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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리라화 폭락후 폭등…에르도안 두마디에 ‘롤러코스터’

방성훈 기자I 2021.12.21 13:49:08

“금리 더내려” 11% 폭락…“예금보호” 선언에 24% 폭등
시장은 추가 하락에 무게…저금리發 인플레 경고음
에르도안 “현재 인플레는 일시적…곧 떨어질 것”
CDS스프레드 확대·차입금리 급등…외환위기 우려↑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터키 리라화 가치가 20일(현지시간) 크게 요동쳤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저금리’ 통화정책 기조를 고수하겠다는 의지를 거듭 내비친 뒤 폭락했다가, 리라화 예금을 보호할 수 있는 새로운 정책을 내놓겠다고 선언한 이후엔 다시 큰 폭으로 상승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사진=AFP)
“금리 더내린다”에 폭락…“예금보호” 선언에 폭등

파이낸셜타임스(FT)와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이날 달러화 대비 리라화 가치는 장중 1달러당 18.36리라까지 급락했다가, 이후 1달러당 12.28리라까지 회복해 거래를 마감했다. 지난 17일 종가대비 11%까지 하락한 뒤 최종적으로는 24% 급등해 장을 마친 것이다.

장 초반 리라화 가치가 폭락한 것은 에르도안 대통령이 전날 현 통화정책에 반대하는 기업인들을 상대로 “기준금리 인하를 되돌릴 마음이 없다. 더 내릴 것이다”라며 금리 정상화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터키 중앙은행은 지난 16일 기준금리를 종전 15%였던 14%로 1%포인트 ‘또’ 내렸다. 이는 지난 9월 이후 연속 네 차례 인하한 것으로, 19%에서 넉달 새 5%포인트나 떨어졌다.

이 기간에 리라화 가치는 40%가량 폭락했다. 1달러당 7.4리라 수준이었던 올해 초와 비교하면 60% 가까이 폭락했다. 기준금리를 내리면 시중 통화량이 증가해 물가가 오르고, 외국환 대비 자국 화폐 가치가 하락한다.

같은 물건을 사기 위해 몇 달 만에 두 배에 가까운 가격을 지불해야 하는 터키 국민들은 리라화 대신 금이나 달러로 저축하기 시작했다. 터키 중앙은행에 따르면 터키 은행 예금의 절반 이상이 외화 예금이다.

이에 에르도안 대통령은 20일 밤 TV연설을 통해 정부가 환율 급등에 따른 리라화 예금가치 손실분을 보전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리라화 예금의 가치를 보호할 수 있는 새로운 금융수단을 제공할 것”이라며 “지금부터 리라화 가치가 떨어질 것을 우려해 외화 예금으로 바꿀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인지는 설명하지 않았으나 연설 이후 바닥을 모르고 추락하던 리라화 가치는 오름세로 돌아섰고, 집계가 시작된 1983년 이래 약 30년 만에 최대 상승폭으로 뛰었다.

(사진=AFP)
시장은 추가 하락에 무게…저금리發 인플레 경고음

하지만 이날 리라화가 폭등한 것이 에르도안 대통령의 연설 때문인지와 관련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블룸버그통신은 “터키 현지 트레이더들이 부재한 늦은 밤 일어난 일어난 상황”이라며 지속 여부는 좀 더 두고봐야 한다고 진단했다. 또 “크리스마스 및 연말연시 연휴를 앞두고 거래량이 줄어든 영향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로이터통신도 에르도안 대통령의 연설 이후 터키 외환시장에서 10억달러가 매도되며 유동성이 공급됐지만, 이는 외국인들의 쇼트 커버링(매도 포지션 상쇄를 위한 재매입)에 따른 일시적 현상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리라화 가치 하락에 베팅했던 해외 투자자들이 리라화 가치 상승에 따른 손실을 줄이려고 리라화를 재매입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것일 수 있다는 얘기다.

웰스파고의 브렌단 맥케나 환율전략가는 “리라화 예금 보호 조치가 통화 가치 하락을 지지하는 데 도움될 수는 있겠지만, 정책 신뢰도 측면에선 터키 정부에 대한 믿음이 높지 않다”며 “예금주들이 실제로 예금 보호 정책이 시행될 것으로 볼 것인지는 미지수”라고 평했다.

시장에선 향후 추가 금리인하로 리라화 가치가 더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 경우 터키 국민들은 더욱 고통받을 수 있다.

터키의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11월 전년 동기대비 21.31%를 기록해 3년 만에 처음으로 20%를 넘어섰다. 지난 7월 18.95%로 26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뒤 8월(19.25%), 9월(19.58%), 10월(19.9%) 등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치솟는 물가에 대한 대중의 우려를 시인하면서도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금리인하로 인플레이션이 몇 개월 안에 떨어지기 시작하는 것을 목격할 것”이라고 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그동안 리라화 가치가 하락하면 수입물가가 올라 수입이 줄고, 수출 제품들이 해외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갖춰 적자가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이러한 상황이 선순환으로 이어져 리라화 가치를 다시 끌어올리고, 수입물가도 안정될 것이라는 논리다.

(사진=AFP)
CDS스프레드 확대·차입금리 급등…외환위기 우려↑

터키의 외환 위기 우려도 커지고 있다. 레피니티브가 IHS마킷 데이터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 터키의 5년 만기 신용부도스와프 스프레드는 올해 초 300bp(1bp=0.01%포인트)에서 이날 612bp로 확대됐다. CDS 스프레드가 확대되면 신용 위험이 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외국 투자자들이 보유 자산을 처분하면서 달러화 표시 차입금리도 급등세를 보이고 있다. WSJ에 따르면 10억 달러짜리 2022년 3월 만기 터키 달러화 표시 채권의 금리는 지난 17일 5.4%에서 이날 7.3%까지 올랐다. 연초에는 3.1% 수준이었다. 같은 기간 22억 5000만달러 규모 2031년 1월 만기 터키 달러채 금리도 7.8%에서 8.26%까지 상승했다.

터키 달러채 상당 부분을 터키 은행들이 보유하고 있는 만큼, 현지 은행들이 부채를 갚거나 예금자들이 요구하는 달러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터키 중앙은행은 리라화 폭락을 막기 위해 이달 들어서만 다섯 차례 시장에 개입했다. 이에 경제학자들은 터키 중앙은행의 외환보유액이 바닥났을 뿐더러 자산보다 외화 부채를 더 많이 보유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블루베이 애셋매니지먼트의 티모시 애쉬 이머징마켓 선임전략가는 “에르도안 대통령이 국가적 문제 해결을 위한 조치를 내놨지만, 이는 막대한 불확실성과 정부의 재정적 위험을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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