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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그렸나 중요 정보 아냐"…대법, '그림대작' 조영남에 무죄

남궁민관 기자I 2020.06.25 11:51:40

조수 도움받아 미술작품 완성해 21점 1.8억에 판매
"친작 여부 고지하지 않았다" 檢 사기죄로 기소
1심 유죄에서 2심 무죄…대법 공개변론까지 열려
대법 "조수 관여 알았다면 구매하지 않았을까" 지적

[이데일리 남궁민관 기자] 조수의 도움을 받아 완성한 그림을 자신의 작품으로 팔았다가 ‘그림 대작(代作)’ 논란으로 사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가수 조영남(75)씨가 대법원 공개변론 끝에 무죄를 확정받았다.

미술작품 완성에 있어 제3자가 관여한 사실을 구매자에게 알리지 않았더라도 이를 사기로 볼 수 없다는 원심의 판단을 인정한 동시에, 당초 검찰이 조씨를 기소하면서 해당 작품들의 저작자가 누구인지에 대한 문제 역시 제기하지 않아 뒤늦게 저작권법 위반 적용도 불가하다는 판단이다.

‘그림 대작’ 사건으로 기소된 가수 조영남이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공개변론에 참석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대법원 1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25일 사기 혐의로 기소된 조씨의 상고심에서 무죄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앞서 조씨는 2009년부터 2016년까지 평소 알고 지내던 화가 송모씨에게 1점당 10만원 상당의 돈을 주고 여러 형태로 미술작품 완성에 도움을 받았다. 자신의 기존 콜라주 작품을 회화로 그려오게 하거나, 자신이 추상적인 아이디어만 제공하고 이를 송씨가 임의대로 회화로 표현하게 하는 등 작업을 지시했다. 조씨는 송씨로부터 건네받은 200여 편의 그림에 자신은 배경색을 일부 덧칠하고 자신의 서명을 한 뒤, 구매자 17명에게 총 1억8000여만원을 받고 21점을 판매했다.

검찰은 사기 혐의 등으로 조씨를 재판에 넘겼고, 1심에서는 유죄로 판단했다.

1심 재판부는 “이 사건 미술작품의 창작적 표현작업이 주로 송씨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미술작품 거래에 있어서 설명할 가치가 있는 정보에 해당 되고 조씨는 신의칙상 사건에 구매자들에게 이와 같은 사실을 고지할 의무가 있다”며 “이를 고지하지 않고 판매한 것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한 구매자들을 부작위에 의해 기망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다만 2심은 조씨에게 무죄를 선고하며 판단을 달리했다.

2심 재판부는 “송씨는 보수를 받고 조씨의 창작물에 대한 아이디어를 작품으로 구현하기 위해 작품제작에 도움을 준 기술적인 보조자일뿐 그들 각자의 고유한 예술적 관념이나 화풍 또는 기법을 이 사건 미술작품에 구현한 이 사건 미술작품의 작가라고 평가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그 작품이 해당 작가의 ‘친작’인지의 여부는 구매자에 따라 고려 요소가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어서, 일반적으로 친작 여부가 구매자들에게 반드시 필요하거나 중요한 정보라고 단정할 수 없다”며 “만약 이 사건 구매자들이 미술작품 제작에 송씨가 관여한 사실을 알았더라도 해당 가격에 미술작품을 구매하지 않았을 것이란 점 역시 명백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조씨가 저작권법을 위반했으며 △친작 여부에 따라 구매 판단이나 가격에도 영향을 미치는 만큼 원심의 판단은 부당하다며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상고 기각했다.

먼저 재판부는 “검사는 이 사건을 사기죄로 기소했을 뿐 저작권법 위반으로 기소하지 않았다”며 “즉 이 사건 형사재판에서 저작자가 누구인지가 정면으로 문제 된 것은 아니며, 저작권법 위반을 주장하는 것은 형사소송법상 심판의 대상에 관한 불고불리 원칙에 반하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특히 핵심 쟁점인 친작 여부 고지의무에 대해서도 원심의 판단에 손을 들었다.

재판부는 “미술작품의 거래에서 기망 여부를 판단할 때에는 그 미술작품에 위작 여부나 저작권에 관한 다툼이 있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법원은 미술작품의 가치 평가 등은 전문가의 의견을 존중하는 사법자제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전제한 뒤 “구매자들은 이 사건 미술작품이 ‘조영남의 작품’으로 인정받고 유통되는 상황에서 이를 구입한 것이었고, 조씨는 다른 사람의 작품에 자신의 성명을 표시해 판매했다는 등 위작 시비 또는 저작권 시비에 휘말린 것이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따라서 피해자들이 이 사건 미술작품을 피고인 조영남의 친작으로 착오한 상태에서 구매한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원심은 수긍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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