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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저가형 생과일주스와 생연어 무한리필의 인기 비결은 무엇인가

김병준 기자I 2016.08.05 15:30:18
[김원빈 외식 콘셉트 기획자]

◇ 외식 시장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힘

국내 외식 산업은 대개 특정 아이템을 중심으로 무서울 정도의 속도로 유행이 번지곤 한다. 작년 한국 외식 시장을 휩쓸었던 ‘치즈등갈비’와 ‘4+4 수입 소고기구이 전문점’을 예로 들 수 있겠다. 그런데 간혹 이러한 흐름 속에서도 전문가조차 명확한 원인을 설명할 수 없는 전혀 예기치 못한 현상들이 나타나곤 한다.

너도나도 웰빙 열풍 속에서 무한리필 삼겹살집은 왜 늘어날까? 음식 색이 진한 대한민국 국민이 언제부터 늘어나는 치즈에 열광하게 되었을까? 빠르게 변화하는 외식 시장에서는 예기치 못한 현상에 대해 이러한 질문들이 숱하게 제기된다. 경기 침체는 지속되는데 값비싼 수제 맥주 시장은 확대되고 있으며 왜? 우리는 소소한 집 밥에 열광하는 걸까?

우리 주변의 모든 현상은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외식 산업도 마찬가지다. 격변의 외식 시장 속에서 더 이상 눈으로 보이는 것만으로 현상을 고찰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점점 어려워질 것이다.

앞으로 이러한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표면적인 결과가 아닌 이면의 숨어 있는 코드를 살펴야 할 것이다. 세계적인 정신분석학자 클로테르 라파이유의 저서 ‘컬쳐코드’에 따르면 ‘코드’란 우리가 속한 문화를 통해 일정한 대상에 부여하는 무의식적인 의미다.

퇴근 후 먹는 치킨과 맥주, 추운 겨울 길거리에서 맛보는 붕어빵 그리고 어머님이 끓여주신 된장찌개 등이 왜 특별한 의미가 있는지를 떠올리면 앞으로 겪게 될 현상에 대해 훨씬 더 폭넓은 시각이 생길 것이다.

◇ 결코 저렴한 가격만이 경쟁력은 아니다

한국인의 아메리카노 사랑은 특히 유별나다. 국내 지방 소도시 어디에 가도 갓 내린 커피를 맛볼 수 있을 정도니 말이다. 그런데 최근 깨지지 않을 것 같았던 아메리카노의 아성이 대용량 저가형 주스가 등장하면서 흔들리고 있다.

아직도 “따봉!”이 먼저 연상되는 무가당 오렌지주스와 편의점에서 비교적 높은 비용을 내야 먹을 수 있는 리얼주스가 전부인 줄 알았는데 이제는 남녀노소 누구나 방금 갈아낸 생과일주스를 맛볼 수 있는 지금이 만들어지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2년 남짓이다.

주스에 연관되는 키워드를 살펴보면 대개 색감이 강렬한 신선한 과일, 비타민, 유기농 등 긍정적인 단어들이 따른다. 이러한 좋은 느낌들이 일차적으로 건강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는 사회적 추세와 잘 맞물린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과거에 우리가 생과일주스를 어떻게 접하고 학습했는가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주스를 마실 수 있는 경로는 크게 슈퍼마켓과 카페 그리고 집에서 만들어 마시는 경우, 크게 세 곳을 들 수 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건강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면서 오래전부터 슈퍼마켓에서는 건강에 대해 관심이 높은 소비자를 겨냥해 다양한 가공 주스들이 출시되었지만 높은 가격의 프리미엄 제품이 대부분이었고 카페에서도 역시 가장 값비싼 메뉴 군에는 늘 주스가 포함되었다.

그렇다고 주스를 집에서 직접 만들어 마시자니 들이는 시간과 비용이 만만치 않다. 다시 말해 잠재적 수요가 충분했음에도 주스는 접근이 어려운 음식이었다.

잠재적 수요가 크게 존재했던 주스 품목으로 접근할 수 있는 문턱을 낮춘 대용량 저가형 주스 전문점이 크게 인기를 얻고 있는 현상은 앞서 언급한 주스가 갖고 있던 코드를 정확하게 간파했기 때문이다.

만약 주스가 아닌 스무디나 에이드였다면 현재만큼의 유행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이러한 현상은 오롯이 주스였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리고 생과일주스를 넘어 최근 클렌즈주스 시장이 확대되고 있다. 사람들이 점점 과일의 단맛을 통해서 채소와 친해지고 있는 것이다.

◇ 고등어는 안 되고 연어는 가능한 인기 비결

최근 외식 시장에서 관찰되는 것 중 가장 기이한 현상을 꼽으라면 단연 생연어 전문점의 열풍을 들 수 있다. 그것도 일반 횟집이나 일식집이 아닌 무한리필 연어 전문점이다.

대낮부터 연어집에 줄을 서는가 하면 유명 SNS 맛집 채널에도 생연어는 심심치 않게 소개되는 단골 주인공이다. 빠른 시간 내 무엇이 이토록 사람들이 생연어에 열광하게 만들었을까?

첫 번째, 누군가 내게 광어와 우럭을 블라인드 테스트한다면 구별해낼 자신이 없지만, 그 속에서 연어는 분명하게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연어는 생선류 중에서 재료 본연의 맛을 명확하게 갖는 어종이기 때문에 다른 어류에 비해 빠르게 맛에 대한 기억을 침투시킨다.

두 번째.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연어라는 음식재료는 값비싼 일식집에서나 접할 수 있었던 고급 식재료였다. 그나마 대중이 연어를 접할 수 있었던 것은 뷔페에 존재했던 훈제연어가 전부였고 그 결과 생연어는 자연스레 소비자의 뇌리에 고급 음식으로 포지셔닝 되기 시작했다.

그러한 고급 메뉴를 누군가가 저렴한 가격에, 그것도 무한리필로 판매를 하니 일단은 많은 사람이 주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 것이다. 이것은 마치 낯선 맛에 대한 동경과도 같다.

세 번째. 생연어 전문점의 유행의 핵심 타깃층인 젊은 소비층 대부분이 과거에 제대로 된 생연어를 맛본 경험이 적다는 것이다. 이는 두 번째의 이유와 맞물린다. 연어에 대해서는 학습된 맛이 별로 없기 때문에 대개 연어에 대해서는 관대한 맛 평가를 보이는 현상이 나타나곤 한다.

면발의 메밀 함량과 육수의 성분까지 따져가며 먹는 냉면과 매우 대조적인 양상을 나타낸다. 생연어를 비롯해 모든 음식에는 학습된 맛이 소비자의 구매 형태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시사한다.

마지막 네 번째는 외식 시장의 웰빙 열풍과 생연어가 맞물리는 것이다. 특히 연어의 경우 뉴욕 타임즈에서 선정한 10대 건강식품으로 꼽히기도 하면서 수퍼푸드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대표적인 웰빙 음식으로 자리매김한 것이 주효했다.

그 누가 예상했을까? 대한민국 젊은이들이 밥 대신 생연어를 먹게 될 줄을. 어쨌든 어떤 이의 시장을 꿰뚫는 통찰력으로 이뤄낸 발견 덕분에 고급 음식으로만 여겨질 수 있었던 연어가 세상 빛을 보게 되면서 우리의 식탁이 더욱 풍요로워졌으니 매우 감사할 일인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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