도 10만원 상향 요구
소비자가격 계속 오르는데 기준 그대로, 소비 활성화 제약 지적
작년 추석 한도 상향 효과, 농어업계 “한시 상향 제도화해야”

[세종=이데일리 이명철 기자] 매년 명절마다 관계기관과 협력처에 선물을 돌리는 업무를 맡고 있는 A씨. 해가 갈수록 선물 구성에 고심이 깊어진다. 한우·한돈이나 과일 등 가격은 계속 오르는데 일명 ‘김영란법’의 선물 한도는 10만원 그대로여서 선물세트 구성이 부실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우는 고사하고 하나에 가격이 천정부지인 배·사과로 10만원을 맞추려면 몇 개 들어가지도 않는다. 이러다가는 선물을 보내고도 핀잔을 받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설이나 추석 등 명절 때마다 ‘김영란법(청탁금지법)’상 농축수산물 선물가액 한도 상향이 항상 논쟁거리다. 코로나19 충격이 컸던 작년에는 추석 때는 한도를 한시 상향했는데 소비 활성화 성과를 거둔 것으로 나타나 아예 명절 때마다 한도를 올리도록 제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그래픽= 이동훈 기자)


◇선물 한도 올리니 20만원 초과 선물 판매 ‘쑥’

3일 정부와 농어업계에 따르면 농협중앙회·수협중앙회·산림조합중앙회는 지난달 15일 국민권익위원회에 농축수산물 선물 상한액을 상향할 것을 촉구하는 공동 건의문을 전달했다.

같은날 농업인 단체인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한농연)는 권익위가 운영하는 국민참여포털 국민신문고를 통해 청탁금지법 시행령을 개정할 것을 공개 제안했다. 개정안은 매년 설·추석 명절 기간 청탁금지법상 농축산 선물가액을 10만원에서 20만원으로 상향하는 내용을 담았다.

현재 청탁금지법에서는 농축수산물의 선물 가액을 10만원으로 제한하고 있다. 청렴 사회를 위해 비싼 가격의 선물을 지양하자는 취지지만 우리 농축수산물의 소비가 제약을 받아 경영상 어려움이 크다고 농어업인들은 호소하고 있다.

지난해 코로나19로 소비가 위축되고 고향 방문도 갈 수 없는 상황에 놓이자 권익위는 추석 명절에 한해 선물가액을 20만원으로 한시 상향했다.

권익위는 그간 경제 어려움을 겪는 업계와 관계부처의 선물 가액범위 상향 요청에 대해 법적 안정성, 사회적 공감대 등을 고려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상황과 방역 대책에 따른 추석 고향 방문·성묘 자제, 태풍 피해발생 등 농축수산업계의 어려움이 심각해져 선물 가액범위를 한시 조정했다고 설명했다.

대상은 한우·생선·과일·화훼 등 농축수산물과 농축수산가공품(농수산물을 원료·재료 50%를 넘게 사용해 가공한 제품, 홍삼·젓갈·김치 등)이다.

효과는 컸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추석 명절 전후 한달간(9월 5~10월 4일) 8개 유통업체(백화점·대형마트·홈쇼핑)의 농수산식품 선물 매출액은 전년동기대비 7% 증가했다.

고향을 가지 않는 대신 선물을 보내려는 수요가 늘기도 했지만 청탁금지법상 선물 가액 한도로 구매 범위가 더 넓어졌다는 분석이다. 실제 당시 가격대별로는 20만원을 초과한 선물이 전년동기대비 20.0% 늘었다. 한우 등 축산물(17.7%)과 굴비·옥돔 등 수산물(29.3%)의 선물 매출이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현수 농식품부 장관도 지난해 9월 28일 추석을 앞두고 기자들과 만나 청탁금지법상 선물 상한액 상향에 대해 “축산물·과일·가공제품 등의 판매가 늘어 수요 진작 효과가 있었다”고 평가했다. 권익위는 청탁금지법의 농수산물 선물 가액 범위를 한시 조정한 사례를 지난해 적극 행정 우수사례로 선정하기도 했다.

지난해 9월 23일 서울 신세계백화점 본점에 한우 추석 선물세트가 진열돼있다. (사진=연합뉴스)


◇시행령 개정 필요, 농어업계 “지금부터 빨리 준비해야”

지난 추석에서 선물가액 상향의 효과가 입증되자 농어업계에서는 명절 때마다 한도 상향을 요구하는 분위기다. 특히 이번 설 명절을 한달여 가량 앞둔 상황에서 빠른 결정이 더 효과가 크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해 추석 때 권익위가 선물 가액을 상향한 날은 9월 10일로 추석 연휴가 시작한 30일을 20일 남겨둔 시기였다. 기업들이 통상 명절 한달 전부터 선물 구성을 완료하는 것을 감안하면 선물 가액 조정에 대응할 시간이 부족했다는 지적이다.

선물 가액 범위를 조정하기 위해서는 여러 절차를 거쳐야 한다. 청탁금지법 시행령을 개정해야하기 때문이다. 우선 권익위 전원위원회에서 시행령 개정을 의결해야 하고 국무회의 의결도 받아야 한다.

올해는 설 명절 연휴(2월 11~14일)에 앞서 한달 이상 여유를 두고 미리 선물 가액을 높여야 한다고 농어업계는 주장하고 있다. 추가로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해 명절 때마다 선물 가액 상향을 명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농연 관계자는 “농축산물 시장 개방 확대 등 환경·여건 변화로 국산 농산물 소비가 지속 감소해 명절 대목 시장 대한 의존도가 계속 높아지고 있다”며 “농축산 선물 가액 한도를 늘릴 경우 별도 사회적 비용 없이 소비 증진 효과를 누릴 것”이라고 기대했다.

권익위는 아직까지 신중한 입장이다. 전현희 권익위원장은 최근 이데일리와 인터뷰에서 선물가액 상향과 관련해 “지난 (추석) 결정에 대해 많은 분들이 공감도 해주고 경제에 도움이 됐다는 평가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권익위가 원칙을 허물어 부패방지 컨트롤타워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많다”고 지적했다.

한편 권익위는 지난해말 ‘청탁금지법’ 선물 관련 홍보 자료를 배포하며 국민 이해를 돕기도 했다.

권익위에 따르면 청탁금지법은 받는 사람이 공직자 등(청탁금지법 제2조제2호)인 경우에만 적용돼 부모, 형제자매, 친구 등 일반 국민끼리 주고받는 선물에는 제한이 없다.

선물 받는 대상이 공직자 등이어도 직무 관련이 없으면 5만원 초과(1회 100만원까지)하는 선물도 가능하다. 다만 직무관련성이 있다면 5만원 이하(농수산물·농수산가공품은 10만원) 선물만 해야 한다.

임윤주 권익위 부패방지국장은 “청탁금지법은 모든 선물을 금지하는 법이 아니고 가액범위 내에서 얼마든지 소중한 분들과 마음이 담긴 선물을 주고받는 것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9월 21일 국회 의원회관 로비에 의원들 앞으로 도착한 추석선물 택배가 쌓여 있다. (사진=연합뉴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