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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이라고 경찰 출동 10분만에 현행범 체포 부당”

정병묵 기자I 2020.11.23 12:00:00

인권위, 경찰청에 외국인 형사절차상 권리 행사 개선 권고

[이데일리 정병묵 기자] “너 이놈의 OO 불법체류자 아니야?”

2012년 한국인 부인과 결혼한 뒤 한국에서 살고 있는 모로코인 A씨는 지난 3월 한 아파트 단지에서 이삿짐 사다리차 일을 하던 중 곤욕을 치렀다. 처음 보는 행인이 다가와 다짜고짜 욕설을 한 것. 자신을 휴대폰 카메라로 찍으려는 행인과 승강이가 있었고 경찰이 출동했다. 경찰관들은 출동 약 10분 만에 A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했고 A씨는 통역 없이 조사를 받았다. 행인은 A씨가 욕을 하면서 가슴 부위를 밀치는 폭행을 했다고 주장했지만 A씨는 결국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사진=인권위)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는 112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들이 현장 도착 약 10여분 만에 외국인만 폭행 현행범으로 체포한 사건을 두고, 합리성을 잃은 공권력 행사라며 경찰청장 및 해당 경찰서장에게 관련자들에 대한 징계조치 및 직무교육을 23일 권고했다.

인권위는 “설령 A씨가 상대방을 밀친 것을 현장에서 인정했다 하더라도 출동 당시 피해자가 이삿짐센터 직원들과 함께 일을 하고 있었고 신분증 제시로 신원 확인이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었다”며 “체포 당시 A씨의 도주·증거 인멸의 우려가 상당했거나 체포하지 않으면 안 될 급박한 상황이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112 신고 내용이 비교적 경미한 사안이었던 점 등을 종합하여 볼 때 추후에 출석을 요청하거나 자진 출석을 안내하는 방식으로 조사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었다”고 덧붙였다.

통역 없이 조사가 이뤄진 부분도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A씨는 기본 한국어 의사소통이 가능하지만 ‘현행범’, ‘피의자’ 같은 법률용어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체포 당일 경찰서에서 작성된 피의자 신문조서를 보면 A씨는 “막았을 뿐이고 몸에 닿지는 않았다”라고 진술했지만 경찰관이 파출소에서 작성한 현행범인 체포서에는 “가슴 부위를 1회 밀친 것을 인정하였다”고 진술과 다르게 기재되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인권위는 “한국어로 일상 대화가 가능한 외국인이라 하더라도 형사 절차 진술은 다른 문제이므로 의사소통의 왜곡이 발생하지 아니하도록 유의해야 한다”며 “당사자가 직접 읽고 작성해야 하는 미란다 원칙 고지 확인서·임의동행 확인서와 우리나라 형사절차 안내서 등 보다 다양한 언어로 번역된 자료를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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